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어떤 변화의 물결이 밀려오면 일단 그 변화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상황에 매몰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현상의 극단적이고 첨예한 모습들만 자꾸 눈에 띄고 머릿속에각인됩니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사물을 관조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해서 현상이나 현실에 압도당하기마련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요. - P6
하물며 우리가 하고 있는 수행 공부는 더욱 그렇습니다. 몇 십 년을 어디서 수행했다는 것이 중요하지않습니다. 수행 방향을 잘못 잡으면 오히려 안한 것보다 못합니다. 그런 점에서 바른 견해가 얼마나 중요한것인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이 바른 견해, 정견正見을 팔정도八正道의 제일 첫머리에 놓으신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요컨대 바른 견해가 없는 수행은 잘못된 길을 가는 것과같습니다. 게다가 빠른 속도로 잘못된 길을 달려가면나중에 되돌아오기에는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릴지모릅니다. - P7
급할수록 오히려 여유를 가지고 한 걸음 척 물러앉아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정말 이 길을 가야 할 것인가?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부처님은 무슨 말씀을하셨는가? 부처님 말씀과 내가 생각하는 것이 합치되는가?‘ 두번 세번 돌아보고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게 점검하는 기준은 팔정도입니다. 팔정도의 여덟 항목은 수행의 길에 어느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바른 견해가 공부 방향을 결정합니다. 속도보다방향이 중요합니다. - P8
경에서말하는 정견, 바른 견해에 대한 정의는 한 마디로 ‘사성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입니다. 사성제四聖諦는 고성제苦聖諦,집성제集聖諦,멸성제滅聖諦,도성제道聖諦니다. 그 첫번째인 고성제는 요컨대 ‘우리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일 뿐, 실제는 고苦다.‘라는겁니다. 우리 삶에서 경험하는 온갖 현상이 모두 고라는 것이 사성제의 출발입니다. - P9
그다음 멸성제는 ‘바르게 노력하면 집성제에서 드러난 연기의 과정이 멈추어진다. 고가 끝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를 멸할 수 있다‘는 부처님의 선언에서부터 불교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도성제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에 의해서 누구든지 고를 멸하고 해탈 · 열반의 경지를 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정리하면 바른 견해는 사성제를 바로 아는 것이고, 이사성제가 실로 바른 견해를 뿌리내리게 하는 궁극적인 진리입니다. - P10
사성제에서 드러난 부처님의 인간관은 무엇이며, 바른 견해로 바라본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처님의 인간관은 사람은 누구나해탈 · 열반을 향해 향상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 P12
고苦가 멸한 상태는 곧 열반입니다. 부처님은 열반소식을 우리에게 전해 주려고 그토록 애쓰셨던 것입니다. 한편 바른 견해는 첫째, 열반은 어떤 언어로도표현할 수 없는 세계라는 것을 아는 것이고 둘째, 열반이 나 자신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고 아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 예외 없이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을 과거부터 무한히 걸어왔고, 지금도 걷는 중이고, 앞으로도그 길을 걸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바른 견해가 우리 삶에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 P13
요컨대 기본적으로 우리 인간은 고집 · 멸·도苦集사성제를 알고 이를 살아가는 데서 그 특성이 발휘되어야 합니다. 그 깨달음이 없으면 올바른 삶이 될수 없습니다. 우리가 고를 알고, 고의 멸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임을 올바로 인식하고 살아간다면, 그때 우리는 비로소 올바른 사람의 값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바른 견해, 정견을 갖춤으로써 사람의 기본을 세우도록 부단히 노력하지않을 수 없습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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