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 박스
조시 맬러먼 지음, 이경아 옮김 / 검은숲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알 수 없는 공포 속을 더듬거리다

 

 

눈을 감고 길을 걸어보자. 얼마만큼 걸어 갈 수 있을까? 한 정거장도 가기 힘들 것이다. 아무리 지팡이로 땅을 두들기더라도 내 앞에 무엇이 있는 건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심을 주기 마련이다. 내가 무엇을 만지고 있는지, 내가 만지는 거 외에 어떤 게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소재의 문학과 영화 등이 많이 만들어져 왔다. 대표적으로는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일 것이다.

 

최근 지구가 종말한다는 내용의 작품이 많아진 것 같다. 전염병이든 좀비든 어떤 사건을 계기고 우리의 세계가 종말을 맞이했다. 그러한 종말 속에서 힘들 게 생존한 인간들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현재의 불안한 여러 현실들이 이러한 묵시록적인 미래를 만들어 내게 하는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구가 종말을 맞이한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고 씁쓸하게 만든다. 이 책의 번역자도 번역을 하다가 무수히 작업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잔인하고 엽기적인 장면들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이 종말을 고하고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오랫동안 갇혀 지내야 한다는 사실은 가만 있는 사람도 미치게 만들 것이다. 집에만 있으면 얼마 못 견디고 답답해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책속의 인물들은 뭔가를 봐서도 안되기 때문에 창을 모두 막아 놓은 상태다. 그런 곳에서 인간은 얼마를 버틸 수 있을까? 우리가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 존재도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걸 본 인간은 모두 미쳐서 죽었기 때문이다. 죽지 않은 인간도 반쯤은 미친 인간이 되기 마련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어느 날, 러시아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한다. 원한 관계가 없는 일반인이 갑자기 누군가를 죽이고 자살을 한다. 처음에는 별 일이 아니라고 치부하지만 점차 세계 곳곳에서 그런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왜 갑자기 사람들이 미치게 된 것일까? 점차 그 사람들이 '뭔가'를 봤다는 걸 알게 된다. 나중에는 그 뭔가를 결국 '크리처'라고 부른다. 어느 누구도 그 뭔가의 확실한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크리처라고만 부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간에게 금기는 그것을 깨고자 하는 욕구를 심어준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슬픈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오르페우스가 하데스로부터 아내를 데리고 나오면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듣는다. 하지만 아내가 뒤따라 오는지 너무나 궁금했던 오르페우스는 결국 금기를 깨고 만다. 이게 인간이 어리석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금기는 깨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일까? 이브가 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먹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따 먹은 것처럼, '금기'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무수한 유혹에 시달린다.

 

이 책에서도 자꾸 "눈을 감아. 눈을 뜨지마."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눈을 뜨고 싶은 감정이 소용돌이 쳤다. 내가 만약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까? 내 옆에서 나를 만지는 뭔지 모를 손길과 숨결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내 앞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게 무슨 일인지 궁금한데도 눈을 뜨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까? 나는 못 견딜 것 같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실눈이라도 뜨고 볼 것 같다. 그게 어떤 끔찍한 광경이라도 말이다.

 

더듬더듬 손을 내민다. 내가 만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마음 속에서 비명을 지른다. 마음의 눈이 그게 무엇인지 먼저 확인이라도 한 듯이 말이다. 세기말적인 묵시록이 가슴을 답답하게 뒤흔든다. 모두 닫혀진 문들, 뭔가로 덮여 창 밖의 빛조차 들어오지 않은 밀폐된 방, 얼마 남지 않은 식량, 눈을 감은 상황에서 들려오는 무수히 많은 소리들로 우리의 공포심은 극에 달한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마음이 고개를 쳐든다. 우리가 있는 공간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이곳을 버리고 어딘가로 떠나기에는 두렵다. 그 길에서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떠나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이렇지 않을까? 두려움과 공포가 우리의 발목을 집어 삼키고 있는 것이다. 그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고 떨쳐 일어나야지만 더 나은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맬러리가 조금 더 나은 은신처를 찾아내 자신과 아이들을 의탁한 것처럼 말이다. 그곳에서 인간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조금씩 문명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었다. 밖의 세상은 뭔지 모를 크리처들이나 미치광이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인간은 살아남을 것이란 희망이 있는 것이다...

 

 

* 인터파크 검은숲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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