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푸어 소담 한국 현대 소설 5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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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시대 로맨스에 대한 블랙코미디

 

 

갑자기 무슨 이유에선지 서울 강북 쪽에 좀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5년 전 여름 중부지방을 강타하고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유언비어처럼 소문만 떠돌던 좀비의 존재가 순식간에 사람이 많은 중심권을 덥치면서 다리로 연결된 도시는 폐쇄되고 만다. 그 속에 한 여자와 남자가 갇히게 된다. 여자는 강남의 대형 은행에 7년 간 근무하지만 후배가 자신보다 먼저 승진하고 전염병에 좋다는 비타민 주사를 맞다가 경찰에 걸려서 징역 6월, 사회봉사 5백 시간이라는 판결을 받는다. 여자는 사회봉사를 갔다가 잘생긴 우현을 만나게 된다. 그와 술을 마시고 헤어지려는 찰나에 좀비에게 쫓기다 밤을 지새게 된다. 그 이후, 강북 쪽은 좀비들 때문에 폐쇄되고 여자인 다영은 우현과 좀비들의 위협을 함께 헤쳐 나가게 된다...

 

좀비들을 소재로 한 영화나 문학은 많이 있어 왔다. 좀비들은 시각적으로 주는 자극이 크기 때문에 문학보다는 영화로 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좀비들이 나오는 책은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좀비들이 창궐하는 시기에 로맨스를 중심으로 하는 작품은 예전에 좀비도 사랑할 줄 안다는 <웜바디스>가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화제를 모았던 것으로 안다. 특히, 여성들에게서 로맨틱하게 다가가서 좀비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즐겨봤다고 한다.

 

이 <로맨스 푸어>도 좀비들이 창궐하는 시기의 사랑을 주제로 하였다. '목숨이 위협 받으며 쫓기는 상황에서 무슨 사랑 타령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예상하고 상상하는 로맨틱 소설은 아니다. 사랑은 사랑이지만,,, 미니시리즈 드라마처럼 삼각 관계에 빠진 전형적인 로맨스의 틀을 보여주고 있었다. 잘생기고 잘 챙겨주고 이상적인 꿈을 꾸는 남자지만 생활력과 지식은 조금 빠지는 우현과 못생겼지만 돈과 권력을 가지고 편한 생활을 하게 만들어주는 이성욱 사이에서 고민하는 다영이라는 여자...

 

처음에 제목만 봤을 때는 연애를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못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요즘에 하우스푸어나 워킹푸어, 실버푸어 등의 접미사 '-푸어'가 붙어 신조어가 많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 '삼포세대'로 결혼, 출산, 연애를 포기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연애를 하면 돈이 많이 드는데, 돈이 없으면 연애도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나 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좀비들이 튀어나오고 도망쳐 다니면서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어찌보면, 결론은 같을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좀비가 창궐하는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이유가 의문스러웠다. 더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어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를 더 극명하게 보여주려는 것이었을까? 하지만 이 책은 다양한 주제들을 너무 많이 끌어안으려 해서 그 정체가 불분명해진 점이 있었다. 좀비 떼에게 습격 받으면서도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생존력이 주제인가, 아니면 자신만 살아남기 위해서 잔인한 짓도 서슴지 않는 인간의 비인간성이 주제인가, 아니면 좀비가 나타나는 비상시국에 정부의 안일한 대처에 대한 비판인가, 아니면 빈부격차에 의한 가진 자들이 누리는 특권에 대한 비판인가, 아니면 삼각관계에서 고민하는 현대 여성의 모습이 주제인가... 이처럼 다양한 주제 중에서 작가는 '삼각관계 로맨스'를 중심으로 잡았다.

 

이 소설은 그 삼각관계 로맨스가 미니시리즈나 연애 소설의 큰 틀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고 있어서 유치하게 느껴졌다. 남자의 대립이 돈과 외모라는 외형적인 대결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었다. 그 둘의 사이에서 여자는 갈팡질팡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여자가 그 둘의 사랑에서 고민하는 걸로 보이지 않았다. 주인공인 여자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결국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최신식 아파트'였다. 마지막에 다른 모든 걸 포기하고 우현을 택했다고 하더라도 별로 그 마음이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만약 우현이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는 상황이었다면 다영은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좀비가 창궐하는 극단적인 시대에 우현이 모든 사람을 구하겠다는 이상적인 목표를 위해 목숨을 거는데, 다영은 우현의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결국 그를 돕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현이 목숨이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저렇게 이상을 쫓기 위해 자신을 내던진다면, 그때도 다영이 그의 뒷바라지를 하며 도울 것인가? 하는 데에는 의문이 들었다. 다영이가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 좀비들은 나타나야 했던 것일까? 이런 생각까지 들었던 만큼 좀비들은 그들의 사랑의 완성을 위한 부수적인 인물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비현실적이었고 그저 로맨스를 열망하는 여성을 위한 상상의 산물로만 느껴졌다. 현실적이지 않았던 이유는 SNS의 위력이나 경찰이나 군대 등의 정부 역할이 나오지 않았고, 비타민제를 맞는 모습이나 아파트의 생활 모습 등에서 말이 안되는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영이는 좀비를 대할 때 여전사의 이미지를 풍겼다. 처음에는 바퀴벌레 한 마리에도 놀라던 다영이는 나중에 최신식 아파트,,, 따뜻한 물과 음식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 남기 위해서 좀비들을 과감하게 때려잡고 아이볼을 수집한다. 좀비들을 죽일 때의 인간적인 고뇌나 잔인함에 눈을 찡그리는 일도 없이 하나라도 더 모으기 위해 혈안이 된다. 좀비는 사람이 아니고 주인공 자신은 따뜻한 물에 씻고 편안하게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다영이는 높은 자리에 올라 강남으로 넘어가려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여전사에 비해서는 참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아이볼을 수집해서 그 아파트에 남아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래보다는 현재를 택하고 있는 다영이는 좋게 말하면 능력에 비해서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여자였다. 다영이는 과감하게 행동하고 사람들을 통솔하는 능력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 속에 나오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스스로 상황을 타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새로운 여성상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좀비가 이렇게 안 무섭기는 또 처음이었다. 그만큼 무서운 상황 속에서 웃기는 상황들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는 유치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비판적인 시각이 느껴지기도 했다. 마지막 결말을 보면 작가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사랑'이 승리한다는 로맨스의 정석을 전달하고 싶은 듯 했다. 그것에 동의를 하든 안하든,,, 현대는 로맨스를 꿈꿀 수는 있지만 연애하기는 힘든 시대가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네이버 책좋사 소담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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