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수행자들과 재가불자들 간의 관계는 하나의 공생관계이다. 무엇보다도 승가는 귀중한 시물施物인 불법을간직하고 있다. 경전에 "법을 보시하는 것이 그 어떤 보시보다도 낫다"고 한 말씀이 있다.75 승가의 구성원인 스님들은 당연히 규율에 맞춰 생활하고 깨달음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 P68

만약 우리가 무언가 좋은 것을 받는다면 불교에서는이전에 지은 선업에 따라 과보를 받는 것으로 풀이한다.
그것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좋으나 선업이 다하면 공덕도다하고 만다. 그러나 주는 일은 어디까지나 선한 행위, 즉선업이며 그것은 베푸는 이에게 가져다 줄 행복한 과보를만들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확실히복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복‘은 순전히 현세적이며 세상살이를 위한 복 짓기‘로 제한되어 있다.
- P69

보시의 실천 역시 신중한 태도로 행해져야 하며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중도의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점은 새삼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원하거나 또는 원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모두 다 주는일이 아이들을 키우는 최선의 방법이 아닌 것과 같다. 요즘에 꽤나 성행하고 있는 이론과는 반대로, 버릇없는 아이의 기를 가끔 꺾어 놓는 것도 해롭지만은 않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무언가 보답을 바라고 행하는 보시 역시비록 그것이 천상계에 태어나는 소망이라 해도 그것은 결코 최상의 보시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집착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그가 받는 과보에도 한계가 있을수밖에 없다.
- P72

큰 꽃 더미에서 많은 화환 만들어내듯사람으로 태어났을 때 많은 선행을 해야 되리.

《법구경 53게》 - P76

탐욕 없음이나 성냄 없음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선한의식이 일어날 수 없어 보시행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못한다. 집착하는 마음과 베푸는 마음은 공존할 수없다. 

참으로 너그러운 사람이어야 평등하게 베풀 수 있고너그러운 이는 좋아하는 사람이나 가족에 한해서만 베풀지 않는다. 결국 모든 선량한 행위의 목적은 마음의 때를닦아내고 이기심을 없애는 데 있어야 한다. - P81

진정한 베높은 자신에게 이롭고 이기심이나 인색함은해롭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더욱 더 베풀고 싶어질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불선不善한 의식들이 자주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 실망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불선한 마음을 일으키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과거에, 심지어 여러 전생에도 집착과 성냄과 무지로 가득 찬 삶을살아 왔다. 그러한 성향들이 우리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지만 그렇게 쌓인 해로운성향들은 현재에도 불선한 의식들을 일어나게 할 수 있다.
- P82

선행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아는 정견正見을 가진다면, 우리는 선한 마음 상태(善意)를 계발해 나가는 데에만 관심을 가질 뿐,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염두에두지 않아야 한다. 선은 바로 선 자체이며, 그 누구도 건건한 의식이 일어나는 것을 바꿀 수는 없다.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몰랐을 때는 보시행을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지 못했고 순간순간 일어나는 의식의 내용들에 대해 주의해 보지 않았다. - P83

부처님께서는 연달아 일어나는 여러 형태의 의식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어떤 자아自我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셨다. 그 의식들은 일어날 만한 조건들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일어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의식들이 서로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고 우리가쌓아 온 성향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무엇이 참모습인지를 보다 잘 이해하게 되며, 또한 이러한 바른 이해가 바로 선善이다. 인색한 성향을 축적해 온 사람은 보시행을 하기 어렵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알게 되면 이런 성벽性은 바뀔 수 있다.
- P84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많으면 많은 대로 베풀어 보라.
아무것도 주지 않는 데는아무 할 말 없구나.
꼬시야, 나 그대에게 이르노니그대 지닌 것으로 공양 베풀라.
혼자 먹지 말라.
홀로 앉아 먹는 사람복 받는 법 없으리.
자비로운 보시행으로,
그대 성스러운 길을 따라 오르리라.
- P86

선행은 좋은 결과를 낳고 악행은 달갑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이것이 업의 법칙, 즉 인과법이다. 84 한 생에서의 행위(kamma業)는 다시 태어나는 형태로 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선행은 복된 내세를 만들고 악행은 불행한 내세를 불러온다. - P87

인색함은 금생이나 내생에 우리가 두려워하는 결과인재물의 손실을 가져온다. 베푸는 행위는 재물이 늘어나는것과 같은 행복한 결과를 불러온다. 그렇다고 보시행을 하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것 또한 집착이며, 집착은 불선하기 때문이다. 결과에 관심을 두거나 두지 않거나, 행위는 거기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보시행을 하는 동안 우리는 집착하는 마음 없이도 행위와 그결과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 P88

설사 우리가 남에게 베풀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할때라도 보시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주위 사람들이 행하는 선행을 이해하고 찬탄하는 것도 일종의 보시행이다. - P89

수다원(預流)은 깨달음의 첫 단계에 들어선 성자이다.
그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각기 다른 정신적 육체적 현상을바르게 이해하는 정견을 계발해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는사람이다. 깨달음을 얻으면 그는 처음으로 조건에 매이지않은 실체의 세계인, 무위無爲 열반을 경험한다. 깨달음의순간에 자아에 대한 그릇된 견해가 뽑혀 나가고 그와 함께인색함 또한 사라진다. 다시는 인색한 마음이 일어날 수없으며, 그는 베품의 완성, 보시 바라밀을 성취한다. - P94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이기심은 점점 없어지고 베푸는 마음은 더욱 커져야 하며 다른사람들에 대해 순수하게 배려하는 마음도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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