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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제국
이토 게이카쿠.엔조 도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프랑켄슈타인의 후예들
이 작품은 일본 SF계의 놀라운 신예로 주목을 받았으나 2009년 3월 34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요절한 이토 게이카쿠가 남긴 미완의 원고를 문학적 맹우인 엔조 도가 이어서 완성한 작품이다. 프롤로그 부분은 이토 게이카쿠가 집필하고 그 다음은 엔조 도가 이어서 집필하였다. 특히, 이토 게이카쿠가 남긴 플롯에는 결론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엔조 도는 이토가 생전에 쓰고자 했던 거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고 한다. 또한, 서로 다른 작품 또한 문제이기는 했다. 엔조 도는 이토 게이카쿠의 작풍을 존중하면서 집필하였고 그것은 총 3년 4개월이 걸렸다.
이처럼 <죽은 자의 제국>은 완성된 스토리 자체가 제법 흥미롭다. 이토 게이카쿠는 이 소설의 프롤로그를 적고 난 후에 안타깝게 죽었다고 한다. 그 후의 소설을 이토 게이카쿠의 문우인 엔조 도가 적었다고 하니, 젊은 나이에 요절하게 된 것이 안타까우면도 문우의 우정이 부럽게 느껴졌다. 특히, 젊은 나이에 마음의 친구를 잃고 그를 위한 책을 완성했다고 하니,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엔조 도에게는 이 책이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엔조 도가 이 책을 쓰는 데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지 기대가 되었다.
책의 스토리 또한 제법 흥미로웠다. 이 책의 이야기는 19세기 말을 배경으로 붐베이나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일본 등으로 공간적 배경이 옮겨지고 있었다. 장대한 스케일이 책의 두께만큼이나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죽은 자에게 가짜 영혼을 주입해서 다시 살려낸다는 이야기는 로봇이 인류를 말살한다는 스토리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도 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에게서 아찔한 도발이 느껴졌다.
신에게 닿기 위해 높은 바벨탑을 쌓다가 신에게 서로의 말이 달라지는 벌을 받게 된 인류가 또 다시 과한 욕망에 사로잡혀 끝없는 나락으로 빠지게 되는 파멸을 겪게 될 것 같았다.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발명한 로봇이 인류를 위협하는 것처럼 죽은 자들도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게 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의 탐욕과 그 좌절, 그로 인한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은 죽은 자들이 사고하는 힘을 갖게 되어 자신들의 제국을 구축한다는 내용이 아니었다. 이 책은 모든 죽은 자들을 부활시켜서 죽은 자들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더 원의 음모를 밝혀내고 저지하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죽은 모든 사람을 부활시키려는 시도는 하나님에 의한 심판을 피조물일 뿐인 인간이 저지르려고 했던 탐욕으로 인한 어리석은 행위였다.
19세기 말은 실제 역사로는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난 후이고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으로서 혼란한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크리처를 창조하고 난 후 100여 년이 지난 후였다. 그 기술은 결국 전 세계에 확산되어 시체에서 되살려 낸 '죽은 자'들을 노동용에서 군사용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이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러한 허구적인 요소를 SF 소설이라는 것을 염두해 두면서도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었다. 죽은 자에 가짜 영혼을 주입한다고 하였는데, 그것이 어떤 화학적인 요법과 전기 요법만으로도 가능하냐는 점이었다. 그리고 어떤 화학적인 요법이라고 해도 몸이 썩어 들어가는 죽은 자만의 냄새를 어떻게 지울 수 있고 막을 수 있냐는 거였다. '가짜 영혼'이 주입되어 몸에 피가 흐르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을 죽은 상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죽은 자의 시체를 함부로 이용하는 것을 인간의 존엄성 차원에서 인류가 막지 않고 있다는 점도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을 읽어도 이런한 의문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운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단지, 산 자에게 이러한 시술을 사용하여 가짜 영혼을 덮어쓰기 할 수 있다는 점을 불법으로 규정하거나 시체 폭발이 일어나도록 하는 점만을 문제로 삼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도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또한, 이 책에서 가짜 영혼이 주입된 '죽은 자'와 공포물의 대명사인 좀비, 그리고 로봇과의 연관성을 생각해 보았다. 본인의 의지가 없다는 점은 공통적인 성격이었다. 단지 '죽은 자'는 좀비와는 다르게 인간 다수에 대한 공격성은 없었다. '죽은 자'는 로봇처럼 인간에게 필요한 쓰임새를 가진 편리한 존재였다. '죽은 자'는 로봇보다는 인간적이었고 필요할 때는 전쟁터에서 전쟁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죽은 자'는 로봇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아직까지도 미래의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만능의 로봇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점에서 '죽은 자'에 가짜 영혼을 인스톨하는 것은 조금 더 쉬운 방법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로봇이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는 미래 모습은 쉽게 상상이 가지만 '죽은 자'에 가짜 영혼을 주입시킨다는 설정은 아무리 해도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비현실적인 내용이라서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산 자에게 죽은 자의 가짜 영혼을 주입시키게 되면 영혼끼리 충돌을 겪으며 혼란을 느낄 것 같은데, 책 속에서는 생명을 연장 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술처럼 받아들여 지고 있었다. 로봇에 가짜 영혼을 주입한다고 하면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질 것 같은 걸 보면, 내가 이 책의 SF적인 요소를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상상력 부족인 것 같다.
어쨌든 이 책은 19세기 말, 아주 먼 옛날에 프랑켄슈타인의 후손들이 인간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허구적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죽은 자의 제국을 만들려고 하는 더 원의 발자취를 쫓는 왓슨이라는 주인공 무리들은 사건의 핵심에 다가서기 위해 사건의 단서들을 기반으로 진실을 추적한다는 기본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죽은 자의 신체에 가짜 영혼을 주입시켜서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운다는 상상력이었다. 단지, 인간의 과도한 탐욕과 욕망의 좌절,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고민의 흔적을 많이 접할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졌다.
* 알라딘 민음사의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나의 얼굴을 쓰다듬는 고향의 바람, 이 바람의 감각을 누구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겠는가. 그저 그것은 내 안의 누군가가, 미세한 존재의 집단이, 혹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말의 작용이 나로 하여금 느끼게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5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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