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경제학자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자신의 이익을 윤리로 대체하는방법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싶지 않다. 일반적으로 나는 시장 시스템이무너진 환경에서만 윤리적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타주의적 동기유발이라는 희귀한 자원을 무모하게 사용해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 P175
‘사랑의 경제화(Economizing Love)‘라는 개념은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자이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제자인 데니스 로버트슨(Dennis H. Robertson)경이 1954년 콜롬비아대학교 개교200주년 기념행사 강연에서 언급했다. 로버트슨의 강연 제목은 ‘경제학자는 무엇을 경제하는가?(What does the economist economize?)‘였다. 그는 경제학자들이 인간 존재의 "공격적이고 쟁취적인 본능에 영합하면서도 일종의 도덕적 사명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려 했다." - P176
로버트슨은 쾌활하고 사색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주장했다. 하지만사랑과 관용이 사용하면 고갈되는 희소 자원이라는 개념은 설사 대놓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경제학자들의 도덕적 상상력을 강력하게 사로잡고 있다. 이러한 개념은 공급과 수요의 법칙처럼 공식적인 교과서적 원칙은 아니다. 어떤 경제학자도 이 개념을 실험으로입증하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경제학자들이 여전히 동의하는 격언이자 대중적 지혜의 성격이 짙다. - P178
서머스는 경제학자들이 "개인에 대한 존중과 욕구, 취향, 스스로 내리는 판단과 선택을 상당히 강조한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일반적인공리주의적 입장에 서서 공공선을 사람들의 주관적 선호의 총합으로설명했다. "많은 경제학적 분석의 기초는 선(善)은 사람들의 자기 행복에 대한 개인적 평가의 총합이고, 별개의 도덕론에 기반한 개인적 선호와 분리되어서는 평가될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 P179
서머스는 이기심과 탐욕에 의존한다는 이유로 시장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응답하며 결론지었다. "우리는 누구나 내면에 많은이타심을 지니고 있다. 나와 같은 경제학자들은 이타심을 우리가 보존해야 하는 소중하고 드문 재화라 생각한다. 따라서 이기적인 개개인이모여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가족, 친구, 그리고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많은 사회 문제에 대한 이타심을 아껴둠으로써 보존하는 것이 훨씬 낫다." - P179
미덕에 대한 경제주의의 견해는 시장에 대한 신념을 불타게 하고 원래는 속하지 않았던 영역으로 시장을 확대시킨다. 하지만 비유가 잘못되었다. 이타주의 관용 결속 · 시민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시장 지향 사회의 결함 중 하나는 이러한 미덕이 쇠약해지게 방치하는것이다. 우리의 공공 삶을 회복하려면 좀 더 부지런히 미덕을 행사해야 한다. - P180
보험업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빌리자면 회사는 CEO에 대해 피보험이익(被保險利益, 손해보험에서 보험사고의 발생에 의하여 손해 "를 입을 우려가 있는 피보험자의 경제적 이익으로 간단하게 말해서 사망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는 권리 - 옮긴이)‘을 갖고 이를 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평사원 명의로 생명보험 가입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최근에나타난 현상이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러한 보험을 가리켜 ‘청소부 보험(janitors insurance)‘이나 ‘죽은 소작농 보험 (dead peasants insurance)‘이라 부른다. 최근까지도 이러한 보험은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불법이었다. 회사는 평직원의 생명에 대해 ‘피보험이익‘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보험업계가 대부분의 주 의회를 상대로 로비활동을벌이는 데 성공하면서 회사가 CEO부터 우편실 직원까지 전 직원의 명의로 생명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보험법이 완화되었다 - P185
2000년대 초에 이르자 기업 소유 생명보험의 대상 범위는 수백만 명의 근로자로 늘어났고 판매량 또한 전체 생명보험의 25~30퍼센트를차지했다. 2006년 미국 의회는 청소부 보험을 제한하기 위해, 보험에가입할 때 직원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연봉을 기준으로 전체 직원의 상위 3분의 1에 해당하는 직원으로 가입 대상을 한정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하지만 관행은 계속되었다. 2008년까지 미국 은행업계에서만도 직원 명의의 생명보험을 1220억 달러나 보유하고 있었다. - P187
나는 청소부 보험을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비양심적인회사가 치명적인 위험 요소를 직장에 나뒹굴도록 방치하거나 위험에서 눈길을 돌릴 수 있는 가능성을 언급할 뿐 아니라 이를 넘어선 도덕적 반박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둘러싼 도덕적 반박은무엇이고 그 반박에는 설득력이 있을까? - P188
문제는 동의(consent)의 부재와 관계 있을 것이다. 고용주가 알리지도 승낙을 받지도 않고 우리 명의로 생명보험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느낌이 들까? 이용당한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항의할 근거가 있을까? 보험증권의 존재가 우리에게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다면 고용주가 우리에게 보험가입 사실을 알리거나 동의를 받아야할 도덕적 의무는 없지 않을까? - P188
하지만 청소부 보험을 둘러싸고 제기될 수 있는 도덕적 반박의 근거에는 동의의 부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직원이 이런 제도에 동의하더라도 도덕적으로 못마땅한 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부분적으로는 이러한정책에서 살펴볼 수 있는 직원에 대한 회사의 태도다. 청소부 보험은직원이 살아 있는 것보다 죽었을 때 더욱 가치가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면서 직원을 사물화한다. 즉 회사는 직원의 가치를 직원의 업무에서 찾지 않고 직원을 상품선물(商品先物, 일반 상품을 매매 대상으로 하는 선물계약 -옮긴이)로 다루게 된다. 기업 소유의 생명보험이 생명보험의 목적을 왜곡한다는 반박도 있다. 한때 유족에게 안전망 역할을 했던 생명보험이 지금은 기업을 위한 세금혜택 정책의 일종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세금 체계가 왜 재화와 용역의 생산보다는 직원의 사망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도록 회사를 부추기는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 P189
우리는 보통 보험과 도박을 위험에 대한 서로 다른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보험은 위험을 완화시키는 반면에 도박은 위험을 유인하는 방법이다. 보험은 신중함과 관련이 있지만 도박은 추측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보험과 도박 사이에 그어진 선은 언제나 불안정했다." 역사적으로 생명에 대해 보험을 드는 행위와 생명을 걸고 도박을 하는 행위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성이 존재했기 때문에 생명보험을 도덕적으로 불미스러운 제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 P200
영국법은 보험과 도덕에 제재를 가하지 않았고 둘은 거의 분간할 수없었다. 18세기 들어 보험 ‘계약자‘는 선거 결과, 의회 해산, 영국 귀족의 사망 가능성, 나폴레옹의 사망이나 체포, 즉위 기념일을 몇 달 앞둔여왕의 수명을 걸고 도박을 벌였다. - P201
죽음을 놓고 벌이는 도박이 못마땅하다면, 틀림없이 시장논리를 넘어, 이러한 도박이 나타내는 비인간적인 태도 때문일 것이다. 죽음과 고통에 대한 무신경한 무관심은 도박꾼들의 나쁜 성격을 드러내는 증거다. 사회 전체로 보면, 이러한 태도나 이를 부추기는 제도는 부패하고천박하다. 상업화의 다른 사례에서 살펴보았듯이 도덕적 규범이 변질되거나 밀려나는 현상 자체가 시장을 거부하는 적절한 근거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의 생명을 놓고 도박을 벌이는 행위는 금전적 이익과 천박한 흥미를 추구할 뿐 사회적 선에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부패와 관련한 특징은 그 활동 자체를 경계할 강력한 이유가 된다. - P202
미국에서 생명보험의 도덕적 합법성은 천천히 발달했고, 19세기 말까지도 확고하게 뿌리내리지 못했다. 18세기 들어 몇몇 보험회사가 설립되었지만 대부분은 화재보험과 해상보험을 판매했다. 생명보험은 ‘강력한 문화적 저항‘에 부딪혔다. 미국 사회학자 비비아나 젤라이저(Viviana Zelizer)가 썼듯이 "죽음을 시장에 끌어들인 것은 생명의 존엄성과 그 공약 불가능성(公約不可서로 다른 패러다임은 같은 기준으로 잴 수 없다는 뜻옮긴이)을 뒷받침하는 가치체계를 어긴 행위다. " - P203
테러리즘 선물시장이 도덕적으로 좀 더 복잡해지는 이유는 데스는 달리 선한 일을 한다고 표명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가상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테러리즘 선물시장은 귀중한 정보를 이끌어낸다. 이 점에서는 말기환금과 비슷하다. 테러리즘선물시장과 말기환금이 처한 도덕적 딜레마의 구조는 같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치료비를 제공하거나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좌절시키는 등 가치 있는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타인의 사망과 불운으로부터 투자가들이 이익을 얻게 해주고이에 따르는 도덕적 대가를 치르는 것도 불사해야 할까? - P211
앨런 버거(Alan Buerger)는 새로운 산업을 개척했다. 1990년대 초에는 기업에 청소부 보험을 팔다가, 의회가 청소부 보험에 부여하던 세금혜택을 축소하자 말기환금으로 사업을 전환할까 고려했다. 하지만 건강하고 부유한 노인들이 더 규모 있고 장래성 있는 시장이라는 생각이들었다. 버거는 《월스트리트저널》에서 "마치 번개에 맞은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 P213
생명보험 전매산업에서 판매할 생명보험 증권을 찾기 위해 여러 기발한 방법이 사용되었고 이를 둘러싸고도 논쟁이 일었다.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생명보험 유통시장은 커다란 사업으로 성장했다. 크레디스위스(Credit Suisse)와 도이치방크(Deutsche Bank) 같은 헤지펀드및 금융기관들은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서 부유한 노인에게 생명보험증권을 사들였다. - P216
점점 성장하는 죽음을 사고파는 시장에 유일하게 남은 한 단계는 바로월스트리트에 의한 금융증권화다. 2009년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월스트리트 투자 은행들은 보험 증권을 사들여 채권으로 묶은다음에 연금 기금이나 기타 거대 투자가에게 재판매할 계획을 세웠다. 채권은 최초 보험계약자의 사망으로 만기에 이르러 지불되는 사망보험금에서 수입을 만들어낸다. 월스트리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주택저당에 실행해왔던 과정을 이제 ‘죽음‘에도 되풀이하려는 것이다." - P220
때로 우리는 시장이 제공하는 사회적 선을 위해서라면 도덕성을 잠식하는 시장 관행을 감내하겠다고 결정한다. 생명보험은 이런 식의 타협으로 시작되었다.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생겨날 수 있는 재정적 위험에 대해서 가족과 사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는 지난 두 세기 넘게한 개인의 생명에 피보험 이익을 가진 사람들이 사망을 놓고 도박을 벌이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마지못해 결론 내렸던 것이다. 하지만 투기를향한 유혹을 억제하기는 어려웠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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