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캡슐 1985 사계절 1318 문고 89
홍명진 지음 / 사계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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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교에서 타임캡슐 안에 넣을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 편지에는 3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적고 한 사람을 정해 편지를 쓰는 것이였다. 역시나 아이는 할머니에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엄마인 나보다 할머니를 좋아하는 아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나또한 학창 시절 친구들과 각자 편지를 써서 작은 통에 담아 10년후에 다시 와서 보자며 나무 밑에 묻어 놓았지만 그 누구도 가보지는 못했다. 지금은 학교의 모습이 바뀌어 우리의 편지가 들어있던 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누구나 한번쯤 타임캡슐 안에 무엇을 넣을까라는 생각은 해봤을 것이다.

 

이 책의 배경은 1985년의 서울 해방촌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토박이지만 해방촌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남산은 자주 가 보았음에도 이 곳을 찾을 일은 없었으니 내게는 생소한 장소이다. 해방될 무렵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모여 살면서 '해방촌'이라 불리는 이 곳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 우뚝 솟은 남산 아래 첫동네이다.

 

많은 사람들 눈에 띄는 남산과 달리 해방촌은 눈에 띄지 않는 동네이다. 오래된 건물이 있을뿐 아파트나 그럴싸한 빌딩들은 없다. 이 곳에는 해방촌 시장 삼거리에서 후암동까지 연결되는 악명 높은 108계단이 있다.

 

이제 열일곱 살이 되는 황주오는 봉제공장을 하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지만 여느 날과 다르지 않다. 엄마가 차려 놓고 나간 아침상에는 어제와 똑같은 반찬에 미역국과 달걀 프라이만 추가 되었을 뿐이다. 특별한 것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썰렁한 생일상을 받아야 하는 것이 조금은 슬프다.

 

이 책에서는 주오 외에 다른 친구들도 만날수 있다. 황주오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이 동네에서 보낸 롯데 미용실의 딸 난희, 주오의 단짝친구 태균,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에 올라와 일을 해야만 하는 미라. 고등학생인 이 아이들을 중심으로 1985년의 해방촌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나와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 1985년도의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들이다. 주오와 친구들은 미처 내가 알지 못한 일들도 겪고 있지만 내가 공감하는 부분들도 많은 이야기이다. 참 이상한것은 학창시절 만큼 힘든 시기도 없었지만 가장 돌아가고 싶은 시간들이다.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세계 안에서 많은 생각을 하고 다양한 경험들을 해나간다.

 

"타임캡슐이란 게 말야. 피라미드나 고대 고분 같은 역할을 하는 거라고 할 수 있지. (중략)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지구상에서 완전히 멸종하지 않는 한, 자기가 살았던 흔적을 남기려고 할 거야. (중략) 인간은 태어나면 죽을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인간은 계속 태어나니까, 예전의 모습을 보존하고 싶은 욕망에서 만들어지는 거지." - 본문 220쪽

 

누구나 타임캡슐안에 담고 싶은 추억들은 한 두가지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꺼내어보고 싶은 추억도 있을 테지만 영원히 볼수 없도록 봉인해 버리고 싶은 추억들도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겪는 아픔에는 시대가 주는 것들도 있다. 분명 지금과는 다른 시대이기에 다른 상황들이 펼쳐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느 시대가 되었든 그 대상이 누가 되었든 공통적으로 아파하는 부분들이다. 서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도와주려는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이제 열일곱 살이 되는 주오가 마주하는 현실의 무게는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타임캡슐이 아닌 자신의 마음 속에 해방촌과 그 곳의 사람들을 담으며 떠나는 주오. 한층 자란 주오는 이젠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와도 쉽게 주저앉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속에 담아둔 해방촌의 추억을 언제든지 꺼내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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