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세기
캐런 톰슨 워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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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구의 재난 속에서의 성장기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구의 자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환경 오염인 건지 아니면 태양계의 어떤 영향인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지면서 하루가 24시간의 틀이 깨어지게 되었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닌 지구의 환경을 인간은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이러한 물음에서부터 시작되는 책이었다. 책에서는 이렇게 지구의 자전이 느려지는 현상을 어느 순간부터 '슬로잉'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지면서 지구에 찾아온 변화를 살펴보자. 그 변화는 제일 먼저 우리의 일상 생활에 시간의 어긋남이 찾아왔다. 하루의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아침이 조금씩 늦어지게 되었다. 아침인데도 여전히 세상은 어두웠다. 밤에 자야할 시간인데도 해가 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지낼까?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먼저 해가 뜨고 지는 것과 상관없이, 즉,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지는 것과 상관없이 전에 생활했던 24시간 체제인 '클락타임'을 유지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도 지구 환경의 일부 체계일 뿐이기 때문에 지구 자전 속도에 맞게 생활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리얼타임'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구에서는 두 개의 시간 타임이 공존하게 되었다. 현실 세계와 공상 세계 처럼 두 세계는 공존하기가 어려웠다. 지구의 자전 속도가 계속 느려져서 24시간 체제를 유지하는 클락타임과 리얼타임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리얼타임은 은행이나 관공서, 마트 등을 잘 이용할 수 없어서 생활의 불편을 느끼면서 무정부주의자처럼 되어갔다. 클락타임의 사람들도 리얼타임의 사람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결국 리얼타임으로 생활하는 사람들끼리 도시를 벗어난 곳에서 하나의 집단을 이뤄서 살아나가게 되었다. 결국,,, 나중에는 리얼타임의 하루가 너무나 길어져서 인간이 그에 맞춰 생활할 수 없는 지경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지구의 자전 속도는 하루 24시간에서 점차 느려져서 하루 48시간으로 2배나 늘어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구에 닥친 재난은 태양의 일조량이 더 많은 시간 지구에 비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의 생채리듬은 낮에는 활동을 하고 해가 진 밤에는 잠을 자며 원기를 회복하는 시간이 깨지게 되었다. 해가 쨍쨍 내려쬐는 데도 한밤중이라며 잠을 자야 했고 해가 없는 추운 한밤중에도 정오라며 사회 활동을 해야 했다. 이러다가 더 큰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너무 많은 시간 동안 해가 내려쬐느라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인공적으로 햇빛의 양을 조절하느라 전지구적으로 식량이 점차 부족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흔히 먹는 야채와 과일들을 먹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지구의 재난으로 인해서 재난을 대비한 식품이 동이 나고 여러 물품들이 부족하게 되었다. 더 가난한 나라에 구조의 손길을 보내는 건 더욱 어려워졌다.

 

슬로잉 현상이 일어나면서 지구의 자장에 영향을 주었고 엄청난 새들과 고래 등의 동물들이 갑자기 죽기 시작했다. 지구에 종말이 닥칠 징조로 여긴 사람들은 자살을 하거나 두려움에 떨면서 식품들을 사재기하기 시작했다. 강력한 햇빛으로 나무가 말라죽기 시작하면서 지구의 모습은 변해 나가고 있었다. 슬로잉 현상은 점차 지구의 자기장에 영향을 줘서 결국 하늘에서 셀로판이 구겨지는 것 같은 소리를 들린 이후에 지구의 자장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것은 태양의 방사선으로부터 오랫동안 지구를 지켜주던 보호막에 균열이 생겼다는 것이다. 유전자에 변이를 일으키는 방사선으로 인해 인간은 더 이상 햇빛 아래에서 생활해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동식물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간이 먹을 음식도 오로지 인공적인 햇빛에만 의지할 수박에 없었다.

 

이런 지구의 재난 속에서도 사람들은 어떻게서든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지구의 중력이 더 강력해져서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는 데도 전보다 더 많은 힘이 필요하게 되었다. 운동선수가 차야하는 축구공이나 야구공 등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지하 시설에 재난 식품을 마련해 두고 창문에 두꺼운 철문을 대며 일상생활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지구에 속하는 생명체로서 그러한 지구적 변화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것을 '슬로잉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병으로서, 두통이나 어지럼증, 무기력증, 실신 등 몸이 허약해지는 것으로 딱히 치료 방법이 없었다.

 

특히, 이 책의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줄리아는 이제 막 청소년기에 접어든 열한 살 소녀였다. 줄리아는 지구적인 변화 속에서도 몸의 늦은 2차 성장에 몰래 속옷을 사기도 하고 학교에서 잘생긴 세스라는 소년을 짝사랑하며 신경을 쓰기도 하고 여자 친구가 없어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움을 겪는 사춘기 소녀다. 친한 친구가 갑자기 멀어진 것에 대해 서운하면서도 자존심때문에 별 말을 못하기도 하고 인기있는 여자애들을 부러워 하기도 하는 평범한 아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에서 점차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도기에 접어든 줄리아와 같은 시기의 아이들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기적의 세기'에 해당하는 건지도 몰랐다.

 

이 소설은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인간은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까? 라는 재미있는 발상을 가지고 쓰인 책이다. 그래서 그러한 지구의 재난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들이 흥미로웠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지구의 재난이 언젠가는 현실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지구의 환경 변화가 여러 재난 영화나 책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처럼 지구의 종말을 언젠가는 일으킬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이러한 지구의 재난 속에서도 어쨌든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든 어떻게든 적응해 나갈지 모른다는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슬로잉 현상은 멈추지 않고 몇 년 후에도 계속 하루의 시간이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지구의 재난 속에서도 사춘기를 겪어내는 줄리아, 즉, 다음 세대의 모습이 그만큼 눈부신 기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알라딘 민음사의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슬로잉이 시작되고 일 년이 지났을 즈음 어두컴컴한 여름날 오후에 두 아이가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윽고 두 아이는 젖은 시멘트에 손가락을 찔러 넣고 지극히 단순한 진실, 그러니까 이름과 날짜 그리고 이 글을 새겼다. 우리는 이곳에 있었다. (3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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