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이용덕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악녀에게 빠진 한 남자의 운명

 

 

이 소설의 작가는 이 욘도쿠이다. 바로 재일 한국인 3세인 작가는 이 소설로 제51회 문예상을 수상하게 된다. 표지만 봐도 뭔가 오싹함이 느껴진다. 검은 머리를 늘어뜨린 창백한 얼굴의 여자를 우리는 흔히 귀신으로 착각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건 검은 머리가 아니라 두꺼운 목도리나 망토를 머리에 두른 모습일 뿐이다. 어쨌든 저런 모습의 여자가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라고 한다. 당신이라면 과연 전화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주인공인 도쿠야마는 결국 그녀와 자주 통화를 하게 된다. 싫다고 밀어내고 밀어내도 다가오는 그녀에게 도쿠야마는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었던 것이다.

 

도쿠야마를 유혹한 여자는 술집 여자로서 미미라고 불렸지만, 도쿠야마에게는 자신을 하쓰미라고 불러달라며 이름을 밝힌다. 도쿠야마는 일하는 곳의 선배가 관심을 가진 여자였기 때문에 싫다고 하지만 결국 그녀와 만나 데이트를 하며 즐기게 된다. 얼굴이 무척 예쁘고 말상대를 잘 해줘서 술집에서 인기가 많은 하쓰미는 유독 도쿠야마에게 모든 걸 맞추면서 간과 쓸개까지 빼주려고 한다. 도쿠야마는 얼굴은 잘생기긴 했지만 겉만 그럴 뿐, 일하는 곳에서 실수도 많이 하고 삼수생인 학생일 뿐이었다. 이런 도쿠야마는 하쓰미와 사귀게 되면서 그녀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하쓰미는 세상의 모든 나쁜 것에 매력을 느끼고 탐독을 하는 악녀였다. 나쁜 것은 바로 전쟁, 고문, 고통, 살인, 강간, 생체 실험 등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포함하는 거라고 할 수 있다. 하쓰미는 멋진 집에서 살면서 이러한 책들을 수집하고 읽고 즐길 정도로 마니아적인 면모를 보였다. 도쿠야마는 그런 그녀의 성향에 대해 큰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 도리어 가학적인 성욕에 눈뜨며 하쓰미와 서로 즐기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그쪽으로만 빠져 있는 하쓰미를 깨닫기도 하지만 도쿠야마는 이미 그녀와 너무 친밀해져 있는 상태라 그녀에게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그러면서 도쿠야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냉담하다 싶을 정도로 심하게 말하게 된다. 바로 하쓰미의 단호한 어투를 따라하면서 그녀의 가치관을 닮아가게 된 것이다. 도쿠야마는 점차 사람들의 관계가 단절되고 외출도 귀찮다고 느끼고 먹는 것도 줄어들게 되었다. 도쿠야마는 과연 하쓰미의 악마적인 손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책을 소개하는 글에 살인, 엽기, 고문, 학살 등의 세계의 잔혹사와 함께하는, 사신과 같은 여자에게 빠져든 연애라고 하기에 얼마나 그로테스크하고 우울한 세계가 펼쳐질까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소설 자체는 그로테스크하거나 엽기적이지는 않았다. 여자 주인공인 하쓰미가 세계의 잔혹사를 유난히 좋아하며 그런 얘기에 흥분을 하는 변태적 성향을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건 뭐 일단 책 속의 이야기이니,,, 조금 거리감이 생겨서 심리적인 압박이 크지는 않았다. 이야기 자체가 잔혹한 얘기지만 말이다. 게다가 그게 예전에 진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면 오싹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하쓰미가 인간의 자살에 대한 논하는 말은 상당히 공감이 되고 논리적으로 설득 당할 정도였다. 지금도 안락사가 허용된 유럽으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고 하니,,, 얼마 지나지 않은 미래에는 '자살여행'이 일반적인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자살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논하고 있는 소설의 결말을 어떻게 할까 싶었다. 궁금한 사람들은 직접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책 중간에 피라미드 사기를 치는 인물과 세상의 재물인 경제적인 부유함이 우리의 인생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점을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중에 작가의 말을 보면, 이 부분이 가정 어려웠다고 하는데,,, 나도 읽으면서 그 부분이 다소 엉뚱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책 전체 스토리에서 조금 튀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도쿠야마가 악녀 하쓰미에게 영향을 받아 조금씩 변해 가는 모습을 잘 포착해 내었다.

 

최근에 읽은 제임스 에이지의 자전소설인 <가족의 죽음>과 함께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가 서로 연관성이 있는 작품이라고 느껴졌다. <가족의 죽음>은 갑작스런 사고에 의한 죽음이고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는 스스로 선택하는 자살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조금 성질이 다른 죽음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어떤 이유라고 해도 가족의 죽음은 남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삶의 뿌리가 흔들릴 정도의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의 열린 결말을 보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자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언제든지 죽여줄게. or 언제든지 구해줄게,,, 어떻게 해줄까??

 

"생명력이라는 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 엄청난 것이라고 요즘 들어 특히 느끼고 있어. 뭔가 마구 그리운 것이기도 하고, 생명의 본질은 이 그리움에 있다, 하는 생각도 들어...... 뭐, 그래서 어쩌라고, 같은 얘기지만." (304쪽)

 

 

* 북이십일 arte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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