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슨 교수는 1975년에 출간한 사회생물학』에서 모든 학문은 생물학일 수밖에 없으며 모든 학문은 생물학으로 귀착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외계의 생물학자가 와서인간을 연구한다면, 법학을 연구해도 그게 어떻게 보면 호모 사피엔스라는 생물 행동의 일부에 해당하고, 경제학을 연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술을 해도 그렇고, 모든 학문 분야가 어떻게 보면 이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동물행동학의 범위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게 보면 동물행동학, 크게 보면 생물학이 모든 학문을 포용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물론 다른 분야의 학자들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지요. 윌슨은1998년에 통섭이라는 책을 써서 결국 모든 학문은 자연과학(특히생물학)을 통해 풀어낼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 P18

생물학은 기초과학의 한 분야지만 종합적인 성격이 강한 학문입니다. 생명현상 자체가 너무나 다양하므로 다양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고, 그런 다양한 질문에 답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물학 분야 중에서도 동물행동학은 특히 더 종합적인 성향이강합니다. 한 방향으로 한 가지 질문만해서는 그 동물의 행동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P19

Why라는 질문은 어떻게 보면 동물의 행동을 진화의 관점에서보며 이 생명체가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하게 됐느냐를 묻습니다. 그래서 동물의 행동에 대해서는 How Why라는 두 물음이 모두 필요하고, 이 두 물음 모두에 답을 할 수 있어야 완벽하다고 할 수 있지요.
생물학자들은 이런 질문들을 하면서 여러 방법으로 접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체로 ‘어떻게‘ 라는 질문을 하다 보면 문제가 자연스럽게 좀더 작은 단위로 자꾸 나뉘고 더 세밀히 들어갈 수밖에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물리학이나 화학 등 다른 학문의 도움을받아서 생물리학이나 생화학 등과 같은 메커니즘 쪽으로 접근하게되지요. - P20

동물행동학은 꽤 오랫동안 발달해온 학문입니다. 동굴 속에 동물벽화를 그린 먼 조상도 동물의 이동 통로를 관찰하고 그것을 분석하고 이용하였으니 말하자면 모두 동물행동학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동물행동학과 오늘날의 동물행동학은 굉장한 차이를보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동물행동학은 자연과학의 일부로서 연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 P21

당시 아칸소 주 법원의 윌리엄 오버턴Wiliam Overton 판사는 이 문제에 대한 판결을 위해 각계의 전문가들에게 과연 자연과학이 무엇이나를 묻고 법정에서 증언하도록 했습니다. 나중에 이 판사가 판결문을 썼는데, 그 판결문에서 그는 자연과학의 특성을 다섯 가지로정의했습니다. 그가 내린 자연과학에 대한 정의가 어떻게 보면 자연과학자가 내린 정의보다도 더 간결하면서도 정곡을 찌른 것 같습니다. - P22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연과학이 되려면 첫째,
‘자연법칙에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연과학은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법규나 종교적인 강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자연의 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맞는말입니다. 두 번째는 ‘모든 것을 자연법칙에 따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두 가지가 어떻게 보면 매우 비슷한 얘기지만 병행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 다음에 역시 중요한 얘기인데, 실제 세계에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검증할 수 없는 것은 자연과학일 수 없다는것이죠. - P22

마지막으로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험을 어떻게 하느냐, 자료를 어떻게 모으느냐, 가설을 어떻게 세우고 검증하느냐에 따라서 기존의 학설이나 믿음을 반증할 수 있어야 자연과학이라 할 수있습니다. 이제 정리하면, 자연법칙에 따라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있어야 하고 실험 결과에 따라 반박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자연과학이라는 것입니다. - P23

동물행동연구의 어려움을 가장 단적으로 말해주는 예는 제인 구달 박사가 아프리카에서 50년 가까이 수행한 침팬지 연구일겁니다. 구달 박사는 한국에 와서 자신이 처음 아프리카에서 침팬지를연구하던 때의 어려움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아프리카 오지에 처음 갔는데, 침팬지는 야생동물이라 먼발치에서 사람을 슬쩍 보기만 해도 다 도망갔다는 겁니다. - P31

행동을 연구하는 데 또 하나 아주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도대체인간을 비롯해 동물들이 어떻게 해서 이런 행동을 하게끔 진화했느냐 하는 점입니다. 행동진화의 역사를 뒤지는 일은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생물의 진화를 연구하는 데에는 화석의 도움이 절대적입니다. 풍부하지는 않을지라도 화석을 찾아서 형태를 관찰해보면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는데, 행동에는 화석이 없습니다. 행동은 화석으로 남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과연 어떻게 춤을 췄을까요? 그 춤이 화석으로 남아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 P33

동물행동학이 학문으로 발달하게 된 것은 찰스 다윈부터입니다. 다윈 이전에도 물론 동물의 행동을 관찰한 많은이들이 있었지만, 동물의 행동을 분석할 수 있는 사고 체계를 수립한 사람이 바로스 다윈입니다. 그러므로 다윈에게서 동물행동학이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대적인 감각의 동물행동학이 다윈에게서 시작했다고 보면 됩니다. - P34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찰스 다윈이 얘기했던 자연선택론의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그이론에 입각해서 야외든 실험실 내에서든 동물의 행동을 재분석하는 작업이 일어났습니다. 이 분야를 학문적으로는 행동생태학이라고 부르는데, 기존의 학문들과 조금 달랐습니다. 행동생태학은 동물이 사는 서식지와 그 환경 그대로에서 그들을 관찰하고 실험하고자 하는 행태학의 전통을 따르면서, 필요하면 분자생물학이나 물리화학 또는 수학적인 모델링을 통해서 행동의 본질을 찾습니다. 비용 편익 분석 cost-benefit analysis 을 통해 행동의 진화를 재구성합니다. 자연선택론으로 재무장한 학자들이 야외든 실험실이든 뛰어들어동물행동학을 다시 한 번 뒤바꿔보고자 시도를 했지요. 그 결과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며 이 분야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게됩니다. - P41

사람들은 한 종이 다른 종으로 변하는 것을 진화라고 생각합니다. 침팬지가 오랜 세월 변화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이 된 것이 그대표적인 예라고 잘못 생각하기도 하지요. 사실 다윈의 주장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침팬지의 조상을 거슬러올라가다 보면 언젠가인간의 조상과 만난다는 것이 다윈의 설명입니다. 침팬지와 인간이과거 어느 땐가 같은 조상을 갖고 있었다는 거지요. 이렇듯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넘어가는 변화를 대진화macroevolution 라고 합니다. - P44

진화에는 이런 대진화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조금씩 변해가는 것도 진화입니다. 진화생물학자들이 말하는 진화는 주로 각 개체의 유전체genome 속에 있는 독특한 유전자들을 모두모은 유전자군gene pool에서 특정한 유전자의 빈도가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유전자가 이번 세대에는 특별히 많았는데 무슨 까닭인지 다음 세대에는 조금 줄어들고 그대신 다른 유전자가 득세하는 변화가 바로 늘 벌어지고 있는 진화입니다. 이런 진화를 소진화microevolution 라고 부릅니다. - P44

이렇게 자연 환경에 적응을 더 잘한 개체는 살아남아 번식을 하고, 후대로 갈수록 그 개체의 특성을 가진 개체들이 더 많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바로 위에서얘기한 소진화의 예입니다. 전 세대에는 분명히 얼룩무늬를 띠게 하는 유전자를 가진 종류가 많았는데, 상황이 변해 불리해지자 그런 유전자를 가진 개체들이사라집니다. 그래서 그런 유전자도 함께 사라져버리고 다음 세대에는 검은빛 날개를 만들어주는 유전자가 많아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화입니다. 유전자들의 상대빈도가 변한 것이죠. - P46

산업혁명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면 더 많은 나무들이 검게 변했을 테고, 그런 상태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면 어쩌면 얼룩무늬 나방들은완전히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변화가 오래 축적되다 보면언젠가 얼룩나방은 전혀 다른 검정나방으로 변할지도 모르지요. 소진화가 되풀이되다 보면 언젠가는 대진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변화를 주도하는 메커니즘이 바로 자연선택 natural selection 입니다. - P47

드디어 다윈은 자연계에서 많은 생물이 태어나서로 경쟁을 벌이고 살아가며, 그 과정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우수한 형질을 가진 생물만이 살아남는다는 것, 그래서 그 형질을 다음세대에 물려주고, 다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윈은 완벽주의자였습니다. 자신의 이론이 가져올 여파를 걱정하며 발표를 미루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이론을 발표하지요. 평소 다윈을 존경하던 생물학자 앨프리드 월리스Alfred Wallace가 의견을 묻기 위해 보내온 논문을 검토하던 중, 그가진화에 관해 자신과 동일한 결론에 이르렀음을 알게 되어 발표를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깨달은 겁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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