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만 우리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손으로 만질 수 있으며, 또 그 자리에서는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것만을보거나 만질 수 있다. 이러한 직접적 감각 경험은 불교 인식론에 따르면현재적 인식이란 의미에서 현량에 속한다. 현량의 감각 대상은 바로시공간 상의 구체적 대상인 개체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체는 우리의 오감에 주어지는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이다. 사람이는 소든 꽃이든 시공간을점한 구체적 개체라는 점에서는 돌멩이와 다를 바 없으며, 그 점에서 그것은 돌멩이와 마찬가지로 물질이다. 이러한 물질을 불교에서는 색이라고한다. - P32
모래가 쌓여 모래성을 이루고 있다면, 그것을 색으로 고찰할 경우 그자체로서 존재하는 궁극적 실재는 과연 무엇인가? 쌓여 이루어진 모래성인가 아니면 그 성을 이루는 모래인가? 모래성은 모래를 쌓아 놓으면 있지만 모래가 바람에 날려 흩어지면 없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궁극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쌓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요소로 다시 분석될수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실재하는 것은언제나 그 자체로서 실재하는 것, 없어질 수 없는 것, 한마디로 말해 더이상 분석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이와 같이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물질(색)의 궁극적 미립자를 불교에서는 극미(極微)라고 한다. - P33
물질의 궁극 요소로서의 극미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런 극미로 이루어진 개체적 사물들 역시 실재한다는 것을 함축하는 말이다. 물질적 개체가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을 이루는 궁극 요소로서의 극미가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체인 제소유색 실유성을 주장하는 유의부에서는 적극적으로 색의 궁극적 단위인 극미의 실유성을 주장하게된다. - P34
다양한 현상을 가능한 한 최소한의 원리로 종합하여 설명하고자 하는철학적 사유 방식에 따라 불교는 사물의 다양한 성질을 궁극적으로 지수·화. 풍風의 네 가지 기본 요소로 환원한다. 그리고 이 4요소를, 색을 형성하는 질적인 기본 단위로서 그 작용의 결과가 막대하게 크다는 의미에서 ‘대‘자를 붙여 사대四大라고 칭한다. 따라서 색이란 곧 사대 자체또는 사대가 모여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 P35
지·수 · 화 · 풍이라고 불린다고 해서 우리 눈에 보이는 가시적사물로서의 지·수·화·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 각각이보유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견 ·습濕. 난. 동의 성질을 뜻할 뿐이다. 즉 사대란 본래 사대의 성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이 성性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가? 그것은 지.섭·숙 · 장이라는 그 사대의 업을 통해 밝혀진다. - P36
극미란 지 · 수 · 화 · 풍으로 대변되는 견 ·습濕·난媛• 동의 네 성질의화합물, 또는 지 • 섭攝· 숙熟·장長이라는 작용을 일으키는 힘 이외의다른 것이 아니다. 사대가 극미를 형성하는 기본 성질이기는 하지만 그네 성질은 서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사물의 최소 단위는 바로 극미가 되는 것이다. - P38
유부에 따르면 사대의 성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함께하여 일극미를 이루게 되는데, 그런 성질의 극미 또한 각각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7개가 모여 함께함으로써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이처럼 함께 모인 7개극미의 합을 미진微塵이라 하는데, 비가시적인 극미가 7개 모여 일미진이되면 이 미진은 일극미와는 달리 시각적으로 경험 가능해진다. - P39
이 신유부의 관점은 성유식론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
색 등 각각의 극미는 화집하지 않았을 때는 오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함께 화집할 경우 전전하여 거친 상이 생하는데, 그것이 오식의 대상이된다. 그상은 실유이며, 식에 의해 인식되는 것이다. - P41
심왕이나 심소 이외의 색을 식과 무관한 독립적 실재로 인정하지 않는 유식에서는 그와 같은 색법의 비실유성을 ‘색법을 구성하는극미 자체가 실유가 아님‘에 근거하여 논증한다.
대상이 되는 색色은 분명히 실유實有가 아니다. 그것을 이루는 극미실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 P42
거친 상에 대한 식은 미세한 상의 대상을 반연하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유식은, 극미가 낱낱으로는 직접 지각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이 화합 또는 화집한 경우 전오식의 대상이 된다는 구유부와 신유부의 주장을 각기 비판한다. 화합하든 화집하든 극미가 전오식의 대상이 될 수는없으므로 그것이 실유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P47
이러한 유부와 경량부의 극미론에 대한 유식 비판의 결론은 극미란 실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식에서의 극미란 과연 무엇인가?
거친 색법에 실체가 있다고 집착하는 사람을 위해 부처가 극미를 설하여 그집착을 분석하여 없애려 한 것이지, 모든 색법에 실제로 극미가 있다는 것을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모든 유가가상의 지혜로써 거친 색들이의상을 점차적으로 분석 제거하여 더 이상 분석할 수 없는 것에 이르러 극미를가설한 것이다.……… 따라서 극미를 색의 극한 개념이라고 설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대상이 되는 색은 모두 식이 변현한 것이지 극미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 P49
유식에서 색법은 실유가 아니라고 강조할 때, 그 말은 색법이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색법은 식을 떠나서 따로 존재하는독립적인 객관 실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왜냐하면색법으로 분류되는 개체적 사물의 존재 자체는 부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존재하는 그 개체적 색법이 식으로부터 떨어져 따로 성립할 수 있는가 아닌가이다. - P50
다시 말해 색법으로 분류되는 안眼 이耳 비鼻·설·신身 오근五根과 색色 성聲·향·미·촉 오경은 독립적인 궁극적 물질로서의 극미가 화합 또는 화집하여 형성된 실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극미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식 자체가 전변해서 식의 소의소연所緣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34) 그러므로 유식이 적극적으로 극미의실유성을 부정하고 그런 극미로 이루어진 색법의 실유성도 부정한 까닭은, 그렇게 함으로써 색법이란 것은 식 바깥의 극미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오히려 식의 변현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그리하여 식을 떠나 존재하는물질적인 객관적 실체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 한마디로 ‘식외무경外無境‘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 P51
현량으로 주어지는 감각 대상으로서의 소연경 즉 색법은 그 자체로서식과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닌가? 유식무경을 반박하는 이러한 반론에 대한 유식의 대답이 성유식론』제7권에 실려 있다.
[문] 색 등 외부 대상은 분명히 현량으로 증득된다. 현량으로 얻어지는 것인데 어째서 부정하여 없다고 하는가?
[답] 현량으로 증득할 때에는 외적인 것이라고 집착하지 않는다. 이후의 의가분별하여 망령되게 외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일으킨다. - P52
소위 말하는 안식 등은…… 그 자신을 떠난 색 등을 친히 반연하지 않는다.………… 식에 의해 친히 반영된 것은 그것(반연하는 식)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
이 말은 각 식이 대상으로 삼는 경을 식과 무관한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연하는 식이 있기에 반연되는 경境이있다. - P53
감각된 빨간색은 그 빨간색의 감각을 떠나 존재하는것이 아니다. 빨간색 자체가 빨간색의 감각을 떠나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각된 세계, 즉 색 · 성 · 향 · 미 · 촉의 오경은 그에 대한 감각 활동, 즉 안 · 이 · 비 · 설 · 신의 오식을 떠나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세계로 객관화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반연된 경은 그것을반연하는 식과 분리될 수 없다는 유식의 주장이다. - P54
우리가 보는빨간 장미꽃은 우리에 대해서만 빨간색이지 개나 물고기 또는 지렁이에대해서도 역시 빨간색일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이처럼 빨간색이란 빨간색을 인식하는 그 감각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감각 대상인경은 그것을 감각하는 식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감각 대상으로서의 물질적 색은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 P57
유식은 무슨 근거에서 오식의 소연경과 마찬가지로 오식의 소의근 역시 인식 너머에 그 자체로서 실재하는 것으로 객관화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안眼 등의 근현량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능히 식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추리하여(으로) 그것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공능일뿐이지외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안 등의 식을 일으키는 것을 안 등의근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 P58
엄밀히 말해 우리가 직접적으로인식하는 것, 우리가 일차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 즉 우리의 현량 대상은바로 우리 자신의 식이지 그 식을 산출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인식 기관이결코 아니다. 예를 들어 빨간색이 감각되었을 때 직접적으로 감각되는 것은 빨간색(境) 또는 빨간색에 대한 감각(識)이지 감각 기관으로서의 눈이나신경 또는 두뇌 그 어느 것도 아니다. 그런 것들은 현량 대상이 아니다. - P59
외적인 시각 내지 촉각 대상으로서의 감각 세계와 그런 감각을 일으킨다고 생각되는 안·이·비· 설 · 신 등의 감각 기관으로서의신체는 모두 감각이라는 단일한 현상인 인식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그 인식을 떠나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감각의 근과 경에대해 유식무경이 성립한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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