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스머신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박재현 옮김 / 반니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SF와 추리가 결합한 지적 미스터리

 

노리즈키 린타로,,, 추리소설 작가로 유명한다고 하지만 그의 작품을 많이 접해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은이에 대한 설명에서 추리소설의 존재 의의나 밀실 구성의 필연성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고뇌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이러한 고뇌하는 작가로서의 특성은 이 소설에서도 충분히 반영되고 있다. 특히, 웜홀과 블랙홀, 자기장, 시간 여행, 텍스트의 미래와 관련한 SF적인 요소를 추리소설과 결합한 점은 상당히 흥미로운 점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여기에 나오는 추리소설을 모두 읽어보고 싶은 욕구에 시달려야 했다. 애거서 크리스티나 엘러리 퀸 등의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들의 작품들을 몇 권 읽었고 추리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이 책에 나오는 것 만큼 자세히 알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추리소설에 대한 상당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실종 사건이나 엘러리 퀸의 이야기는 대체로 알고 있었지만 모든 작품을 자세히 알고 있지는 않아서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4편의 단편은 대체로 연관되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특히나 첫번째 소설과 마지막 편의 단편 소설은 서로 이어지는 내용으로서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블랙홀과 웜홀, 시간 여행이라는 과학적인 지식과 문학수리해석이라는 오토포에틱스 문학으로 대변되는 자동적으로 창작되는 시스템의 문제는 언젠가 미래 사회에 나타날 수 있는 타당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녹스 머신>은 녹스가 쓴 탐정 소설의 십계명 중에서 제5항인 '탐정소설에 중국인을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라는 문제 있는 발언이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었을까,,, 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편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에서 온 사람으로 인해서 과거의 사건이 바뀌는 내용은 흔할 수 있지만, 여기서 특이한 논리는 실제의 시간 여행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우주의 평행 이론에 의해서 현재에서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갈 경우에 그 과거가 A와 B라는 두 개의 갈림길로 나뉘어서 미래로 진행되어서 그 순간 과거가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가 될 수 없다는 논리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녹스가 쓴 '중국인의 등장'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걸로 보인다. 하지만 왜 그런 불합리한 논리가 나오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해 다양한 상상력을 펼치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단편이라고 할 수 있었던 <들러리 클럽의 음모>는 추리소설에서 탐정의 곁을 지키는 보조자들의 인물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권리와 권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여기에서 상당히 많은 보조자들이 등장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등장했던 소설을 모두 알고 있는 게 아니라서 안타까웠다. 만약 그들이 등장하는 모든 추리소설을 알고 역할을 더 자세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면 캐릭터의 성격을 이 단편 소설에 등장하는 부분과 연관해서 재미있는 요소를 더 많이 발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단편 소설에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삶 중에서 가장 미스터리하게 남아있는 11일간의 실종 사건을 다루고 있다. 탐정과 조수가 등장하는 추리소설의 틀을 바꾸지 않도록 애거서 크리스티에게 위협을 가하기 위한 일이었다는 설명이 재미있었던 것이다. 소설 속의 등장 인물이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창조한 작가에게 대항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깊었던 것이다.

 

그만큼 지적인 유희를 느끼며 재미있었던 반면에 결말을 조금 흐지부지한 측면이 있었다. 그것을 알고 그 뒤에 엮은이의 설명이 있었는데, 애거서 크리스티가 이 단편 소설을 적은 것으로 그녀의 사후에 발견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 애거서 크리스티와 등장인물 간의 실제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다수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반가웠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즉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을 읽었던 당시의 충격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그 책을 처음부터 세세하게 다시 읽고 싶어졌다.

 

<바벨의 감옥>은 일본어로 쓰여있지 않아서 그런지 세로쓰기에 맞춘 트릭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두 개의 인격이 서로 격리되어 있고 서로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결국 마침표의 출구를 찾는다는 것인데, 상당히 난해한 편이었다. 거울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쓰여진 이상의 시가 많이 생각났다. 띄어쓰기가 없이 쓰여진 난해한 시들,,, 해석할 여지는 많았지만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아서 연구자들의 도전 의식을 불태우게 만드는 이상이 1930년대 인물이라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논리증발-녹스 머신2>는 <녹스 머신>에서의 주인공인 유안 친루가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였다. 여기서는 엘러리 퀸의 <샴쌍둥이 미스터리>에서 '독자의 도전' 부분이 왜 없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전자 장치에 저장된 텍스트가 불타오르는데, 유안 친루가 '찢어진 눈의 중국인'으로서 <중국 오렌지 미스터리>의 '독자의 도전'을 통해 텍스트의 불확정성을 높여 불을 진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처럼 이 소설은 상당히 많은 과학적 지식과 논리가 적용되고 있어서 말로 해서는 그냥 말도 안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떻게 전자 매체의 텍스트가 불에 탈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미래의 어느 사회에서는 그런 논리가 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자신의 상상력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더 가깝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러한 과학적인 논리가 쉽게 이해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독자평에도 '당신들이 이해할 수 있겠나?'라는 문구가 올라오는 게 아니겠는가? 어쨌든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그에 대한 배경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면 흥미롭게 읽어볼 만한 소설이었다.

 

 

* 알라딘 반니의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그저 황당무계한 SF라 해도 `어디까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을지`보다도 `풀어놓은 이야기 보따리를 어떻게 주워 담을지`에 생각을 맞추는 것은 아무래도 미스터리 작가의 천성일 것이다. 장르의 초월이나 하이브리드, 그런 거창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기묘함까지 포함해 독자가 즐겨준다면 더 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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