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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거네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72
요나스 하센 케미리 지음, 홍재웅 옮김 / 민음사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범인이 아니랍니다...
스웨덴 문학 작품을 많이 접해 본 것이 아니라서 이 책에 대한 흥미가 높아졌다. 인도나 라틴 아메리카 등에서 출간된 작품을 읽을 때의 낯설면서도 색다른 사고방식과 문화, 감정 등을 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 책도 낯설고 새로운 작품이었는데, 책의 내용에서보다는 문학의 틀에서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 책의 줄거리나 소개 글을 보면서, 자살 폭탄 테러 발생 후 개인이 느끼는 불안함이나 혼란을 개인의 내면에서 보여주는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 책을 읽기 전에 <황금방울새>를 읽은 터라 폭탄 테러를 겪은 개인이 느끼는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절실하게 느꼈던 것이다. 이 책은 자살 폭탄 테러를 저지른 범인과 비슷한 모습을 가진 한 민족으로서 느끼는 공범자 의식이나 한 패거리라는 부정적인 낙인이 찍힌 듯한 죄책감, 불안함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 소설은 스톡홀름 시내 한복판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일어난 이후 주인공 아모르의 24시간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2010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실제로 일어난 자살 폭탄 테러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중립국의 위치를 지키면서 폭탄 테러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국민들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인공 아모르는 범죄자와 같은 아랍계 이주자로서 용의자와 비슷한 인상착의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잠재적인 범죄자로 인식되고 불편한 시선을 받게 된다.
우리는 보통 묻지마 범죄나 다른 특정한 범죄가 일어나면 범인과 비슷한 부류를 한 테두리에 모두 묶어 버리고 범죄에 대한 분노를 쏟아 내고는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최근에 조선족에 의한 강력 범죄가 많이 일어났던 만큼 그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 그리고 그들을 모두 잠재적인 범죄자로 인식하는 측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면서 조선족에 대한 보복 범죄와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들이 사회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종교나 문화적인 문제로 폭탄 테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다행이기는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폭탄 테러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본인이 저지른 범죄는 아니지만, 같은 민족이 저지른 범죄로 분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다수의 죄없는 사람들에 대한 혼란과 불안이 이 작품에서 다뤄지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다행히 분노나 혐오의 대상으로만 다뤄지고 있을 뿐이지만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이 떠오르면서 다수의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일어난 거대한 지진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민심이 흉흉해 졌을 때, 어이없는 헛소문이 퍼졌다. 일본에서 일하는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퍼트렸다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적당한 화풀이 대상을 찾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조선인들이 아무 죄없이 분노의 대상이 되어 보복 공격을 당하고 죽었다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다른 민족에 대한 보복 범죄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요나스 한센 케미리라는 작가는 이러한 내용을 공범자로 몰리게 되는 주인공 아모르의 불안한 심리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마르셀 푸르스트나 버지니아 울프 등의 작품처럼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 작품과는 다르게 각 장마다 소설 앞 부분에 '나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한다'라는 내용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이 소설에서는 각 장마다 샤비, 알렘, 발레리아, 카롤리나, 튀라의 인물들과 전화 통화를 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들은 테러 사건 이후에 아모르를 그들의 '형제' 용의자로 의심하며 관련이 없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아모르는 혼란함을 느낀다. 아모르는 폭탄 테러 이후 외출을 했다가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받으며 자신이 범죄자일지 모른다고 생각을 하며 착각에 빠진다.
각 인물들 사이에서 반복되는 '나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한다'라는 내용은 그렇기 때문에 독자의 읽기 흐름을 강제로 멈추게 하면서 이 '아모르'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 보도록 만든다. 아모르의 혼란을 독자들에게도 전달하려는 것처럼 책을 읽는 나 자신도 아모르가 범인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움을 함께 느꼈다. 하지만 아모르는 아모르일뿐 범죄를 저지른 사람과는 다른 인물일 뿐이다.
조금 더 소설 속의 사건 전개에 대한 스토리가 다양하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모르 개인의 의식의 흐름보다는 폭탄 테러 전, 후의 상황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더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건다'라는 부분이 반복되어 형식적인 안정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을 무대 공연에 올린다고 하니, 대체 어떤 작품으로 연출이 되어 만들어질지 궁금하다. 이런 점을 감안하고 읽기를 추천해 본다.
* 알라딘 민음사의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