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말
최민호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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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말>_어쨌든 구별 짓기


최근에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전보다 더 읽는 시간을 많이 낼 수 없어 아쉽다. 하루 종일 무엇을 하길래 이렇게 하루가 빨리 흘러가 버리는 지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시간을 조금씩이라도 낼 수 있다니 다행이긴 하다. 평창 올림픽 개막식을 다시 보고 있는데, 정말 잘 꾸민 것 같다. 동양적, 특히, 한국의 '미'를 여실하게 보여 준 화려한 개막식이었다. 특히나, 요새 추워서 연습하는 데 엄청 힘들었을 것 같다. 그 모든 분들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제6회 ZA 문학 공모전 대상 수상작이다. 전에 제1회에 상을 받은 작품들을 읽은 적이 있다. 좀비 영화는 몇 번 봤지만 소설로 읽은 적은 없어서 새롭게 다가왔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읽어 보고 싶었는데.. 그 기회가 와서 기대하며 읽었다. 게다가 이번 문학상은 공모전에서 처음으로 장편이 당선되었다고 하니 더욱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이 책 속의 세계 속에 등장하는 인간은 딱 둘로 나뉘게 된다. 바로 좀비 바이러스 '보유자'와 '면역자'이다. 이게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보유자는 좀비로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구인제약'에서 만든 약을 시간마다 먹어야 한다. 그런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 그 약 하나를 사기 위해서는 정말 열심히 일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보유자는 면역자에 비해서 차별을 받는다. 그리고 면역자들은 흔히 말하는 특권 계급이다. 전 인구의 20%만 존재할 뿐이다. 그 중에서도 돈이 있고 약을 만드는 구인제약 관리자라면 대단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그들은 동떨어진 섬에 모여 산다. 그곳에는 모두 확인을 받은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면역자들이 사는 북쪽은 국가에서 지원이 많이 돼서 환경이 다르다. 보유자가 사는 남쪽은 갇혀진 구획에서 모여 산다. 그들은 손목에 밴드를 차고 있다. 체내의 좀비 바이러스의 수치를 자동으로 측정해 위험을 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북쪽과 남쪽 사이에는 거대한 장벽이 있다. 남쪽에 좀비가 많아질 때마다 한번씩 그 장벽을 폐쇄한다. 좀비들이 자연히 줄어 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세상 속에서 보유자인 수진은 어린 딸인 미나를 데리고 힘들게 살아간다. 어느 날 회사에서 잘리고 약을 잘 먹지 못한 미나가 좀비 바이러스 수치가 높아져 죽게 된다. 그리고 미나를 간접적으로 죽게 만든 구인제약 계열사를 운영하는 사장인 석호에게 사과하라고 항의한다.


또 다른 주인공인 세영은 좀비 연구소의 연구원이다. 세영은 궁극적으로 좀비를 치료할 약을 만들고 싶지만 상부에서는 쓸데 없는 일을 한다고 싫어한다. 좀비를 치료하면 약을 팔 수 없고, 돈을 못 벌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세영에게는 기자인 미영이라는 동생이 있는데, 어느 날 불법 좀비 게임장에서 나타나 상우의 총을 맞아 죽는다. 세영은 미영이 왜 죽었는지 밝히기 위해 자신이 속해 있는 비밀 조직을 이용한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세영은 수진과 만나게 되어 함께 손을 잡고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저항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노력은 성공할까? 그럼 좀비들이 세계에서 사라질까? 인간만의 세계로 깨끗해질까?


어쨌든... 인간은 무엇이든 '구별 짓기'를 좋아한다. 어디서나 갑과 을이 존재하는 것이다. 내게도 좀비 바이러스가 있고 그것이 발현되기 위해 반드시 약을 먹어야 한다면 어떻게 할까? 그 약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은 수진이 왜 그렇게 석호를 향해 분노를 쏟아 냈느냐는 것이다. 석호는 이중적인 인물이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수진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다.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고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추천서도 써주고 나중에 왔을 때는 돈을 건네기도 했다. 그것을 삐딱한 마음으로 모두 마다한 것은 수진 자신이었다. 당장 돈이 없는데 자존심이 무슨 소용일까? 게다가 딸의 목숨이 달린 일이데 말이다. 석호는 태도가 짜증날 수도 있겠지만 직접적으로 말로 한 적은 없었다. 수진은 그런데도 석호에게 모든 감정을 쏟아내 복수하려고 한다. 수진의 그런 감정과 행동들이 짜증 나게 느껴지기도 했다. 결말을 위한 큰 포석이기는 했지만말이다.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읽기는 했다. 인물들의 행동과 감정이 이해 안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말이다. 뭔가 추리적인 부분도 아쉽게 느껴졌다. 좀비들의 세계라도 인간은 여전히 '너와 나'를 나눈다. 그래야 내가 존재하니까 말이다. 좀비가 되는 것보다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다. 내게 중요한 문제는 무엇일까? 제목인 '창백한 말'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절대 사과하지 않는 기득권들의 '미안'하다는 사과가 아닐지... 책 속의 말처럼 우리는 누군가에게 운전을 당하고 마는 트럭일 뿐이다.



*해당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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