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우선 덩치가 크니까 2차대전이 끝난 뒤 비공산권에서 완전히 대장이 됐다. 처음에는막강한 군사력 때문이었다. 군사질서에서 우두머리가 된 것을 기회로 경제적으로도 세력을 키웠다. 휘하에 들어와 있는 나라들에게 원조를 해주면서 ‘바이 아메리칸 정책 Buy AmericanPolicy‘을 들이밀었다.

군사질서를 장악해서 경제질서도 미국화시키고 외교 안보도 완전히 미국 중심으로 돌아가게만들더니 그 다음은 무슨 짓을 하는가. 정보질서를 장악한다. 미국은 보고 들을 수 있는 장비도 많고 여러 나라에 파견된 외교관이나 정보원도 많다. 그것들로 세계의 경제 정보나 군사, 안보 관련 정보 등을 수집하고 가공해 제공함으로써 동맹국들이 미국의 품 안에서 살 수밖에없도록 유도한다.

미국도 국가이익을 키우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힘, 즉 무력, 정보력, 경제력 그리고 그 동안에여러 나라들과의 은원관계에서 구축된 정치력 등을 행사할 때 상대가 저항할 수 없도록 핑계나 면분을 만드는 싱크탱크를 여럿 가지고 있다.

국제정치의 세계에서 정부, 언론, 학계는 굉장히 강하게 유착되어 있다. 예를 들면 언론은 싱크탱크가 만든 핑계를 미국 영향권 안에 있는 여러 나라에 퍼트리고 이를 진짜 정보로 둔갑시켜 기정사실화 한다.

1차 산업 시기에 중국이 농사에 꼭 필요한 천문 정보를 가지고 주변 국가들을 관리한 것처럼,
지금 미국은 안보 관련 정보질서를 장악해서 우리나라, 일본, 대만, 유럽 등 여러 나라를 관리하고 무기를 판다. 장보를 모을 수 있는 좋은 장비를 안 주고 북한 동향이나 핵, ICBM에 대한 가공하지 않은 정보, 즉 원정보를 주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주는 정보를 믿고 그들이 팔려는 무기를 사는 수밖에 없다.

냉전시대라는 국제정치 상황에서 강대국인 미국이나 소련은 휘하의 나라들에게 고압적이었지만 서로 경쟁관계였기 때문에 중간지대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인도, 이집트, 인도네시아 등중간지대에 있는 나라가 반대편으로 가지 않도록 초청도 하고 방문도 해주고 원조도 해줬다.
작은 나라 입장에서는 어느 한쪽에 확 붙어 지원을 받으면 종속성이 커진다. 얻어먹는 만큼굽히고 들어가야 하니까.

박정희 대통령은 자주국방의 기치를 내걸었다. 1970년대 국방부 건물 꼭대기에 쇠로 크게 자주국방이라고 새겨놓았다. 미국은 우리가 진짜 자주국방을 이뤄서 한미동행 위상이 부차적으로 떨어지면 주한미군을 나가라고 할 수 있다고 여겨서, 이때부터 미국과 박정희 대통령과의사이가 불편해졌다. 우리가 자주국방으로 갈 수 없도록 만드는 미국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 같은 조치도 이때 나왔다.

1989년 12월 2-3일 지중해의 몰타섬에서 미국의 조지 H.W. 부시 대통령과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당시 소련의 최고 권력자였던 고르바초프가 미국에 사실상 항복하면서 동서 냉전이 끝나게 됐다. 노태우 정부는 이런 판세를 잘 읽어내고적시에 움직였기 때문에 1990년 9월 소련, 1992년 8월 중국과 수교하며 북방정책이 결실을거둘 수 있었다.

노태우 정부 때 북방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련 무기를 들여온 것은 우리 무기 체계를다각화하고,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북한 무기를 직접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지피지기 원리에 입각해 우리가 상대적으로 북한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내지는 견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덕에 러시아 무기를 모방하거나 역설계해서 독자적으로 만든 무기도 많이 있다. 러시아가 나로호 발사를 도와준 것도 그 연장선이었을 거다.

한 국가의 외교정책의 목표는 첫째가 안보 Security다. 둘째가 번영 Prosperity, 셋째가 권위Authority다. 첫째 목표인 안보의 방법론에서 1번은 자주국방이다. 혼자서 감당 못할 때 동맹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안보는 먼저 자기 힘으로 확보를 해야지 처음부터 남의 힘으로 보장받으려고 하면 안된다. 그러면 자칫 속이 될 수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지 않나.

동맹보다 상위개념이 자주국방이다. 동맹은 안본의 첫 번째의 방법이 아니라 두 번째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을 안보의 전부인 것처럼, 동맹 그 자체가 국방의 목표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품을 벗어나면 위험해. 빨갱이들이 그걸 노리고 있어 ‘이건대미 굴종을 정당화하려는 명분, 핑계일 뿐이다.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 아이젠하워는 2차대전에서 나치를 패망시키고, 노르망디상륙작전(1944)으로 전세를 뒤집어 승리를 이끌었다. 아이젠하워는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됐다. 맥아더는 태평양전쟁에서 연합군 사령관으로서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을 뿐만 아니라 6.25 전쟁 때 유엔군을 이끌고 인천상륙작전(1950)을 성공시켰다. 군인으로서의 경력에서는 맥아더가 아이젠하워보다 한수 위였을 텐데 이후 아이젠하워는 미국 대통령까지됐고 맥아더는 해임되어 은거했다. 나는 이 차이가 미국이 유럽을 더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나라가 석유로 경제를 발전시키지 않나. 미국은 석유로 세계경제를 장악하고 세계 경제질서를 움직일 수 있다고 계산하기 때문에 중동 지역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그만큼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도 크다. 오일 폴리틱스Oil politics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석유를 장악하고 석유 수송로를 통제하면 다른 나라들의 생명 줄을 쥐는 효과가 있다. 중국 등 미국의 이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들에 석유가 들어가는 양과 속도를 조절함으로써 그 나라 경제 상황과 발전 속도를 미국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동력이 중동 장악에서 나온다.

미국이 중동에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는 대신 원유 거래 통화를 미국 달러로 지정하도록 만들면서 모든 나라가 석유를 사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외환보유고를 달러로 채워야 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이 미국의 석유 패권이 유지된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소련의 일부였던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지역도 미국에게 중요하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는 바람에 러시아로 작아졌지만 아직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은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요충지로서 우즈베키스탄에 미군을 주둔시키고있다. 미사일도 배치해 놓았을 거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 대부분이 독립한 지 60년이 넘었지만 프랑스는 그 나라들에 여전히강압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다. 원자재 같은 천연자원을 헐값에 가져가는 등 프랑스가 지금까지 얻었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다. 프랑스가 설계하고 프랑스 재정부가 발행하고 통제하는 CFA 프랑을 쓰는 나라가아프리카에서 10개국이 넘는다. 프랑스는 심지어 자국만의 화폐를 도입하려는 나라에 위조지폐를 뿌려 경제를붕괴시키기도 했다.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지도자들을 주저앉히기 위해 암살하고 반군을 지원하고 학살을 묵인했다. 직접 군대를 보내 이들 정부를 무너뜨리기도 하면서 프랑스는 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을 놓지않으려 했다. 프랑스가 나쁜 놈들이다. 프랑스 지도층과 결탁해 권력과 이익만 챙기는 아프리카의 지도자들도문제다.

나토 병력을 제외하면 미군이 가장 많이 주둔하는 곳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이다. 그중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이 미국 본토를 제외하고 세계 최대 규모다. 일본을 감시하는 측면도 있고, 일본이 태평양을 미국의 바다로만드는 전초기지 역할도 해주고 있다. 한국에 있는 미군의 숫자는 2만 8천 명 정도로 일본보다는 적지만 한국은 미국에게 일본 못지않게 중요하다. 옛날에는 북한 때문이었다지만 지금은 중국 때문이다. 경기도 평택시에있는 캠프 험프리스는 미군의 해외기지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다.

중국은 1972년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외교정책을 조정하고부터 관계를 적절하게 관리해나가는 동시에 대국이 되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1978년 12월 18일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4개 현대화‘를 당의 노선으로 채택하고 이를 위해 개혁·개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결정한 뒤에 중국 경제는 미국 전문가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발전했고, 드디어 2010년에 명목 GDP 면에서 일본을 제치고 G2가 되었다. 미국의 턱밑까지 다다른 것이다.

한漢-당 이래 명-청조까지 유지됐던 팍스 시니카가 문화제국이었다면 지금 중국은 군사강국까지 겸한 두 번째 팍스 시니카 시대를 열어야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게 중국몽이다. 2049년에는 다시 천하를호령하는 나라가 되겠다는 중국의 계획이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일본몽도 있다. 대동아공영권은 지난 얘기가 아니다. 지금 일본은 자위대의 힘을 키우고 해외 출병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고치려 노력하고 있지 않나. 군사력을 키워놓고 미국의 힘이 빠질 때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나라가 돼야겠다는 거다. 우리는 일본이 밉고 싫지만, 일본의 그런 목표를 비도덕적이다. 비윤리적이다 말할 수없다. 국제정치도 정치인데 거기에다가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면 바보다. 국내 정치는 국제정치는 정치는 현실이고 현실은 선악이 아니라 결국 유불리로 결정 나는 거다. 그래서 미국도 패권을 잃지 않고 계속 군림하려고하는 거 아닌가.

2022년 6월 29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2년 만에 정치·군사적 우선순위를 업데이트하면서 처음으로 중국에 관한 내용을 넣었다. 중국을 "나토의 안보에 도전하고 있는 존재"라고 언급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 간에 경제적 연계가 없으면 처음부터 ‘적‘으로 규정하고 밀어붙였을테지만, 중국에 투자한 미국 회사들이 많은 만큼 중국과의 관계를 엎어버리면 미국 경제도 망한다.

이렇듯 미국 혼자 힘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동맹국들을 동원해 중국의 힘을 빼고 중국의 부국강병 속도를 늦추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이 또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동맹국이지만 이해관계가 다른 국가들이 미국을 무조건 지원하고 참여하던 시절도 지나갔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의 세계에는 공짜도 없고 영원한 동맹도 없다. 2021년 9월 미국이 갑자기 호주에게 핵잠수함 기술을 줬다. 중국을 압박하는 데 호주를 앞장세우고 싶은데 호주가 대가 없이 미국의 이익에 장단을 맞춰주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 바람에 호주에 잠수함 기술을 팔기로 먼저 약속했던 프랑스가 미국한테 뒤통수를 맞았다. 그러자프랑스가 바로 미국이 하는 일에 어깃장을 놨다. 2022년 미국이 베이징올림픽을 외교적으로 보이콧한다는데도 프랑스 정부 공식 대표단은 베이징올림픽에 간 것이다. 그동안 유럽은 먹고사는 데 미국이 도움이 되고, 유럽에 버티고 있는 5만 명 가까운 나토군을 미국이 통제하며 국제안보질서를 장악하고 있으니까 함부로 반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프랑스가 결정적인 이해관계를 침해받자 미국과 다른 자기 목소리를 낸 것이다.

햇볕정책의 첫 번째 성과는 금강산 관광이다. 김대중 대통령 임기 초인 1998년 11월 18일 시작한 금강산관광은 김대중 대통령의 결기가 아니었으면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사건‘이었다. 미국에 물어보지 않고 독자적으로 저질러 버리는 식으로 결행하고 사후에 미국을 설득했다. 그렇게 결국 미국이 어쩔 수 없도록 만들어 끌고갔던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미관계, 남북관계를 비롯한 국제정치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서 상당히 탄탄한이론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이 직접 미국 대통령을 설득했다. 그건 대단한 거다. 이론이 아무리 빵빵해도 엄두를 내어 미국 대통령과 마주한 그 자리에서 직접 설득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이명박 정부는 한중 경제협력 규모가 만만치 않아졌는데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절하게 처신하면서국익을 최대화하기보다는 확실하게 미국 편에 서버렸다. 우리가 북한과 만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결과적으로 미국도 북한과 회담을 못 하게 만들었다. 노무현 정부 때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미국과 손잡고 시작한 6자 회담에,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를 안 하고 있으니까 안 가겠다고 했다. 당사국으로 핵 문제 해결이 제일 아쉬운 건 한국인데, 정작 한국이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6자 회담에 안 나가겠다‘고 하니 미국으로서도 6자 회담을 더 이상 끌고 갈 동력이 없어진 셈이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된 6자 회담은 이명박 정부초년인 2008년 12월에 본회담도 아니고 수석대표들이 베이징에서 한 번 만나 티타임을 가졌는지 그러고는 중단되었다. 결국 다음 해인 2009년 5월 25일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해버렸다.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 모두 결국 미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리고 주한미군 사령관한테 맡겨놨던 전시작전통제권이돌아오면 비로소 명실상부한 군사주권이 생기는 거다. 2012년 4월 17일로 합의했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이명박 대통령 때문에 2015년 말로 연기됐고, 박근혜 대통령 때문에 북핵 문제가 해결된 뒤로 미뤄졌다. 문재인 정부가 찾아오겠다고 대선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임기 내에 실현하지 못했다.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 손아귀에 있어도 때로는 노무현 대통령 때처럼 거래 개념으로 접근하든지, 김대중 대통령처럼 설득을 해서 미국이 우리 입장에 따라오도록 만들 수 있다.
그 기본은 ‘미국이 싫어하는 일도 나는 할 수 있다‘는 배짱이다. 배짱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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