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상카아라와 담마, 둘사이의 관계는 어떻게되는가? 《구사론》 같은 전통적 입장에서는 ‘일체一切가 행行, 상카아라이고, 거기에 공空과 무위無爲를 보태면 그게 담마의 세계이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런 구분은 담마와 상카아라를 그 영역의 넓고 좁음의차이로 본 것입니다. - P58

이제 상카아라와 담마의 관계를 실천 수행의 관점에서 생각해 봅시다. 앞서 보았듯이 ‘명색名슘은 모사담마, 즉 가짜 담마요, 열반은 진리이다.‘라는 말씀이경에 나옵니다. 상카아라에서 전개되는 삼라만상이명색인데 그것이 가짜 담마라는 겁니다. - P59

상카아라와 담마의 관계는 십이연기十二緣起에서 순관順과 역관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이연기의 순관은행, 상카아라의 길이고, 역관은 담마의 길입니다. - P60

거듭 말하지만 십이연기의 순관은 고苦를 낳는 길이고, 역관은 고를 멸하는 길입니다. 십이연기에서 보면무명이 있어서 제행이 있습니다. 행이 있으면 식이 있고 마침내는 생.노.병사가 있습니다. 그게 고苦의 생生으로 고성제입니다. 무명이 있으면 제행이 전개되어 고가 발생합니다. 요컨대 무명이 있는 한, 진리를 모르는한, 세상만사를 담마로 볼 줄 모르는 한 행의 흐름을따라 고苦의 현장인생노병사를 끝없이 윤회한다는 겁니다. - P61

상카아라의 구체적 양상을 부처님은 탐진치라 하십니다. 탐욕貪慾-진심瞋心-치암癡. 부처님이 상카아라의모습을 먼저 ‘탐‘, 그다음‘진‘ 그리고 ‘치‘ 순서로 배열하신 자체가 담마의 체계성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 P63

상카아라를 탐진치라는 담마의 용어로 정리하니까 고苦의 해결책이 바로 나옵니다. 탐욕에 대해서는 ‘몸가짐, 마음가짐을 바로 하여 탐욕의 불을 안 붙이고 탐욕의 불을 끄도록 노력하는 길밖에는 없다.‘라는실천 방향이 나오지요. 그걸 계행行이라 합니다. 탐욕은 계행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겁니다. - P63

그러면 진심은 탐욕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우리가 어떤 욕망을 내는데 그 욕망이 좌절되면 화가납니다. 그럼 화는 어떻게 다스리느냐? 성낸다는 건 마음이 부글부글 끓는 것인데, 그걸 다스리려면 마음을고요히 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상카아라를 가라앉히고 고요히 하면 된다는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습니까. 고요히 하는 길은 정을 닦는 것입니다. 바른 집중, 정정을 닦는 것이지요. - P64

그런데 계와 정을 닦아서 어느 정도 마음을 다스릴수 있게 되어도 그 뿌리는 잘 안 뽑힙니다. 그것이치암癡입니다. 치암은 작은 무명입니다. 치암을 다스리는길은 빤냐pania[,지혜밖에 없습니다. 상카아라를다스리기 위해서는 결국 제행을 다 놓아야 하는데, 그렇게 놓는 데에 지혜가 본격적인 역할을 합니다. - P64

우리가 고苦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그 문제를제대로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여기서 ‘인식한다‘는 말은 그냥 ‘이게 문제구나‘ 하고 아는 정도가 아니라, 해결이 가능한 쪽으로 그 요인들을 배열해서 문제를 체계적으로 질서정연하게 인식하는 것을말합니다.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 문제를 제대로해결하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 담마입니다. 부처님이시설하신 팔정도는 고苦集滅道사성제 가운데 고를 해결하는 길인도성제입니다. 도성제인팔정도는 담마이면서 진리에 들어갑니다. - P65

도성제인 팔정도로 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 자체가 도마 위에 반듯하게 놓여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칼질을 해야 하는지 분명해져야 합니다. 그렇게 문제를 도마 위에 반듯하게 정돈하는 것이 담마입니다. 예를 들면 그릇 하나도 욕망의 대상으로 보면이건 상카아라이지요. ‘아, 여기 보기 좋은 그릇이 있는데, 명품이고 비싸네, 내가 꼭 가져야지.‘ 이게 상카아라입니다. 반면 그릇을 욕망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진리를 추구하는 눈으로 ‘있는 그대로 인식하면, 그건 담마로 보는 겁니다. 요컨대 담마는 매우 체계적이어서 상카아라를 탐진치라는 용어로 정리하고 고를멸하는 길인 팔정도와 연결시킵니다. - P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