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게 김 첨지, 자네 문안 들어갔다 오는모양일세그려. 돈 많이 벌었을 테니 한잔 빨리게." 뚱뚱보는 말라깽이를 보던 맡에 부르짖었다. 그 목소리는 몸집과 딴판으로 연하고 싹싹하였다. 김첨지는 이 친구를 만난 게 어떻게 반가운지 몰랐다. 자기를 살려 준 은인이나 무엇같이 고맙기도 하였다. - P16
주린 창자는 음식 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 들이라 하였다. 순식간에 두부와 미꾸리 든 국 한 그릇을 그냥 물같이들이켜고 말았다. 셋째 그릇을 받아 들었을 제데우던 막걸리 곱배기 두 잔이 더웠다. 치삼이와 같이 마시자 원원이 비었던 속이라 찌르르하고 창자에 퍼지며 얼굴이 화끈하였다. 눌러곱배기 한 잔을 또 마셨다. - P17
치삼은 의아한 듯이 김 첨지를 보며, "여보게 또 붓다니, 벌써 우리가 넉 잔씩 먹었네, 돈이 사십 전일세." 라고 주의시켰다. "아따 이놈아, 사십 전이 그리 끔찍하냐. 오늘 내가 돈을 막 벌었어. 참 오늘 운수가 좋았느니." - P18
"봐라 봐! 이 더러운 놈들아, 내가 돈이 없나, 다리뼉다구를 꺾어 놓을 놈들 같으니." 하고 치삼의 주워 주는 돈을 받아, "이 원수엣 돈! 이 육시를 할 돈!" - P19
곱배기 두 잔은 또 부어질 겨를도 없이 말려가고 말았다. 김 첨지는 입술과 수염에 붙은 술을 빨아들이고 나서 매우 만족한 듯이 그 솔잎송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또 부어, 또 부어." 라고 외쳤다. - P20
치삼은 어이없이 주정뱅이를 바라보며, "금방 웃고 지랄을 하더니 우는 건 또 무슨일인가." 김 첨지는 연해 코를 들이마시며, 66 "우리 마누라가 죽었다네." "뭐, 마누라가 죽다니, 언제?" "이놈아 언제는, 오늘이지." - P21
"엣기 미친놈, 거짓말 말아." "거짓말은 왜, 참말로 죽었어, 참말로…………마누라 시체를 집에 뻐들쳐 놓고 내가 술을 먹다니, 내가 죽일 놈이야, 죽일 놈이야." 하고 김 첨지는 엉엉 소리를 내어 운다. - P22
김 첨지는 취중에도 설렁탕을 사가지고 집에다다랐다. 집이라 해도 물론 셋집이요 또 집 전체를 세든 게 아니라 안과 뚝 떨어진 행랑방 한간을 빌려 든 것인데 물을 길어 대고 한 달에일 원씩 내는 터이다. 만일 김 첨지가 주기를띠지 않았던들 한 발을 대문에 들여놓았을 제그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靜寂)─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 같은 정적이 다리가 떨렸으리라. 쿨룩거리는 기침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 P23
혹은 김 첨지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 난장 맞을 년, 남편이 들어오는데 나와보지도 않아, 이 오라질 년." 이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제 몸을 엄습해 오는 무시무시한 증을 쫓아 버리려는 허장성세인 까닭이다. - P24
방 안에 들어서며 설렁탕을 한구석에 놓을사이도 없이 주정꾼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런 오라질 년, 주야장천 누워만 있으면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 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 P25
"이 눈깔! 이 눈깔! 왜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천장만 보느냐,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눈에서 떨어진 닭의 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김 첨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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