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까지만 해도 야구경기장은 기업 임원과 블루칼라 노동자가 나란히 앉아 경기를 관람하고, 핫도그나 맥주를 사기 위해 똑같이 줄을 서며, 비가 오면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젖는 곳이었다. 하지만 경기장 높이 자리한 스카이박스가 등장하면서 부자와 특권계층은 아래의 일반 관람석에 앉는 보통 사람들과 분리되었다. 비싼 입장료를 받는 스카이박스는 야구장의 훌륭한 수입원이 되고 이를 이용하는 관객도 만족스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 장려해야 할 제도일까? 세대와계층 간의 차이를 뛰어넘어 같은 팀을 함께 응원하던 공감대와연대의 가치는 변질되어도 괜찮을까?
과거의 사인 사냥꾼들은 자신들의 영웅에 매료된 아이들이었지만 요즈페음 사인을 받으려는 무리에는 수집가·딜러·투자가 등도 있다... 이긴(Fagin,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로 어린이를 소매치기 · 도둑질의 앞잡이로 만드는 나쁜 노인-옮긴이)과 그를 따르는 세상에 닳고 닳은 꼬마들처럼, 딜러들은 종종 아이들과 함께 일하면서 사인을 모아 판매한다. 투자가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공예품이나순수 예술작품처럼 래리 버드(Larry Bird),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 돈 매팅리 (Don Mattingly), 호세 칸세코(Jose Canseco)의 사인도 시간이 흐르면 그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 전제하고 사인을 매입한다. " - P229
여기 시장이 규범을 변질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있다. 기록을 세운 야구공을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보기 시작하면 그공을 친 선수에게 공을 돌려주는 것은 더이상 단순히 품위 있는 행위로만 비치지는 않는다. 그것은 너그러움을 나타내려는 영웅주의적 행위이거나 아니면 자기 소유물을 어리석게 낭비하는 행위다. - P231
거래 대상은 운동선수의 사인과 물건만이 아니다. 야구장 이름 또한 거래된다. 양키 스타디움이나 펜웨이 파크(Fenway Park)처럼 역사적인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야구장이 있기는 하지만, 요즘 메이저리그 소속 팀 대부분은 최고 가격을 제시하는 입찰자에게 명명권을 팔고 있다. - P233
경기장 명명권의 거래가 매우 흔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최근이러한 관행이 어떻게 유행하게 되었는지 잊기 쉽다. 명명권 거래는 야구선수들이 자신의 사인을 팔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비슷하게 생겨났다. 1988년에는 세 군데의 경기장에서만 명명권의 거래가 이루어졌고거래 총액도 2500만 달러에 불과했다. 2004년에 이르자 거래는 66건으로, 총 36억 달러에 이르렀다. - P234
미국 생활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활동과는 달리 야구·미식축구·농구·하키 등의 운동경기는 사회구성원을 결속하고 시민에게 자부심을부여는 원천이다. 뉴욕에 있는 양키 스타디움부터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캔들스틱 파크(Candlestick Park)에 이르기까지 스포츠 경기장은 시민 종교의 대성당이자 각양각층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상실과 희망을공유하고, 신성 모독적 의식을 치르기도 하고 기도를 하기도 하는 공공장소다. - P237
호화 특별관람석에서 나오는 수입은 팀에 훌륭한 재원이었으므로1990년대에 경기장 건축을 부추겼다. 하지만 비판가들은 사람들이 지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한데 섞여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던 관습이스카이박스의 등장으로 파괴되었다고 비난했다. 조너선 콘(JonathanCohn)은 이렇게 썼다. "스카이박스의 은밀하고 경망스러운 특성은 미국 사회의 본질적인 결점, 즉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분리시키려는 엘리트들의 열망과 필사적인 욕구를 부추긴다. 한때 지위 불안의 해독제로 작용했던 프로 스포츠가 지금은 오히려 그 질병에 지독하게 걸려있다." - P239
스카이박스의 윤리적 문제를 둘러싼 가장 최근의 논쟁은 미국 최대규모의 대학 경기장을 소유한 미시간대학교에서 벌어졌다. 빅 하우스(Big House)로 알려진 미시간 경기장에는 1975년 이후로 매년 홈경기가 열릴 때마다 10만 명 이상의 팬이 모여든다. 2007년 대학 이사회가학교의 상징인 스타디움에 스카이박스 증축을 포함하여 2억 2600만달러가 들어가는 보수계획을 검토하자 일부 동문들이 항의했다. 한 졸업생은 이렇게 주장했다. "대학 미식축구, 특히 미시간 미식축구의 위대한 점 중 하나는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이건 백만장자이건 모두 함께앉아 같은 팀을 응원할 수 있는 훌륭한 공공장소라는 것이다." - P241
최근 수십 년 동안 수집품 시장 · 명명권·스카이박스 등이 부상한 현실은 우리 사회가 시장 지향적이라는 사실을 반영한다. 스포츠계에서 시장중심 사고가 자리 잡고 있는 예로 최근에 야구공이 ‘머니볼(moneyball)‘로 탈바꿈하고 있는 현상을 들 수 있다. "머니볼이라는 용어는 마이클루이스(Michael Lewis)가 금융계의 통찰력을야구에 적용한 내용으로2003년에 발표한 베스트셀러 ‘머니볼』에 등장한다. 이 책에서 루이스는 값비싼 스타 선수들을 영입할 수 없는 작은 팀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선수들의 연봉 총액이 3분의 1에 불과한데도 오히려 부유한 뉴욕 양키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우승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비결을서술했다. - P242
2011년 『머니볼』은 할리우드 영화로 제작되었고 브래드 피트(BradPitt)가 빌리 빈 역을 연기했다. 하지만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영화를보고 전혀 감동을 받지 못했다. 브래드 피트는 언제나처럼 매력적이었고 카리스마가 넘쳤다. 그렇다면 영화가 만족스럽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부분적으로는 영화가 훌륭한 젊은 선발 투수 세 명과 올스타 유격수 미겔 테하다(Miguel Tejada) 등 스타 선수들을 비중 있게다루지 않고, 자격 미달이지만 포볼을 얻어내는 능력으로 빈에게 발탁된 선수들에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불만족스러웠던 진짜 이유는 정량적 방법과 효율적인 가격 결정 체제의 승리에 벌떡 일어나 환호를 보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 P243
실제로 내 친구이자 동료인 래리 서머스(앞서 말했던 경제적 이타주의에 대한 아침 기도를 했던 경제학자)는 머니볼 전략의 가격 효율성이 고무적이라고 생각했다. 2004년 하버드대학교 총장으로 재임 중이던 서머스는 연설을 하며 "지난 30~40년 동안 일어난 중요한 지적 혁명"의 실례로 ‘머니볼을 인용하면서 점차 부상하고 있는 사회과학, 특히 경제학을 "과학의 실제적 형태"라고 강조했다. 그는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야구 기술과 전략을 알아내기 위해 "매우 현명한 야구단 단장이 어떻게 계량경제학 박사를 고용하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서머스는 빈이거둔 성공에서 더 큰 진리를 보았다. 야구를 향한 머니볼 접근법에 삶의 교훈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야구에서 옳은 것은 실제 훨씬 넓은 범위의 인간 활동에서도 옳다." - P244
머니볼 전략은 최소한 장기적으로는 약자를 위한 전략이 아니라는사실이 밝혀졌다. 부자 팀들은 통계학자를 고용해서 그들이 추천하는야구선수들에게 가난한 팀보다 높은 연봉을 제시했다. 프로야구계에서선수들에게 가장 후한 연봉을 지불하는 팀 중 하나인 보스턴 레드삭스는 머니볼 전략의 추종자였던 소유주이자 단장의 지휘 아래 2004년과2007년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되었다. 루이스의 책이 출간되고 여러 해가 지나면서 메이저리그 팀의 승률을 결정하는 데 있어 돈이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 P245
머니볼 전략은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시장 침입 현상과 마찬가지로 야구 자체를 망치지는 않았지만 경기의재미를 떨어뜨렸다. 이는 내가 이 책에서 다양한 재화와 활동에 관해 말하려 했던 요점이기도 하다. 시장을 좀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 자체는 미덕이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이런저런 시장 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경기의 선을향상시키는지 훼손시키는지 여부다. 이는 야구뿐 아니라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에 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 P246
시장과 상업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분야는 스포츠 세계만이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상업 광고는 신문·잡지·라디오·텔레비전, 이제는 인터넷 등의 친숙한 영역을 넘어 삶의 모든 측면을 장악하고 있다. - P247
오늘날 정치적 논쟁은 위와 같은 근거로 대부분 규제 없는 시장을 선호하는 사람과, 공평한 경쟁의 장에서 선택이 이루어질 때에만, 그리고사회적 협조의 기본 조건이 공정할 때에만 시장에서의 선택이 자유롭다고 주장하는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어느 쪽 입장에 서더라도 시장중심 사고와 시장 중심 관계가모든 인간 활동을 침해하는 세상이 대체 왜 문제인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려면 부패와 타락이라는 도덕적어휘가 필요하다. 그러고 부패와 타락을 언급하려면 최소한 마음속으로라도 ‘좋은 삶(the good life)‘이라는 관념에 호소해야 한다. - P255
명명권과 광고에서의 부패는 두 가지 차원으로 작용한다. 일부 경우에 있어서 관행의 상업화는 그 자체로 타락이다. 따라서 기업의 후원을받은 광고 문신을 이마에 새기고 돌아다니는 것은 비록 자유로운 의사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개인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다. - P256
일부 공공시설에 대한 명명권 거래는 느리게 진행되었다. 2001년 매사추세츠 항만교통공단(MBTA)은 유서 깊은 보스턴 지하철역 4군데의 명명권을 팔려 했지만 관심을 보이는 기업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일부도시가 지하철역의 명명권을 파는 데 성공했다. 2009년 뉴욕 시 교통운수당국(MTA)는 브루클린에서 가장 오래되고 번화한 지하철역 중 하나의 명명권을 20년 기한으로 400만 달러를 받고 바클레이스은행(Barclays Bank)에 팔았다. - P261
경기장의 명명권과 기업 후원은 대중 사이에 도덕적 관점이 번지거나 최소한 대중에게 이를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순찰차광고를 둘러싼 반박이 수면 위로 떠오를 무렵, 대중들은 상업적 관행이시민 생활에 침입해 들어오는 문제에 관해 숙고할 준비가 돼 있었다. - P265
학교에 광고가 넘쳐나는 이유는 아이들의 구매력이 증가하고 가족소비에 미치는 아이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이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에 투자한 비용은 1983년 1억 달러에서2005년에는 168억 달러로 늘어났다. 아이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마케팅 담당자들은 학생들을 공략하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친다.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교육에 필요한 재원이 부족한 까닭에 공립학교는 기업의 이러한 마케팅 활동을 적극 환영하는 추세다. - P270
학교에 범람하는 상업화는 두 가지 면에서 부패했다. 첫째, 기업의후원을 받아 제작된 교과자료의 대부분은 편견과 왜곡, 피상적 내용으로 가득하다. 놀랄 것도 없이, 소비자 연맹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업에서 후원을 받아 제작된 교육자료의 80퍼센트가 후원자의 제품이나관점에 호의적인 방향으로 기울어 있다. 둘째, 설사 기업 후원자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질의 객관적 교육도구를 제공한다 해도, 상업적광고는 학교의 목적에 어긋나기 때문에 여전히 학교에 유해할 것이다. 광고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라고 부추긴다. 하지만 교육은 자신의 욕구를 비판적으로 돌아본 후에 욕구를자제하거나 향상시키라고 가르친다. 광고의 목적은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것인 반면, 공립학교의 목적은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 P272
그러다 보면 불가피하게 좋은 삶에 상충되는 개념에 관해 깊이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는 우리가 가끔은 발을 들여놓기를 두려워하는 영역이다. 우리는 반대에 부딪힐까봐 두려워서 자신의 도덕적·정신적 확신을 공공의 장에 내보이기를 주저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 맞서지 않고 뒷걸음질친다고 해서 문제가 미해결 상태로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시장이 우리 대신 결정을 내리도록 허용하게되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얻은 교훈이다. 시장지상주의 시대는 공공 담론에 도덕적·정신적 실체가 상당히 부족했던시대와 일치한다. 시장을 제자리에 놓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 관행과 재화의 의미에 관해 솔직하게 공개적으로 숙고하는 것이다. - P274
민주주의는 완벽한 평등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시민에게 공동체적생활을 공유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려면 배경 · 사회적 위치 · 태도·신념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매일 생활하며 서로 마주하고 부딪치는 것이중요하다. 그래야 서로의 차이를 견뎌내고 이를 놓고 협상하고 공공선에 관심을 쏟는 법을 배울 수 있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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