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은선
나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존재만으로 다른생명들에게 힘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 P62
작년 겨울있었던가지치기로 인해 잘려나간 가지들이 안쓰러워 보였다. 나는 괜히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잠시 나무를 살핀 후 나무 위에 손을올렸다.
‘너도 힘들겠다. 이런 협소한 공간에서 사느라.‘ - P63
‘나도 온전한 내 모습으로 있을 곳이 없는데, 너도 온전한 모습으로 자랄 곳이 없구나.‘
손바닥 너머로 만져지는 나무껍질은 보이는것처럼 딱딱하고 거칠었다. 가만히 그 위에 손을 올리고 있자니 껍질 너머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무 안에서 흐르는 작은 고동이나에게로 흘러들어왔다. 그 찰나의 순간 나무와 동화된 것 같은 마음에 작은 울림이 일었다. - P63
나무에게 무언의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손바닥 위로 나무껍질의 느낌이 계속 남아 있는 듯했다. - P64
창밖을 보며 가만히 앉아 있는데 귀 뒤가 약간 거슬려서 보니 나뭇잎 같은 게 붙어 있었다. 별생각 없이 나뭇잎을 떼는데 이상한 느낌이들었다. 그러니까 손거스러미를 뗄 때보다는약하고 머리카락을 뽑을 때보다는 강한 불편함이 있었다. 귀 뒤를 만져보니 평소와는 달리 사포를 문지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P64
도착할 때가 되어 버스에서 내리니 비 오기전처럼 공기가 축축했다. 젖은 공기가 피부로적나라하게 느껴지는 것에 얕은 소름이 돋았다. 공기가 달라붙는 듯한 감각이 이상하다는생각과 함께 내가 원래 이렇게 날씨에 예민했나 의문이 들었다. 오늘따라 유달리 온몸으로숨쉬는 것 같은, 특히 두피에 숨구멍이 열린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착각이겠지. 머리를 크게한 번 흔들었다. - P65
학교 화장실에 들어가서 보니 얼굴과 목 앞면을 제외하고 두피부터 어깨와 팔까지 나무화가 되어 있었다. 나뭇잎도 군데군데 달려 있었는데 가을이어서 그런지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일단 보이는 건 다 뽑았다. - P66
숨을 죽이고 동태를 살폈는데 다행히 별다른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다. 그 상태로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고 그제야 몸을 좀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나무껍질로 뒤덮인 몸은 볼수록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다. - P67
보면 또 그게 아니었다. 내일 친구들을 만나서물어보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가 나무로 보이는지 알게 되겠지. 거기까지 생각하자 갑자기신간이 편해지면서 숨어 있는 것도 여유롭게즐기는 마음이 되었다. - P68
손가락이 가지 모양으로 갈라져 움직이는 게신기했다. 평소보다 움직이는 게 느리고 힘이들었는데 완전히 나무가 되면 못 움직인다는게 실감이 났다. - P69
나는 나무의 생애를 떠올렸다. 나무는 씨앗에서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그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하지만 나는 씨앗부터 자라지 않았다. 이미 자라버린 나무는 갈 곳이 없어 슬픈것일까. 아니면 나도 뒤뜰의 나무처럼 그저 상황에 맞춰 잘려야 하는 걸까. 나는 내가 되고싶었을 뿐인데 그게 이렇게나 힘든 일인 줄 미처 알지 못했다. - P72
나의 근원과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후드득 떨어져내리는 불안에 눈을 깜빡여 대응했지만 그것은 이미 마음 한구석에 싹을 틔운 후였다. - P73
나는 내일이면 그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찾지못한 채, 아무도 일으켜주지 않을 혼이 빠져나간 나뭇조각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고, 입밖으로 빠져나가는 숨결을 느끼며 나는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오늘의 꿈은 없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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