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이날이야말로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꾼 노릇을 하는 김 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 P3

그의 아내가 기침으로 쿨룩거리기는 벌써 달포가 넘었다. 조밥도 굶기를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약 한 첩 써본 일이 없다. 구태여쓰려면 못쓸 바도 아니로되 그는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信條)에 어디까지 충실하였다. - P4

그때도 김 첨지가 오래간만에 돈을 얻어서 좁쌀 한 되 십 전짜리나무 한 단을 사다 주었더니 김 지의 말에 의지하면 그 오라질 년이 천방지축으로 냄비에 대고 끓였다. 마음은 급하고 불길은 달지 않아 채익지도 않은 것을 그 오라질 년이 숟가락은 고만두고 손으로 움켜서 두 뺨에 주먹덩이 같은혹이 불거지도록 누가 빼앗을 듯이 처박질 하더니만 그날 저녁부터 가슴이 땡긴다, 배가 켕긴다고 눈을 흡뜨고 지랄병을 하였다. - P5

인제 설렁탕을 사줄 수도 있다. 앓는 어미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개똥이 (세살먹이)에게 죽을사줄 수도 있다―팔십 전을 손에 쥔 김첨지의마음은 푼푼하였다. - P6

"나가지 말라도 그래, 그러면 일찍이 들어와요."
하고, 목 메인 소리가 뒤를 따랐다.
정거장까지 가잔 말을 들은 순간에 경련적으로 떠는 손 유달리 큼직한 눈, 울 듯한 아내의얼굴이 김 첨지의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 P8

제 입으로 부르고도 스스로 그엄청난 돈 액수에 놀랐다. 한꺼번에 이런 금액을 불러라도 본 지가 그 얼마 만인가! 그러자그 돈 벌 용기가 병자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설마 오늘 내로 어떠랴 싶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일 제이의 행운을 곱친 것보다도 오히려 갑절이 많은 이 행운을 놓칠 수 없다하였다.
"일 원 오십 전은 너무 과한데."
이런 말을 하며 학생은 고개를 기웃하였다. - P9

이윽고 끄는 이의 다리는 무거워졌다. 자기집 가까이 다다른 까닭이다. 새삼스러운 염려가 그의 가슴을 눌렀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이런 말이 잉잉 그의 귀에 울렸다. 그리고 병자의 움쑥 들어간 눈이 원망하는 듯이 자기를노리는 듯하였다. 그러자 엉엉 하고 우는 개똥이의 곡성을 들은 듯싶다. 딸꾹딸꾹 하고 숨 모으는 소리도 나는 듯싶다. - P10

그럴 즈음에 그의 머리엔 또 새로운 광명이 비쳤나니 그것은 ‘이러구갈 게 아니라 이 근처를 빙빙 돌며 차오기를 기다리면 또 손님을 태우게 될는지도 몰라‘란 생각이었다. 오늘 운수가 괴상하게도 좋으니까그런 요행이 또 한 번 없으리라고 누가 보증하랴. 꼬리를 굴리는 행운이 꼭 자기를 기다리고있다고 내기를 해도 좋을 만한 믿음을 얻게 되었다. - P12

인력거가무거워지매 그의 몸은 이상하게도 가벼워졌고그리고 또 인력거가 가벼워지니 몸은 다시금무거워졌건만 이번에는 마음조차 초조해 온다.
집의 광경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어 인제 요행을 바랄 여유도 없었다. 나무 등걸이나 무엇같고 제 것 같지도 않은 다리를 연해 꾸짖으며갈팡질팡 뛰는 수밖에 없었다. - P14

한 걸음 두 걸음 집이 가까워 갈수록 그의 마음조차 괴상하게 누그러웠다. 그런데 이 누그러움은 안심에서 오는 게 아니요 자기를 덮친 무서운 불행을 빈틈없이 알게 될 때가 박두한 것을 두리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불행에 다닥치기 전 시간을 얼마쯤이라도 늘이려고 버르적거렸다. - P15

기적가까운 벌이를 하였다는 기쁨을에할 수 있으면 오래 지니고 싶었다. 그는 두리번두리번 사면을 살피었다. 그 모양은 마치 자기집곧 불행을 향하고 달아가는 제 다리를 제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으니 누구든지나를 좀 잡아 다고, 구해 다고 하는 듯하였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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