시장 활동만을 계산하는 관행은 경제 활동의 엄청나게 큰 부분을 보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농업 생산물의 큰 부분이 계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많은 농민이 자기가기른 작물을 팔지 않고 일정량을 소비하는데 농산물 생산량에서 이 부분은 시장에서 교환되지않으므로 GDP 통계에 포착되지 않는다. 가정과 공동체에서 임금을 받지 않고 행해지는 돌봄노동 역시 이런 식으로 시장에 기초해 생산량을 측정하면 부자 나라와 개발도상국 모두에서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돌봄 노동이라고 할 수 는 없지만 사회가 생존하고 회복하는 데(기술적 용어로는 ‘사회적 재생산)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 다시 말해 식료품과 필수품을 생산하고 운송하고 유통하는사람들(마트, 택배업 종사자 등), 대중교통 관련 종사자들, 건물과 사회 기반 시설을 청소하고보수하는 사람들의 중요성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유럽인이 범선을 타고 바다를 가로질러 항해를 하기 시작한 15세기 말부터 선원들의 목숨을가장 많이 앗아간 것은 적군의 배나 해적도 아니고, 심지어 폭풍우도 아니었다. 그 주범은 바로 괴혈병으로, 무기력증과 함께 잇몸이 부어오르고 피가 나면서 치아가 흔들리다가 빠지고, 극심한 관절 통증을 앓다가 사망에까지 이르는 끔찍한 질병이었다.

영국 해군 사령부는 레몬 주스가 선원들의 배급품 목록에 필수적으로 포함되도록 했고 물로희석한 럼주에 레몬 주스를 섞은 ‘그로그‘라고 부르는 음료를 배급해서 선원들이 레몬 주스를섭취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영리한 방법을 사용했다. 얼마 가지 않아 레몬 대신 라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라임이 값이 더 저렴했고, 레몬과는 달리 영국이 식민지화한 카리브해 연안에서 자라는 과일이었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에탄올을 휘발유와 혼합하고, 바이오디젤을 디젤유와혼합해 사용할 것을 의무화해서 화석 연료 사용량을 줄이고자 하는 나라가 수십 개국에 달한다.

시장은 1인 1표가 아니라 1월 1표를 원칙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내버려 두면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원하는 쪽으로 투자가 몰리기 마련이다. 이 말은 가난한 나라들이 가장 필요로하는 기술들 농산물과 공산품 생산에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나 ‘기후변화 적응‘ 기술 등 -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돈이 투자될 것이라는 뜻이다.

기후 변화와 같은 시스템의 문제를 시장환경에서 개인이 ‘올바른‘선택을 해야 한다고 맡겨두는 것은 불공평할 뿐 아니라 효과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공적 조치가 필요하다. ‘친환경 식생활‘ 운동이 아주 좋은 예다.

향신료를 구하겠다는 열망이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항로를 개척하는 데 중요한 동기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 과정이 자본주의 발달에 가장 중요한역할을 한 제도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주식회사 또는 유한책임회사가 바로그것이다.

영국 동인도 회사(1600년)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1602년)가 이렇게 해서 세워졌다. 이 두회사는 최초의 유한책임회사는 아니었지만 동인도에서 성공적으로 향료를 수입해 오고, 결국각각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 식민지를 경영하면서(그렇다, 초기에는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 식민통치를 했다) 유한책임이라는 제도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

유한책임제 덕분에 무한책임을 져야 할 때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자본을 모으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자본의의 패망을 예상했던 카를 마르크스가 유한책임회사야말로 ‘자본주의의 발달이 정점을 찍어서 나온 제도‘라고 칭송했던 것이다. 물론 이 발언에는 자본주의가 더 빨리 발전할수록 사회주의의 도래를 앞당길 수 있으리라는 저의가 깔려 있었다(그의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완전히 발달한 다음에야 사회주의가 도래할 수 있다).

유한책임제는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가장 중요한 제도 중 하나이다. 그러나 금융 규제 철폐와참을성 없는 주주들이 판치는 환경(더 기술적인 용어를 쓰면 ‘금융화 시대‘)에서는 이 제도가경제 발전에 동력이 되기보다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유한책임제도 자체, 그리고 금융규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매커니즘 등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딸기를 비롯해 산딸기, 토마토, 상추와 같은 따기 힘든 작물을 수확하는 로봇이 곧 상용화될것이라고 한다. 현재 다수의 기업에서 잎 사이에서 딸기를 찾아내고 익은 정도를 판단해서 멍들지 않게 수확할 수 있는 수확용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이 로봇들은 아직 인간만큼 유능하지는 않지만 계속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딸기 수확의 자동화라는 농업 기계화 최후의 장벽을정복할 날도 멀지 않았다.

전문가 계급에 속한 이들은 자기네 일이 자동화의 물결에서 안전하다고 확신할 때는 새 기술의 도입에 거부감을 보이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러다이트‘라 쉽게 비난할 수 있었다(19세기초 영국의 섬유 산업 노동자 중 섬유 기계를 때려 부수면 일자를 잃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을 러다이트라 부른다).

딸기가 베리의 대명사로 알려져 왔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자동화도 일자리를 파괴하는 가장 큰 적으로 여겨져 왔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자동화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자동화는 일자리를 파괴하는 장본인이 아니다. 거기에 더해 기술이 홀로 일자리숫자를 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재정 정책, 노동 시장 정책, 특정 산업부문에 대한 규제등을 통해 원하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탈산업 사회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스위스는 사실 세계에서 가장 산업화 정도가 높은 나라로, 1인당 제조업 생산량 제계 1위를 자랑한다. 메이드 인 스위스라고 적힌 상품이 많이 보이지 않는 건 부분적으로 스위스가 작은 나라여서이기도 하지만(인구가 약900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이 생산재‘라고 부르는 기계, 정밀 장비, 산업용 화학물질 등 우리 같은 보통 소비자가 접할 수 없는 물건들을 주로 생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산 물건 중에 ‘메이드 인 스위스‘라고 표시된 것은 초콜릿밖에 없을지 모르지만(스위스에 사는사람이 아닌 이상 그럴 확률이 매우 높다) 그렇다고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스위스 성공의비밀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은행이나 고급 관광 상품이 아니라 세계 최강의 제조업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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