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모토 소위, 명성황후를 찌르다 - 120년 만에 밝혀지는 일본 군부 개입의 진상
이종각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슬픈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발걸음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를 뒤져봐도 왕비가, 그 나라의 궁궐에서, 다른 나라의 사람에게, 무참하게 살해되어, 불에 태워진 경우는 그 유래가 없을 것이다. 그런 슬픈 역사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는데,,, 그에 대한 조사는 아직도 많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저 문학과 영화, 뮤지컬로 만들어져서 슬픔을 되새기게 만들지만, 정작 그 사건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게 몇 가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가 위정척사와 개방 정책의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다는 정도. 그리고 명성황후를 죽인 건 일본인 낭도, 폭력배 무리들이었다는 것, 그 이후 을미의병이 일어났고 고종은 아관파천을 단행했다는 것 정도였다.

 

이 책은 작가가 재일교포 사학자 김문자 선생의 <조선왕비살해와 일본인>(2009)이란 책을 통해 우치다 영사가 하라 외무 차관에게 보낸 비밀사신의 존재를 알고 난 후, 2012년 일본에서 귀국한 후에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 책을 집필하며 관련 자료를 모으고 해독하기 위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나카스카 아키라 나라여자대학 명예교수에게 미야모토와 관련한 몇 가지 정보를 얻기도 했는데, 일본인 사학자의 입장에서 중요한 점을 지적해 준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며 정작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명성황후를 미야모토 소위가 베었다는 게 아니었다. 명성황후를 죽인 관련자들이 모두 무죄 석방되었다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일본인 무리들이 명성황후를 죽이기 위해 궁궐에 침입하였을 때, 그 옆에 함께 들어와 이러한 슬픈 역사의 당위성, 명분을 만들어 준 것이 바로 흥선대원군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지우기 위해 일본인 군인이 관련되었다는 흔적을 지우려고 했다. 그것은 다른 외국 세력의 항의와 개입을 막으려는 노력의 하나였다. 그만큼 조선 궁궐에서 명성황후를 죽인 사건은 외교적으로 큰 사건으로 비화될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흥선대원군이라니? 흥선대원군의 존재로 인해서 일본은 자연스럽게 면죄부를 갖게 되었고 우리나라의 식민지화는 가속화되었다.

 

그 당시 흥선대원군은 민비와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공덕리 별장에 있었다. 흥선대원군은 민비를 없애주겠다는 일본인들의 회유에 넘어가 자신은 정무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청일전쟁 직전 일본군이 경복궁을 기습점거했을 때처럼 또 다시 일본인들에게 이용당하고 말았다. 정말 무슨 권력을 갖고 영화를 보겠다고 외국 세력을 끌어들여 한 나라의 국모를 죽이도록 도울 수 있었는지 나라를 생각한다는 흥선대원군의 논리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저 민비에게 빼앗긴 자신의 권력을 되찾고 싶은 마음뿐이었겠지만, 그러한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나라 전체가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통을 겪게 되었는지 알면 조금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까 모르겠다. 그 고통은 남북으로 갈라져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니 더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민비의 죽음을 알고 흥선대원군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고, 궁궐에서 길안내를 도운 훈련대 제2대대장 우범선은 자신이 죽였다고 자랑하면서 그 당시 칼을 일본 신사에 맡기기도 했다는데,,, 이게 진짜 있었던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 책을 집필한 이종각은 다양한 증거를 들어 명성황후를 죽인 범인이 미야모토 소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먼저, 사건이 벌어지고 일본인들끼리 말을 마추기 전에 우치다 영사가 일본의 하라 차관에게 보낸 극비사신을 보면 '살해당한 부녀 중 한 명은 왕비라고 하는 바, 이를 살해한 자는 우리 수비대의 어느 육군소위로서...'(95쪽)라는 말이 나온다. 원래는 편지 말미에 일람하고 난 후에 태워달라고 부탁하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하라 차관은 그것을 잘 보관하였고 그의 사후에 다른 문서들과 함께 책으로 묶여 세상에 공개 되었다.

 

우치다 영사는 명성황후 살해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았지만 사건 직후, 관련자들의 증언을 듣고 일본으로 돌려 보내 재판을 받게 하고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을 만나 사건을 해결하는 등 뒷수습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가장 많은 자료와 증거들을 정리하여 보고서를 작성하여 지금까지 명성황후 살해 사건과 관련해서 가장 많은 자료를 남겨 놓은 사람이었다. 그 보고서에는 결국 일본인의 입장이 담겨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손해가 갈 내용은 감춰졌을 것을 염두하고 보고서를 읽을 필요가 있다. 어쨌든 우치다 영사는 이 문서 이후에는 계속 누가 직접적으로 명성황후를 죽였는지 모른다고 말하면서 낭인들이나 군인들이 곁에 있었다는 식으로 애매하게만 답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사건 수습 전에 급하게 전한 이 문서 내용이 어느 정도 신빈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미야모토 소위는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은 일본인 역사학자도 눈여겨 봐야한다고 지적한 부분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필자는 '이웃나라 왕비를 살해한 자를 야스쿠니 신사가 다른 전사자와 합사해 천황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으로 모시는 사실이 후일 밝혀질 경우, 국내외적으로 큰 물의를 빚을 가능성을 우려했을 것으로 추정'(180쪽)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명성황후 살해 사건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지만 그만큼 씁쓸하기 그지 없었다. 왕에 의한 정치를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다른 나라의 강제적인 힘에 의해 왕권이 몰락하는 건 민족의 자존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걸 또 같은 민족, 친인척 세력이 도와줬다니,,, 동학농민전쟁으로 많은 민중들이 일본인들에 의해 죽었는데도 이런 권력 싸움으로 그들에게 힘을 실어줬으니,,, 나라를 빼앗긴 것은 자기들 잇속만 챙겼던 친일파 세력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과의 과거사 정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데... 한국 정부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네이버 책좋사 메디치미디어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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