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는 수행의 길로 들어선 불자가 반드시 먼저 닦아야할 덕목들 가운데 하나다. 보시를 실천하면 그 자체로서바로 공덕이나 선업의 바탕이 된다. 또 계율 · 선정 · 지혜와 짝지을 때에는 기나긴 윤회에 종지부를 찍는 큰 일을해내게 된다. 이미 해탈로 향하는 길에 굳건히 들어선 사람들조차도 보시행을 계속한다. - P12

모든 선행이 다 그러하듯이 보시의 행위는 부처님께서가르치신 인과법에 따라 장차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우리가 그 같은 사실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보시는금생에나 다음 생에 이로움을 가져다주겠지만 베풀고자하는 마음과 함께 바른 견해(正見]가 이루어질 때 보시로얻는 공덕은 훨씬 커진다. - P13

보시행의 모든 과정이 지혜에 입각하여 이루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수승한 보시가 된다. 
지혜롭게베푸는 데는 세 가지 경우가 있으니, 첫째, 원인이 있으면결과가 있다는 업의 법칙에 따라 보시 행위는 미래에 반드시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분명히 이해하면서 베푸는 것, 둘째, 베풀어지는 물건이나 주는 이, 대신에 와받는 이 모두가 무상無常하다는 것을 알고 베푸는 것, 셋째, 깨달음을 향한 노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베푸는 것이다. 시물을 베푸는 데는 다소간의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므로 한 번의 보시행을 하면서도 베푸는 과정의 여러 단계에서 이 같은 세 가지 마음을 다 경험하며 베풀 수 있다.
- P15

만일 우리가 보시를 통해 참다운 평화와청정함을 얻고자 한다면, 완전한 베품인 보시 바라밀을 실천해서 깨달음의 성취를 열매 맺을 공덕의 창고를 지어야만 한다.

우리가 그와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보시를 베푸는의도는 우리의 마음을 유순하게 만들어 해탈을 이루는 데가장 근본 요소인 선정과 지혜 계발에 꼭 필요한 자질로발전하게 한다.
- P16

만일 어떤 사람이 보시할 마음은 먹었으나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 그 공덕의 성취는 아주 미미할것이다. 따라서 특별한 일이 가로막지 않는 한 베풀려는마음은 항상 재빨리 실천에 옮겨야 한다. 보시행을 한 다음 혹시라도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보시의 공덕대부분을 잃게 될 것이다.
- P17

성과聖果를 증득한 거룩한 이들이 공양물을 받아들이는것은 베푸는 이에게 공덕을 지을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가장 높은 두 가지 성스러운 경지에 올라선 아라한(應供)과 아나함(不還)은 이미 감각 대상이 되는물질에 대한 욕망을 버린 이들이다. 따라서 보시를 받을때, 그분들의 마음에는 보시물에 대한 집착이 없으며, 보시하는 사람에 대한 자비심이 가득 차 있을 뿐이다.
- P19

보시행의 세 번째 요소는 무엇을 베푸는가인데, 그것은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물질이 아닐 수도 있다. 

부처님께서는 성스러운 가르침을 전해 주는 법보시야말로 어떤선물보다도 좋은 것이라고 하셨다(《법구경》354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해 주는 분들, 이를테면 불법을 알려 주거나 설명해 주거나 경전을 암송하는 스님, 참선을 지도하는스님들은 대중들과 불법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최상의 보시를 실천하고 있다. - P22

보시 가운데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이웃들을 위해베푸는 사회적인 보시도 있는데 여러 가지 복지 기관에 기부하는 일, 병원이나 공공 도서관에 헌금하는 일, 주변 공원을 깨끗하게 가꾸는 일 등이 여기에 속한다. 또 누구든그러한 사업을 위해 돈만 내놓는 데 그치지 않고 몸으로하는 노력 봉사로까지 참여한다면 그 과보는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보시가 처음부터 끝까지 청정한 마음으로 행해진다면 그 공덕은 엄청날 수 있다.
- P26

보살들은 언제라도기회만 오면 오로지 최상의 완전한 보시인 보시 바라밀을실현하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베푼다. 보시 바라밀은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최상의 경지까지 끌어올려 완성시켜야 할 열 가지 덕목인 십바리밀 가운데 첫 번째다. 

보살이 완전한 보시행을 달성하려면 보통 사람들이 해낼 수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해내야만 한다. 고따마 붓다가 과거에 보살이었을 때 자기 몸이나 세간의 이익을 조금도 돌보지 않고 어떻게 보시를 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본생경 Jataka)에 수없이 나온다. - P27

또 어느 한때 보살이 마하 수닷사나라는 이름의 황제였던 적이 있었다. 보살은 날마다 자신의 영토 방방곡곡에전령들을 보내 원하는 것이 있는 사람은 와서 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음을 백성들에게 알렸다.

"낮이든 밤이든 걸인들은 무엇이든지 받아갈 수 있노라"고,

마하 수닷사나 왕은 오직 스스로 깨달음을 이루겠다는일념으로 아무런 집착이나 보답을 바라지 않고 진실로 아낌없이 베풀었다. (1장 제4화) - P28

수행에 나선 불자의 목적은 거듭되는 생사윤회의 고苦로부터 벗어나는 데 있다. 부처님께서는 어리석음(無明)과 어리석음에서 생겨난 번뇌들을 뿌리 뽑을 때 고가 완전히 없어진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불선한 성향들 때문에 우리는 자아가 있다는 착각에 빠지고, 그것에 집착하게 된다. 또한 본질적으로 무상하여절대로 만족을 줄 수 없는 것들로 우리의 지칠 줄 모르는감각적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안달하게 된다.
- P31

갈애를 내포하고 있는 보시는 윤회를 벗어나게 하는 길도,
결코 멸하지 않을 행복에의 길도 아니다. 그러한 경지는 오로지 갈애의 완전한 소멸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갈애와 집착으로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보시행은 불법佛法이살아 있는 시대, 즉 중생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는시대에만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바로 그런 시대에 태어나 살고 있는 우리가 무언가를 베풀 때는 갈애를 뿌리 뽑으리라는 원력을 세우고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갈애가 끝나고, 고가 멈추면, 그것이 곧 해탈이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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