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는 인간을 윤회에 묶어 놓는 원인의 하나인갈애를 세 가지로 분류하고 이 죽고 싶은 마음은 그 세번째에 넣으셨다. 즉 사성제의 하나인 집성제集聖諦의 가르침 속에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欲愛)‘ 외에도 ‘존재하려는 욕망(有愛 bhavatanhā])과, 없어지려는 욕망(無有愛 vibhavatanhā]‘이 나오는데, 죽고 싶은 마음은 바로없어지려는 욕망‘에 해당된다. 우리 인생이란 본질적으로 살아가면서 제 뜻대로만 살 수는 없는 것이기에 좌절을 맛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것을 끝장내고 싶은충동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쉽게 발을빼버릴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자살로 죽든 다른 원인으로죽든 간에 사람은 어떤 계界나 차원에 곧바로 다시 태어나는데, 자살의 경우는 금생보다 훨씬 나쁜 곳에 태어나게 된다.
- P28

환생하는 곳은 업에 따라 결정되며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도 단지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이다(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각별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계 아닌 다른 곳에 태어나서는깨달음을 얻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니까). 그러므로 인도人道 환생은 희유한 만큼이나 바람직하다. 그러니 이 소중한 기회를 낭비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가! 불교 경전에 의하면 인간은 모든 감각기능을 구족한 일종의 정신적 몸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 P35

냐나띨로까 스님은 죽음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어떤 한 생의 한정된 생명 기능이 끝나는 것, 그리고 동시에인습적으로 사람, 동물, 개성, 자아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생명체의 정신적 육체적 작용의 소멸이다. 하지만 엄밀히말하자면 죽음이란 순간순간 생겨난 육체와 정신의 결합이 순간순간 계속 분해되고 사라지는 것이며, 따라서 죽음은 매 순간 일어난다."(《불교 사전》 콜롬보, 1950) - P38

인간으로든 다른 어떤 형태로든 거듭 태어나는 것은 무지에 의한 갈애tanhā의 힘이 다 소진되지 않고 끈질기게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지와 갈애의 힘은 강력한전류와도 같다. 그러니 육체적으로 죽는 순간 무지와 같애가 끝나고 만다는 가정은 정말 사리에 맞지 않으며 에너지보존법칙에도 위배된다.

다시 태어나는 존재는 죽은 바로 그 존재와 같은가 다른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적절한 답은 나가세나 스님이 밀린다 대왕에게 한 말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같은 것도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na ca so, na ca anio.
- P40

금생에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은 육체가 죽으면서 개체로서의 존재가 완전히 끝난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이것을 무여열반無餘anupidisesa-nibbana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열반의 속성을 무어라고 꼭 짚어 말할 수는 없다 해도 단순히 물질적의미에서의 소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그렇게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기는 하다). 그것은 자아의 소멸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자아라는 것이 애당초 실재한 적이 없었으니까. - P43

죽음을 관觀하는 법에 대해서 바지라냐나 스님은 그의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불자는 무상, 고, 무아를 놓치지 않고 죽음에 대한 명상을 계발해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명상은 사실상 위빳사나 명상법에 속한다.

《불교 명상법》, 콜롬보, 1962. 209쪽 - P44

죽음에 대한 명상의 지침은 붓다고사 스님의 《청정도론》 8장에 나오는데 기본 수행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붓다고사는 ‘죽음에 대한 정의‘에서 사념死念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죽음으로서, ①아라한의 열반 ②찰나찰나생멸하는 과정에서의 죽음(滅] ③‘죽은 색깔‘ 혹은 숨을 죽이다‘에서와 같은 관용적 표현으로서의 죽음을 들고 있다.
- P45

한 인간이 진정으로 슬기로울 때그가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은 분명히죽음에 대한 간단없는 마음챙김이니그것은 무한한 공덕을 가져올 축복이니라.

위의 글은 나나몰리 스님이 빠알리어에서 번역한 바단따까리야 붓다고사의 《청정도론》(BPS, 캔디, 1975, 247~259쪽)에서 인용하였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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