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 명사로서의 언어에 상응하는 보편이 과연 실재하는가 하는 것이다. 즉 여러 개체에 공통적으로 내재된보편이 개체적 사물의 보편적 본질로서 과연 존재하는가? 예를 들어 ‘이것은 소이다‘ 또는 ‘저것은 소이다‘를 말할 때, 이것 저것을 ‘소‘라는 하나의단어로 칭할 수 있게 해 주는 소의 본질 즉 우성性이라는 것이 과연 있는가? - P64
인식은 모두 허망성을 벗어날 수 없다. 불교에서는 이 일반 명사를 명이라고 하고, 개념들 간의 연관에서 성립하는 명제를 구미라고 한다. 이렇게해서 불교에서는 우리의 언어적 표현에 상응하는 보편적 관념이 과연 실재하는가 아닌가에 관한 논의를 명구문신 논의라 칭하는데, 구사론에서는 명구문 각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명은 상想을 일으킴을 말한다. 예를 들어 색·성·향·미 등의 상이다. 구미는 문장(章)을 말하며, 그 뜻을 나타냄(能)이 완전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제행무등의 문장이다.… 문은 낱자(字)를 말한다. - P65
명은 이름을 뜻하며, 이름은 우리에게 그 지칭된 것에 대한 심상을일으킨다. 예를 들어 ‘색깔‘, ‘소리‘ 등의 이름이 그것이다. 일반 명사 또는개념이 이에 해당한다. 구는 하나의 명사가 아니라 명사들이 결합하여이루어진 문장을 말한다. ‘일체 존재는 무상하다‘와 같은 것이 그것이다. - P65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소리나 문자로서의 말(語)에 있어서그 말이 나타내는 의미(義) 또는 관념이 과연말로부터 독립하여 객관적으로로 실재하는가 하는 것이다. - P66
명구문에 관해서는 경량부적 관점에서 유부를 비판하는 방식으로 씌어진 『구사론』에 따르면, 유부에서는 말과 명을 서로 구분하고 있으며 명은 말을 통해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이미 독립적실체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는 말을 형성하는 소리와 무관하게 이미 독립적 의미체가 존재하고 있다고 보는 의미현현론적 입장이다. 물질적 색과는다른 차원의 관념적 보편을 객관적 실재로 인정하는 것이다. - P67
소리상의 음운굴곡이 곧명구문이며, 이는 소리와 달리 실유이다.
이처럼 소리나 문자로서의 말과 구분하여 그 말의 의미체인 그 자체로서 실재하는 보편적 명을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의미 자체 또는 보편은 말이 가지는 글자나 소리의 영역, 즉 안식이나이식 대상인 색경이나 성경이 아니라는 뜻이다. - P68
이와 같이 물리적 실재도 심리적 실재도 아니면서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이런 실재를 우리는 논리적 실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논리적 실재로서의 보편 또는 의미란 현상 사물들이 따라야 하는 보편적 질서를 뜻한다. - P69
유부는 보편적 실재로서의 명구문신이 색이나 심을 떠나 독립적으로 실재한다고 보았다. 즉 성경聲境으로서의 색법에 속하는 소리와 그 소리를 통해 나타나는 음운굴곡을 구분하여, 말소리에 담긴 음운굴곡은 곧 의미를 드러내는 명구문으로서 현상적 소리와는 다른 차원의 실유라고 본것이다. 이는 소리의 음운굴곡이 나타내는 보편적 의미는 말과 독립적으로실재하며 말은 단지 그 의미를 드러낼 뿐이라는 의미현현론의 입장이다. - P70
이에 반해 유식에서는 말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의미를 전달해주는 매개적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말에 의해 비로소 의미가생성된다는 의미생기론의 관점을 취한다. 한마디로 말해 객관적 실유로서의 보편 또는 보편적 의미체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P70
의미를 전해 주는 것은 오직 말소리뿐이다. 말소리는 그 말소리 너머에따로 존재하는 보편적 의미체로서의 명구문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말소리의 음운굴곡을 통해 명구문신의 의미를 비로소 생성시키는것이다. 그러므로 명구문신은 말소리 너머에 논리적 의미 또는 보편자로서따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 P72
보편적 의미 또는 보편적 명제를 인식하는 식은 어떤 식인가? 보편 아닌 개체, 관념 아닌 물질로서의 색을 인식하는 것은 감각이다. 그런데 우리의 인식은 오감의 감각으로써만 완성되지는 않는다. 감각이란 눈앞에 한송이 장미꽃이 있을 때 단순히 그 색깔이나 향기, 촉감 등을 느끼는 상태에지나지 않는다. 빨간색의 감각이란 그저 빨간색을 느끼는 상태일 뿐이다. - P73
(前五識) 이후의 의가 분별하여 망령되게 외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일으킨다.
이와 같이 감각과 구분되는 분별적 인식을 불교에서는 다섯 가지 감각적 인식 다음의 식이라는 의미에서 제6식 또는 의식이라고 부른다. 안식識이 안근眼根에 의거하여 행해지는 인식이라는 의미에서 그 근을 따라 안식이라 불리듯이, 의식이라는 명칭은 그 인식의 소의근所依根으로 생각되는 의를 따라 붙여진 것이다. - P74
즉 인간의 심성, 의지, 뜻 등을 의미하는 의에 의거해서 분별적 의식작용이 행해진다고 본 것이다. 이 의식의 작용이 곧 분별分別이다. 그렇다면 무분별적 감각과 분별적 의식은 어떤 방식으로 관계하는가? 빨간색의 감각이 먼저 있고 나서 분별 의식이 있는가? 아니면 감각 자체가 발생할때 동시에 의식의 분별이 행해지는가? 유식에서는 의식이 전오식의 대상과 동일한 대상을 인식할 경우 전오식과 의식이 동시에 발생한다고 본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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