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1990년 혹은 1990년을 전후한 수년간은 세계 경제에, 그리고 일본경제에 있어서도 중요한 전기의 해였다.

베를린 장벽 붕괴가 1989년, 통일 독일 선포가 1990년, 소비에트연방 해체가 1991년이다. 1990년을 전후해서 러시아와 주변 국가들이 일제히 시장경제로 바뀌기 시작했다. 한편 1989년의 천안문사태로 주춤하던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이 재가동된 것도 1992년이라는점에서 볼 때 1990년 전후는 세계 경제의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경제 면에서 구자본주의 국가에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널리 퍼졌다는 점이다.

작은 정부와 규제 완화를 두 기둥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은 이미 1980년대 초부터 영국(1979년 대처 정권의 탄생)과 미국에서(1981년 레이건 정권의 탄생 시작되어 뉴질랜드(1984년 롱이 정권의 탄생)로 불똥이 튀었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에게 널리 채용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다.

그 주된 배경은 구소련을 필두로 시작된 사회주의 경제권의 붕괴일 것이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 정부는 공산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공공연히 ‘원시자본주의적 경제 정책‘인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채용할 수 있었다. - P16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 마침내 승리했다‘는확신이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사실 사회주의에승리한 것은 원시자본주의가 아닌 수정된 자본주의, 말하자면 복지국가형의 자본주의였지만... 하여간 자본주의 정부에 있어서 승리한 그날에는 더 이상 ‘수정‘이나 ‘복지‘라는 옷은 쓸모가 없어졌다. 수정과복지 없는 자본주의적 정책이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말을 인용해보자.

오늘날 유럽의 국민은 역사의 전환점에 서 있다. 왜냐하면 수세기에 걸친 사회 투쟁과 노동자의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한 지적, 정치적 투쟁의 성과가 정면으로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각지에서동시다발적 혹은 파상적으로 유럽 전역과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한국에서도 고조되고 있는 사회운동, 다시 말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연대 없이 독일, 프랑스, 그리스, 이탈리아에서 잇달아 일어나고있는 운동은 분야와 국가에 따라서 다른 양상을 띠고 있으나 모두같은 목적을 지닌 정책에 대한 반란이다. 그 목적이라는 것은 바로문명의 가장 고귀한 성과인 사회적 기득권익을 파괴하는 일이다. - P17

사회적 기득권익은 ‘세계화(경제적, 사회적으로 뒤처진 나라들의선진국에 대한 경쟁력)‘를 구실로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화하고전 세계로 확대하고, 당연히 세계화해야 하는 성과다. ‘보수주의다.시대에 뒤처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사회적 기득권익의옹호 이상으로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은 없다. 칸트나 헤겔, 모차르트나 베토벤과 같은 인류 문화적 기득 재산의 옹호를 보수적이라고 단죄하는 사람이 있을까. 많은 사람이 이를 위해서 고생하고 싸워온 사회적 기득권익, 즉 노동법이나 사회보장제도는 이와 마찬가지로 고귀하고 귀중한 성과다. 그러나 그것들은 미술관이나 도서관, 대학에서만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으며, 사람들의 하루하루의 생활을 규제하고 있다.

- 피에르 부르디외, <시장 독재주의 비판>

이 부르디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1990년 전후 세계 경제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시대로써, 그리고 그것에대항하는 지식인, 노동자, 경제적 약자들의 저항운동이 재차 전개된 시대로써 그 이전과 구별되는 시대로 볼 수 있다.

한편 일본은 어떤가. - P18

일본에 있어서 1990년과 1991년은 무엇보다도 버블이 붕괴된 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 일본주식시장이 붕괴되었다. 1989년 12월 29일에 38.915엔이라는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일본 평균 주가는 1990년에 들어서자 떨어지기 시작해 그해 말 18,915 엔 선까지 하락했다. 그리고 다음 해 이후로도 하락은 멈추지 않아 1995년에는 15,000엔 선이 무너졌으며, 2001년에는 1만 엔 선을 밑돌았다. 이후 오늘날까지 변동은있어도 월말치가 25,000엔 이상으로 복귀한 적이 없다.

한편 또 하나의 버블이었던 지가도 주가하락보다 조금 늦은 1991년 벽두를 정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국토교통성의 공시지가(기준지가의 총평균)를 보면 정점(1991년 초)을 100으로 했을 때 10년 뒤인2001년 3월 말 27, 20년 뒤인 2011년 초는 25로 하락했고, 22년 뒤인 2013년 초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하락세가 멈춰 최근(2018년 초)30이 되었다.

버블 붕괴와 함께 경기도 수축되기 시작했다. 경기의 정점은 1991년 2월이었다. 1986년 12월부터 51개월간 지속된 버블 경기가 끝나고 1991년 3월 이후 32개월간 일본 경제는 장기 불황에 빠졌다.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릴 일본 경제 침체기가 시작된 것이다. - P19

‘잃어버린 10년‘은 다시 ‘잃어버린 20년‘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조만간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릴지도 모를상황에 처해 있다.

이렇게 보면 1990년 전후는 전후 일본 경제에서도 시대의 한 획을그은 해였다고 할 수 있다.

즉 패전한 1945년부터 1990년 전후까지는 일본 경제의 회복과상승의 시대였다. 그 뒤 1990년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일본 경제의 하락과 쇠퇴의 시대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1945년부터 1990년까지의 일본 경제가 회복과 상승의 시대였다고 하더라도 전기가 되는 해는 몇 번 있었다. 전후 부흥이 어느 정도 성취되어 ‘더 이상 전후가 아니다‘라고 ‘경제백서‘가 선언한 1956년, 달러엔 환율이 1달러 360 엔 시대를 벗어난 1971년, 제1차 오일쇼크가 발생한 1973년, 게다가 공해 문제가 터져 나와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이 크게 흔들린 1970년대 초반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몇 번의 전환점을 거치지 않아도 1990년까지 일본경제는 어쨌든 우상향의 추이를 보였다. 전후의 폐허에서 출발해서1990년에는 GDP 세계 2위, 1인당 GDP 세계 8위(IMF 통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 P20

1979년에는 하버드 대학 교수이자 사회학자인 에즈라 보겔이 ‘일본은 넘버원 Japan as Number one‘이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이런 흐름의 역전이 반복된 것이 1990년이다. 주가와 지가가 하락했고 10년쯤 늦긴 했지만 GDP도 감소하기 시작했다(1998년 이후).GDP가 중국에게 추월당해 세계 3위가 된 것이 2010년이다. 1인당GDP를 보면 엔저로 달러 환산액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2017년에는세계 25위로 내려앉았다.

1990년 이후의 일본경제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밖에 볼 수없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내리막길을 걷게 된 1990년 이후의 약 30년간의 일본 경제를 돌아보려고 한다. ‘버블 붕괴 후의 30년‘이며, ‘소비세 도입(1989년) 후의 30년이며, 헤이세이(1989-2019) 시대로불리는 30년이기도 하다. 이 30년은 어떤 시대였을까.

먼저 시기의 구분으로 이 30년을 아래의 네 시기로 나눠서 보자는것이 이 책의 입장이다. - P21

1. 1990-1997. 버블 붕괴 이후 7년간으로 버블 붕괴에 따른장기경기 하강에 빠져든 시기와 이후의 경기 회복기다. 경기 하강이장기화되고 있지만 그래도 회복세로 향하기 시작한 시기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일본 경제위기론‘이 대두하여 1990년대 후반 이후의 ‘구조개혁의 시기‘, 일본판 신자유주의 경제시기를 준비한 시간이다.

2. 1997-2009. 하시모토 류타로 수상이 주도한 ‘6개 개혁‘의 실시와 그 좌절의 시기. 그리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탄생 이후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내각으로 이어지는 ‘구조개혁‘의 시기. 말하자면 일본식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전면적으로 전개된 시기다.

3. 2009-2012. 민주당 정권 탄생에서 자멸까지의 시기다.

4. 2013-2019.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의 발족에서 현재까지 ‘아베노믹스‘의 시기로 다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전면적으로 전개된 시기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파트1에서 이 책이 대상으로 하는 기간(1990년 이후의 30년간1980년대 후반의 버블 경기 시기를 합친 35년간의 일본 경제의 변화를 개괄한다(1장). - P22

여기서 1990년 이후의 30년간뿐 아니라 그 이전의 시기(1980년대 후반의 약 5년간, 버블 시기)를 포함해서 대상으로 한 것은1990년 이후의 일본 경제, 특히 앞에서 분류한 첫 시기(1990-1997)를 보는 데 있어서 선행하는 버블 시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파트2에서 버블 붕괴 이전의 시기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까지)를 돌아본다. 버블의 발생에서 팽창, 붕괴까지의 시기다(2장). 이어서1990년 이후의 30년간을 앞의 시기 구분에 따라서 3장(1990년에서1997년까지), 4장(1997년에서 2000년까지 하시모토 내각의 ‘6개 개혁‘
과 좌절까지), 5장(2001년에서 2009년까지 고이즈미 ‘구조개혁‘의 시기)을보고, 6장에서 4장과 5장의 보충으로 ‘구조개혁‘이란 무엇인가를 되돌아본다. 계속해서 7장(2009년에서 2012년까지), 8장(2013년에서 2019년까지)의 순으로 살펴본다.

마지막 파트3에서는 이 책의 모든 기간 동안 일본 경제를 속박하여 위정자의 의식에 남아 있었던 재정 적자 문제를 논한다(9장),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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