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 단편 선집
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춘 옮김 / 어문학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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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의 삶이 반영된 자전적 소설들

 

 

대학교 때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은 적이 있다. 신앙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갈등하는 인간적인 고뇌가 가슴 깊이 다가왔다. 단 한 권만으로도 엔도 슈사쿠라는 이름은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엔도 슈사쿠의 작품만으로도 이 책을 읽고 싶었다. 게다가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엔도 슈사쿠의 자전적 소설들로 그의 삶이 많이 투영되어 있다고 하니, <침묵>에서 나타난 엔도 슈사쿠의 종교와 사상, 철학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을 듯 싶었다.

 

원래는 처음부터 이런 단편 선집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출판사에서 자전적 소설들만 따로 모아서 선집으로 묶어 출판한 것이다. 자전적 소설들만 따로 묶어서 읽으니, 엔도 슈사쿠의 삶이 소설들 속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한눈에 살펴보기 좋았다. 그리고 그 소설들의 차이점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를 주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책 제목이 '엔도 슈사쿠의 단편 선집'이라는 사실이었다. 독자들의 눈길을 끌만한 특징적인 제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속에는 총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단편들 속에는 주인공이 중국 다롄에서 힘든 생활을 보냈고 부모님이 그곳에서 이혼한 것을 계기로 자신이 어머니와 일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세레를 받으며 열성적인 신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한 신앙 생활을 아들에게도 강요하였고 주인공인 아들은 그러한 믿음에 심리적 저항을 느낀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러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와는 절연 상태에서 자신은 소설가로서 가족을 꾸렸다. 신앙 생활에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아내만은 천주교로 전도해 세레를 받게 하면서 자신이 여전히 어머니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8편의 단편들 속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반복·변주되지만 큰 틀에서 바뀌는 건 없다. 소설들 속에는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드러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삶을 통해 작품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엔도 슈사쿠의 자전적 소설들 속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 자신이 어머니께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상반된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해서이다.

 

작가는 어머니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열성적으로 전도한 사실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사람의 삶을 바꿔 버린다는 사실에 어떤 신적인 영역에서 행하는 것으로 거부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결혼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머니의 성향과는 다른 사람을 고르게 된다. 그래도 작가는 <만약>이라는 단편을 통해서 사람의 삶에 끼어들고 마는 '인연'을 생각한다. 내가 다른 곳에 갔더라면 이 사람을 만날 수 없었겠지, 아니면 다른 상황이었다면 이 사람과 결혼을 하지 않았겠지...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람 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인연'은 신비하고 존엄한 미지의 영역이다. 이 중에서 <나른한 봄날의 황혼>은 다양한 장면들이 겹치고 반복되면서 특이한 소설이 되고 있는데, 환상과 현실의 불분명한 경계를 그리고 있어서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 단편 선집은 작가의 철학적 사유나 종교적인 신념이 주요 내용이 아니다. 하지만 작가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 중국 다롄에서의 삶, 부모님들의 이혼, 어머니의 신앙 생활, 결핵으로 인한 수술과 병원 입원 생활, 그리고 그 당시 종교 상황 등이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다. 바로 작가의 문학적 사유를 형성하고 있는 그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엔도 슈사쿠의 작가적인 삶과 그 의미를 조금 더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도 좋을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스쳐 지나간다. 만일 스쳐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의 인생 항로는 지금과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우리는 매일매일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우연이라고 말하는 이 `만약`의 배후에는 뭔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을 은밀히 창조하고 있는 존재가 있지 않을까? 그러나 나로서는 아직 그것을 알 수 없다.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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