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과 덕으로 최선을 다해도 우리는 다가올 운명을 바꿀 수 없네. 데카르트처럼 모든 것을 회의하면서 끝까지 가도, 이성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과 만나게 돼. 빅데이터가 모든 걸 설명해주지 못해. 합리주의의 끝에는 비합리주의가 있지. 그렇다고 타고난 팔자에 인생을 맡기고 자기 삶의 운전대를 놓겠나? 아니 될 말일세.

그리스에서 말하는 운명론이란 있는 힘껏 노력하고 지혜를 끌어모아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라는 거야. - P83

"결정된 운이 7이면 내 몫의 3이 있다네. 그 3이 바로 자유의지야.모든 것이 갖춰진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 그게 설사어리석음일지라도 그게 인간이 행사한 자유의지라네. 아버지 집에서 지냈으면 편하게 살았을 텐데, 굳이 집을 떠나 고생하고 돌아온탕자처럼……… 어차피 집으로 돌아올 운명일지라도, 떠나기 전의탕자와 돌아온 후의 탕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네. 그렇게 제 몸을 던져 깨달아야, 잘났거나 못났거나 진짜 자기가 되는 거지. 알겠나?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수만 가지 희비극을 다 겪어야 만족하는 존재라네." - P85

"한밤의 까마귀가 안 보이더라도 한밤에 까마귀가 어딘가에는 있어. 그렇지? 어둠이 너무 짙어서, 자네 눈에 안보이는 것뿐이야.
그리고 한밤의 까마귀는 울기도 하겠지. 그런데 우리는 그 울음소리도 듣지 못해. 이게 선에서 하는 얘기라네. 한밤에 까마귀는 있고, 한밤의 까마귀는 울지만, 우리는 까마귀를 볼 수도 없고 그 울음소리를 듣지도 못해. 그러나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분명히 한밤의 까마귀는 존재한다네. 그게 운명이야. 탄생, 만남, 이별, 죽음・・・・・・ 이런 것들, 만약 우리가 귀 기울여서 한밤의 까마귀 소리를듣는다면, 그 순간 우리의 운명을 느끼는 거라네" - P88

솔로몬이 ‘아이를 반으로 쪼개 가져라‘ 했을 때, ‘죽은 아이 반쪽을뭐에 쓰려고 저 가짜 어머니는 좋다고 했을까? 아, 이거 거짓말이구나‘ 하고 알아야지. 내가 왜 이 주제에 이렇게 열을 내는지 자네가알아야 하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프레임에 갇혀 사는지 스스로깨달아야 해. 어린애 눈으로 보면 직관적으로 알아. ‘어, 이상하다!‘
그런데 고정관념의 눈꺼풀이 눈을 덮으면 그게 안보여. 달콤한거짓말만 보려고 하지." - P98

우리가 개를 개라고 할 때도 개의 형태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노루와의 차이를 얘기하는거라네. 명명은 약속된 기호야. 전쟁 중에 종로가 폭격당해서 건물이 다 쓰러져 없어져도 우리는 그곳을 여전히 종로통이라고 불러그게 언어고 우리는 언어를 기반으로 생각을 하는 거야. 정리하자면 물질 그 자체가 언어가 아니라 차이의 의미가 언어란 말일세. - P102

"알렉산더가 통 속에 사는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찾아갔을때 일화도 그 예야. 아주 유명한 얘기지.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가 조그만 통 속에 들어앉아 햇빛을 쬐는 디오게네스에게 그랬어.

‘나는 정복자니, 왕국의 일부를 너에게 줄 수 있다. 소원을 말해보라.‘

‘비키시오. 당신이 햇빛을 가리고 있으니 비켜주시오.‘

디오게네스는 알고 있었어. 알렉산더가 지배한 건 법계의 세계였다네.

‘왕국은 네가 지배하지만 햇빛은 지배하지 못해. 왕국은 네 것이라도 태양은 자연의 것이다. 그러니 비켜, 나 지금 햇빛 쬐고 있는거야. 네 권력 쐬고 있는 거 아냐. 난 이 통 속에서 살아. 네 왕국이아니라.‘

디오게네스에게 통은 생각의 세계야. 그래서 권력자 앞에서 단호할 수 있는 거지. 네가 지배하는 세계로 나를 지배할 수 없다고. 내생각을, 태양빛을 너는 지배할 수 없다고 - P104

"뜬소문에 속지 않는 연습을 하게나 있지도 않은 것으로 만들어진 풍문의 세계에 속지말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 진실에 가까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네. 그게 싱킹맨chinking man 이야.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사고해야 하네. 어른들은 머리가 굳어서 ‘다 안다‘고 생각하거든. ‘다 안다‘고 착각하니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거 묻지 말라‘고 단속을 해. 그런데 쓸데없는 것과쓸데 있는 것의 차이가 뭔가? 잡초와 잡초 아닌 것의 차이는 뭐냐고? 그건 누가 정하는 거야? 인간이 표준인 사회에는 세상 모든 것을 인간 잣대로 봐. 그런데 달나라에 가면 그거 다 소용없다." - P105

"그렇지, 법의 잣대로 볼 때는 ‘소설 쓰시네요‘라는 말이 얼마나비웃는 얘긴가 법으로 보면 소설이 가소롭겠지만, 소설계에서 보면 법이야말로 웃기는 말장난이야. 소설이 진리에 더 가깝지. 법은내일이라도 바뀌어, 지역에 따라 달라져. 여기선 불법이 저기선 합법이지. 그게 무슨 진리인가. 그런데 소설로 쓰여진 『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 전쟁이 나와 아무 상관이 없어도 마치 내 비극의 가정사처럼 느껴지거든.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아무런관계없는 사람들인데도, 내 형제자매 같지. 그게 기호계의 힘이야.그래서 나는 답답하다네. 과학 하는 사람, 정치 하는 사람, 경제 하는 사람이 문학을 알아야 해. 교양으로 인문학 하라는 게 아니야.인문학은 액세서리가 아니라네." - P107

하늘을 나는 새를 보게나. 바람방향으로 가는지 역풍을 타고 가는지. 죽은 물고기는 배 내밀고 떠밀려가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작은 송사리도 위로 올라간다네.
잉어가 용문 협곡으로 거슬러 올라가 용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지.그게 등용문이야. 폭포수로 올라가지 않아도 모든 것은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원하는 데로 가지 떠내려간다면 사는 게 아니야.우리가 이 문명사회에서 그냥 떠밀려갈 것인지, 아니면 힘들어도 역류하면서 가고자 하는 물줄기를 찾을 것인지......고민해야한다네. 다만, 잊지 말게나. 우리가 죽은 물고기가 아니란 걸 말야." - P111

"큰 얘기들은 다 똑같아. 큰 얘기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었다가전부야. 큰 이야기를 하면 틀린 말이없어. 지루하지. 차이는 작은이야기 속에서 드러나거든. 디테일 속에 진실이 있다고. 외국 논문을 보면 모든 게 아주 작고 시시콜콜한 데서 시작해. 구체적이지.반면 우리나라 논문은 8·15 해방과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이런식이야. 안타까운 일이네.

한국 유학생들이 유학 가서 지적받는 게 뭔 줄 아나? 문제를 구체화(specific)하지 않고 일반화(generalize)한다는 거야, 한국인들은 공통적으로 거대담론을 좋아해. - P117

타자의 절대성을 인정하는 게 사랑이고, 그 자리가 윤리의 출발점이라네. 타자를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위해 왜곡해선 안 돼. 일례로 우리는 내가 아플 때 남이 그걸 아는 줄 알아. ‘아프냐? 나도아프다!‘ 그런데 그 아픔은 자기 아픔을 거기다 투영한 것뿐이네."

"나는 타인의 아픔을 모른다고요?"

"몰라. 모른다네. ‘지금 저사람이 피를 흘려서 얼마나 아플까?"

그건 자기가 아픈 거야. 자기 마음이 아픈 거지. 우리는 영원히 타인을 모르는 거야. 안다고 착각할 뿐. - P122

"중요해. 앞으로 점점 더 interface 접속장치가 중요해. (컵을 가리키며) 이 컵을 보게. 컵은 컵이고 나는 나지. 달라. 서로 타자야. 그런데이 컵에 손잡이가 생겨봐. 관계가 생기잖아. 손잡이가 뭔가? 잡으라고 있는 거잖아. 손 내미는 거지. 그러면 손잡이는 컵의 것일까? 나의 것일까?"
"서로의 것이죠."
"컵에 달렸으니 컵의 것이겠지만, 또 컵의 것만은 아니잖아. ‘나잡아주세요‘라는 신호거든. ‘손잡이 달린 인간으로 사느냐. 손잡이없는 인간으로 사느냐.‘ 그게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 그런데 또 한편 컵에 손잡이가 아니라 자기 이름이 쓰여 있다고 생각해봐. 갑작스럽게 내 것이 되잖아. 같은 사물인데도 달라지는 거야. 유일해지는 거지. 이런 생활 속의 생각이 시가 되고 에세이가 되고 소설이되고 철학이 되는 거라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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