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약할 때 가장 강한 것이 나오는 법이라네. 감상적이고 무력한 약자의 눈물이 가장 큰 힘이지. 프랑스인들은 자유평등의 기치를 걸고 혁명을 일으켰잖나. 그 그럴듯한 가치가 공포정치로 엉망진창이 됐을 때, 박애가 나와서 혁명의 역사를 바꿨어. 자유와 평등은 끝 모르게 싸우지만, 그 사이에 박애가 들어서면 눈물 있는 자유, 눈물 있는 평등이 나오는 거라네." - P213

"기본적인 노력과 능력은 당연히 갖춰야겠지. 그런데 정말 크게잘되는 스타는 하늘이 도운 거야. 책 낼 때마다 베스트셀러 되는 작가도 있고 안 되는 작가도 있어. 책을 아무리 지성과 정성을 다해서써도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기도 하고, 개발새발 대충 쓴 것 같은데도 베스트셀러가 되는 게 있거든. 나중에 읽어보면 확실히 베스트셀러는 그때의 대중을 끄는 힘이 있어. 문운이야. 애 낳으면 천재도낳고 둔재도 낳는 것처럼, 똑같은 사람 머리에서 똑같은 책을 읽고써도 책마다 그 운이 다른 거야.‘ - P219

"고난이 내 그릇의 넓이와 깊이를 재는 저울일까요?"
"고난은 나, 너, 우리, 인류 모두의 저울이지. 나치 수용소의 체험을 기록한 빅터 프랭클의 밤과 안개를 보면 극단적 고난에 반응하는 인간의 양극단이 드러난다네. 두 종류의 인간으로 나눠져 나치의 앞잡이가 되어 개처럼 동족을 물어 죽이는 놈들. 반대편엔 아주 보통의 이기적일 것 같은 사람들이 숭고한 모습을 보여주었어.
생명이 꺼져가는 사람들에게 자기 빵을 나눠주는 거야. 그런 행동을 하는 자기 모습을 보고 스스로도 놀라, 초인적인 성장을 이뤄내는 거지. - P230

"나를 만족시킬 만한 스승이 없다는 것과 같아. 인간이라는 존재는 바깥에서 나를 바꾸도록 용납하지 않는다네. 남이 나를 바꿀 수있다고 생각하나?"

"...... 어렵지요."

"어려운 일이야. 성인군자의 아들도 나쁜 짓을 해. 아버지의 선한피를 받았는데도 교화가 안 되지. 공자님은 아들을 가르치지 않았어. 가르칠 수 없는 거지. 가장 가까운 피붙이조차 가르칠 수 없어.결국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엉터리라네.

남을 가르칠 수도 없고 남에게 배울 수도 없어. 인간이 그런 존재야. 거기로부터 시작해야 하네. 그게 실존이야. ‘나는 혼자다‘라는걸 모르는 사람과는 얘기가 통하지 않아. 군중은 남이 이 말 하면이리로 가고, 남이 저 말하면 저리로 가지 휩쓸려 다녀. 자기가 없으니까 자꾸 변하는 거라네." - P235

"개구리 이야기로 돌아가면, 정적에 반하셨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합창하는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면 순식간에 고요해지거든. 그때적막을 들었다네. 시골의 하늘은 맑고 밤의 모판에는 별빛이 내려앉아. 논두렁 물에 하늘의 별이 비치는 거야. 별빛 뒤에 숨어서 울던 개구리들이 돌을 던지면 일제히 딱 멈추면서 귀가 멍멍할 정도의 침묵이 생겨났어. 평소에는 침묵이 안 들려. 그런데 개구리 울음소리와 소리 사이에 생기는 그 침묵. 그 침묵만큼은 들을 수가 있어, 개골개골 울다가 돌을 던지면 면도날로 자르듯 생겨난 그 침묵은 참으로 신비로웠다네." - P245

머리가 커질수록 머릿속을 채우는 건 빈 교실의 이미지라고 했다. 방과후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 빈 교실에서 들리던 선생님의 서툰 오르간 소리 같은 것들. 어린 시절 체험했던 ‘공백의기억들‘이 죽음의 이미지로 자주 머리를 때린다고 스승은 불가사의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필록테테스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화살이 날아가고 피가 흐르는 저 멀리 전쟁터와 무인도 달빛 아래홀로 남은 한 인간의 대비, 어쩌면 무리에서 이탈된 공백 속의 한인간이 스승의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P248

"서양의 양복장은 높고 길어. 옷을 위해, 기능을 위해 만든 구조물이지. 동양의 가구는 인간을 표준으로 했어. 옷도 개켜서 넣지.
나는 모든 언어를 이렇게 비교적인 메타언어로 사용한다네. 좀 어렵게 말하면 나는 순수이성과 실천이성, 판단이 이세가지를 동시에 쓰고 있는 거라고나 할까. 집사람은 땅의 언어인 의식주에 관심 있지만, 나는 하늘의 언어인 의식주에 내재된 진선미에 관심이있는 거라네. 의식주를 이야기하는 게 일반 언어고, 진선미를 이야기하는 게 메타언어야. - P260

"인간이 발견한 것 가운데 가장 기가 막힌 것이 돈이라네. 인간은절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교환을 하며 살아가지. 우리가숨 쉬는 것도 식물과의 교환이야. 우리는 탄소를 내뱉고 식물은 산소를 내뱉지. 모든 생명가치는 교환인데, 핵심 교환은 세 가지야.
첫 번째는 피의 교환이라네. 그게 사랑이고 섹스지. 사랑은 생식이라는 목적을 벗어나지 않아. 교환가치가 없다면 인종은 멸종되겠지. 그다음은 언어 교환, 그리고 돈의 교환이라네. 돈의 교환을 통해 생산과 소비와 시장이 만들어지는 거지. 세상이 복잡해 보여도피 언어, 돈 이 세 가지가 교환 기축을 이루며 돌아가고 있어. - P263

"누이 좋고 매부 좋고‘라는 말이 있지? 뽕도 따고 님도 보고, 이거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 한국인이야. ‘이거냐? 저거냐?‘가 아니라‘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거지‘, 외국인들은 디지털이면 디지털,아날로그면 아날로그, 경계가 뚜렷해. 그런 이원론으로 과학과 합리주의를 만들고 매뉴얼과 원칙을 만들어 세계를 리드했지. 하지만한국인은 정량적인 것과 정성적인 것, 원칙과 직관을 융합해버려.
그래서 조직도 오거나이즈가 잘 되는 시스템보다 비상시에 만드는임시 조직이 더 잘 굴러가. 한국 사람이 위기에 강하다고 하는데,위기에 강한 게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강한 거라네." - P273

어느 조직이든 이쪽과 저쪽의 사이를 좋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조직은 망하지 않아. 개발부와 영업부, 두부서를 오가며 서로의 요구와 불만을 살살풀어주며 다리 놓는 사람, 그 사람이 인재고 리더야. 리더라면 그런‘사잇꾼‘이 되어야하네. 큰소리치고 이간질하는 ‘사기꾼‘이 아니라 여기저기 오가며 함께 뛰는 ‘사잇꾼‘이 돼야 해. - P275

인간의 뇌는 고생대의 뇌와 신생대의뇌가 있어. 고생대는 변화를 싫어하네. 바깥으로 안 나가고 고향을안 떠나려 해. 신생대 신피질뇌는 반대야. 새로운 것을 좋아하지.
모든 사람의 뇌에는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가 동시에 탑재돼 있어, 변화하지 않으려는 보수적인 고생대의 머리와 끝없이 새것을찾고 학습하는 신생대신피질의 뇌, 우리 인간은 먼저 새것을 찾고학습했던 소수자에 의해 나아가고 있네. 소수자가 경험하고 만든문명에 다수가 거저 올라탄 거야. - P289

"선생님,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당신의 삶과 죽음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면 좋겠습니까?"
"(미소 지으며)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게. 파도는 아무리 높게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아무리 거세도 바다에는 수평이라는 게 있어.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가져본 적이 없다네. 하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 P293

"촛불은 끝없이 위로 불타오르고, 파도는 솟았다가도 끝없이 하락하지. 하나는 올라가려고 하고 하나는 침잠하려고 한다네. 인간은 우주선을 만들어서 높이 오르려고도 하고, 심해의 바닥으로 내려가려고도 하지. 그러나 살아서는 그곳에 닿을 수 없네. 촛불과 파도 앞에 서면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점이 생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이라는 것을."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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