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찾아오지만 않으면 하루 종일 가야 나는 말할 일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새삼스럽게 외롭다거나 적적함을 느끼는 것도아니다. 그저 넉넉하고 천연스러울 뿐이다.

홀로 있으면 비로소 내 귀가 열리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듣는다.
새소리를 듣고 바람 소리를 듣고 토끼나 노루가 푸석거리면서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꽃 피는 소리를, 시드는 소리를, 지는 소리를,

그리고 때로는 세월이 고개를 넘으면서 한숨 쉬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므로 듣는다는 것은 곧 내 내면의 뜰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 P143

현대인은 바쁘게 살고 있다. 시간에 쫓기고 일에 밀리고 돈에 추격당하면서 정신없이 산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피로회복제를 마셔 가며 그저 바쁘게만 뛰어다니려고 한다. 전혀 길들일 줄을 모른다. 그래서 한 정원에 몇천 그루의꽃을 가꾸면서도 자기네들이 찾는 걸 거기서 얻어 내지 못하고 있는 거다. 그것은 단 한 송이의 꽃이나 한 모금의 물에서도 얻을 수있는 것인데,
- P152

어린 왕자!

너는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더구나. 이 육신을 묵은 허물로 비유하면서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더구나.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스러지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더라.

그렇다. 이 우주의 근원을 넘나드는 사람에겐 죽음 같은 게 아무것도 아니야. 죽음도 삶의 한 과정이니까.

어린 왕자, 너의 실체는 그 묵은 허물 같은 것이 아닐 거야. 그건 낡은 옷이니까. 옷이 낡으면 새 옷으로 갈아입듯이 우리들의 육신도 그럴 거다. 그리고 네가 살던 별나라로 돌아가려면 사실 그몸뚱이를 가지고 가기에는 거추장스러울 거다.

"…그건 내버린 묵은 허물 같을 거야. 묵은 허물, 그건 슬프지 않아. 이봐 아저씨, 그건 아득할 거야. 나도 별들을 쳐다볼래. 모든 별들이 녹슨 도르래 달린 우물이 될 거야. 모든 별들이 내게 물을 마시게 해 줄 거야……."
- P153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이야기 좀 들읍시다.
요 몇 해 동안 당신은 청춘을 불사르며 마법의 주문이 잔뜩 쓰인책을 읽었을 겁니다. 모르긴 하지만 종이도 한 50톤쯤 씹어 삼켰을 테지요. 그래서 얻어낸 게 도대체 무엇이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묻는 준엄한 물음이다. 우리가 읽고 쓰고 하는 뜻은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 우리가 지금껏 그토록 많은종이를 씹어 삼키면서 얻어낸 게 과연 무엇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삶의 본질과 이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한낱 종이벌레에 그치고 만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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