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전설은 창비아동문고 268
한윤섭 지음, 홍정선 그림 / 창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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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전설

 

 

모두 눈을 감고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자. 누구나 어린 시절에 듣던 동네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동네에 있는 커다란 나무나 건물, 학교와 관련된 이야기. 아니면 동네에 있던 어떤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이들 사이에서 귓속말로 조심스럽게 전해졌을 것이다. 그때는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얼마나 무섭고 재미있는 이야기인지가 중요했다. 그때는 아이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제법 재미있고 흥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날 아이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때와 많이 다른 것 같다. 예전에는 책이나 TV를 통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언니나 누나, 오빠나 형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내가 들었던 이야기를 몇 년이 지나서 어린 동생이나 아는 아이에게 전해주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아이가 내가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무서워 하거나 재미있어 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내가 들었을 때보다 한 두가지 이야기를 부풀리며 첨삭하기도 했던 것 같다.

 

예전과 비교해서 요즘 아이들은 선배들에게 무언가를 전해 듣는 건 거의 없는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와 대면해서 이야기를 전해 들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도 학원 등 아이들이 많이 모인 공간을 통해서 자기들끼리의 정보를 공유하겠지만 예전처럼의 비중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누군가가 이야기를 전해 주는 '구연 이야기'의 맛은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짧은 이야기나 플래쉬가 많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책을 맛깔나게 읽어주는 사람인 '전기수'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것처럼 '귀로 듣는 이야기'만의 재미가 사라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 동화책은 이러한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는 책이었다. 어느 날 준영의 가족은 복숭아 과수원이 무릉도원처럼 아름다운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된다. 바쁜 도시 생활에 익숙한 준영은 시골로 가는 게 불만이었다. 시골 초등학교에서 준영이는 마을 아이들과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준영이는 아직 그 아이들과 친하지 않아 혼자 행동하려고 했다. 그때 마을 아이들은 준영이를 붙잡고 '우리 동네의 전설'을 이야기 해준다. 왜 학교가 끝나고 마을 아이들이 집에 함께 돌아가야 하는지 말이다.

 

키가 작은 아이가 득산리 마을과 학교 사이에 있는 길을 설명해 주었다. 먼저, 가운데 길에는 방앗간이 있었다. 이 방앗간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단둘이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사기 바둑에 쌀을 판 돈을 모두 잃고 집을 나가 버렸다. 그런데 다음 날 동네 뒷산에서 농약을 먹고 자살한 방앗간 아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아들에게는 부인과 어린 딸이 있었는데 그들은 집을 나가 버렸다. 그때 할머니는 병을 얻었는데, 어린아이들의 싱싱한 간이 필요해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무서운 이야기였다.

 

방앗간을 지나면 작은 아기 무덤이 있었다. 옛날에 아기를 못 낳던 새댁이 겨우 아기를 가지게 되었다. 시아버지는 매일 동네 잔치를 벌일 정도로 좋아했다. 열 달이 지난 어느 날, 새댁은 혼자 아기를 낳았는데, 그 아이는 죽어 있었다. 새댁은 아기를 뱀산에 묻고 정신이 이상해져서 동네를 떠났다. 그래도 아기가 죽은 날에는 영혼이 되어 아기 무덤에 찾아 온다고 한다. 지금도 가끔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린다고 하면서.

 

다른 길에는 밤밭을 지나 상엿집이 있었다. 그 상엿집에는 돼지 할아버지라는 염꾼이 살고 있었다. 돼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세 명이나 있던 자식들이 모두 어린아이였을 때 죽어서 돼지처럼 아이를 많이 낳아 튼튼하게 잘 키우라는 의미로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준영이는 동네 아이들에게 무서운 전설을 듣다가 그들과 친해지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위험한 곳에 가지 말고 모두 함께 다니면서 위험을 피하게 하려는 어른들의 지혜가 담긴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놀더라도 위험에 처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 어른들의 마음과 함께 아이들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한 이야기들이 섞인 전설들이었다.

 

나도 어렸을 때 학교에 있는 화장실이 오랫동안 폐쇄되어 있었다. 화장실의 잠긴 문만을 보고 아이들은 그 당시 유행하던 홍콩할매가 화장실에 나타났다는 상상력을 발휘하며 무서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다양한 이야기들이나 전설들이 이제는 인터넷에 무수하게 있고 더 먼 지역까지 넓게 퍼지게 되었다. 동네의 다양한 전설들이 인터넷 세상에서 살아남으며 쌓이고 있는데, 이러한 '흔적'이 나중에는 어떤 '화석'으로 발견될 것인지 기대가 된다.

 

이 책은 처음 부분에 나오는 '우리 동네의 전설 이야기'가 핵심이었다. 그 이야기들을 구연으로 말해주면 아이들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될 것인지 궁금해졌다. 막상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무섭고 자극적인 면이 다소 약하다고 하는데, 옛날 세대의 어른들에게 더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책으로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특히, 연극으로 연출해도 좋을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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