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 엘레지 - 감탄과 애도로 쓴 종이의 문화사
이언 샌섬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종이에 대한 문화사

 

종이는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문화 도구이다. 우리가 자주 마시는 커피의 테이크 아웃 포장지도 두꺼운 종이이고 요새는 페이퍼 백도 많이 생겼고 경제의 핵심인 지폐도 결국 종이인 것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 삶의 동반자였던 종이가 점차 그 자리를 디지털 기기에 내주고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것은 e북이 점차 점유율이 높아지고 상용화가 되어가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렇게 가다보면 종이는 이 세계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음악 CD가 생기면서 LP판이 사라진 것처럼. LP판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고대의 유물처럼 현실 생활에서는 동떨어진 물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종이의 운명을 예측하며 애도하는 마음으로 쓴 애도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종이는 멀지 않은 미래에 영영 사라지고 박물관에 전시될 유물이 될 것이다. 책은 e북이 대세를 이루고 다양한 종이는 더 값싼 화학 제품으로 대체되고 지폐도 전자머니가 상용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이에 대한 매력과 향수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아직도 LP판을 찾아다니는 매니아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책에 대한 역사보다는 '종이' 자체에 대한 다양한 문화를 총 망라한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종이를 제작하는 것에서부터 종이를 만드는 나무에 대한 단상, 지도의 탄생, 돈에 대한 문양, 건축 설계도, 종이로 만든 예술 작품, 종이로 만든 장난감, 보드게임이나 직소퍼즐에 대한 내용, 종이접기, 신분 증명서 등등 종이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고 있었다. 특히, 작가의 지식의 폭이 지적인 유희를 느낄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종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작가 본인도 탐서벽이 있는 게 강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가 책과 도서관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유쾌한 문체로 썼다는 코믹 미스터리 <모바일 라이브러리>라는 시리즈를 읽어보고 싶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유명한 작가들의 탐서벽, 또는 종이나 문구류에 대한 집착에 대한 에피소드가 드러난 부분이었다. 그래서 특정한 색깔의 종이만을 고집해서 글을 적거나 특정한 상품 포장지를 수집하는 집착이 나타나기도 했다. 키플링은 특별 제작한 원고지에 글을 썼고, 발터 벤야민은 친구에게 받은 파란 공책을 선물 받고 무척 기뻐하며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게다가 건망증이 심했던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학부생 시험지 뒤에 썼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또 다른 예로 네 차례 영국 수상을 역임한 글래드스톤은 어느 날 한 서점에 가서 서점 안에 있는 책을 통째로 사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책 보관에 대한 글을 썼는데 넓은 방에 책꽂이를 여러 겹 두면 아마추어 책 수집가가 대략 2만 5천권 정도를 소장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서점 안의 책을 다 사버린다는 것은 대체 어떤 즐거움일까 상상해 보았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 들어가 그곳에 있는 모든 책을 사서 나만의 공간을 꽉 채울 수 있다면 무척 기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중국과 일본에 대한 종이 문화에 대한 내용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한지와 전통 공예인 줌치가 언급되고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줌치는 우리나라 전통 공예이지만 나도 잘 모르는 세계라 많이 부끄럽고 반성하게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우라나라 전통 공예에 대해서도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종이접기라는 오리가미가 뉴욕 사교계의 명사였던 오펜하이머에 의해서 어떻게 하나의 문화가 되었는지 흥미롭게 기술되고 있었다. 그래서 종이접기가 그렇게 역사적이고 체계적이라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저 어렸을 때 학이나 거북이 등을 접었던 내게는 종이를 접는 종이도 일반 종이와 다른 특수한 종이가 있다는 것과 전시회도 많이 열리고 세계적인 학회가 있을 정도로 활성화 되고 깊이 연구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종이를 접는 것 외에도 종이 오리기에 대한 역사도 오래 되었다. 우리가 알만한 사람으로 안데르센이 사람들 앞에서 동화를 얘기해 주며 동시에 종이를 오려서 자기 이야기를 형상으로 만들어 보여주었다고 한다. 종이 퍼포먼스 아트를 펼쳤던 셈인데, 사람들 앞에서 발레 무용수를 줄줄이 펼쳐 보이며 자기 작품이 잘되었다고 기뻐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종이 작품을 칭찬받는 것을 더 좋아했던 것처럼 보이기도 했단다.

 

종이에 대한 다양한 문화사를 작가와 함께 향유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하지만 그만큼 그러한 지적 유희에 대한 배경 지식이 많지 않으면 여기저기 통통 튀어 다니는 이야기의 맥락을 잡아내어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가끔 있었다. 나로서는 탐서벽에 대한 얘기가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들기는 했다. 어쨌든 종이는 이제 하나의 문화가 되어 우리 곁에 언제까지나 어떤 형태로든 머물 것이라 확신한다.

 

 

* 알라딘 반비의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우리는 종이로 된 세상에 산다. 종이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다. 적어도 상상하기가 매우 어려운 건 분명하다. 물론 상상해 볼 수야 있다. 우리는 뭐든 상상할 수 있으니까. 위대한 작가, 화가, 음악가 들이 책, 그림, 음악을 통해 우리에게 상상하는 법을 가르친 덕이다. 우리는 종이로, 종이를 통해, 종이를 이용해서 상상하는 법을 배우고 훈련받았다. 그 덕분에 종이 없는 세상도 상상해볼 수 있다. 그건 죽은 상태나, 태어나지 않은 상태를 상상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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