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 17명의 대표 인문학자가 꾸려낸 새로운 삶의 프레임
백성호 지음, 권혁재 사진 / 판미동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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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아픔 속에서 행복 찾기

 

 

사르트르식으로 얘기하면 인간은 그냥 세상에 던져진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희로애락을 느낀다. 행복과 즐거움도 있지만 요즘에는 고통과 슬픔, 아픔만이 더 많은 것 같아 더욱 안타까움을 느낀다. 누군가는 '힐링'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힐링을 어떻게 해야할 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보살펴야 할 지 모르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자신의 감정조차 보듬지 못하고 방황하고 자책하고 아파할 뿐인데, 어떻게 성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겉으로 드러난 상처에는 밴드를 붙이면 되지만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해야 낫는 것일까?

 

이 책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 백성호 기자가 17명의 고수(진중권, 최재천, 정재서, 이덕일, 고진하, 박석무, 한형조, 김대식, 이나미, 장하석, 김개천, 홍승수, 유미숙, 대해, 황병기, 정희선)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이 담겨 있다. 영국에서 잠시 귀국한 세계적인 석학과 첸체물리학에서 손꼽히는 권위자, 마음의 뿌리를 고쳐 주는 정시과 의사, 영성의 시인 등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17명의 고수에게서 노자의 자기혁신, 뇌과학의 메시지, 전통 건축과의 소통, 천문학의 지혜, 심리학의 역설, 과학철학의 통찰, 미학의 발견, 역사의 울림, 동양신화의 발견, 자연의 순리, 시의 생각의 여백, 아이들의 미래, 정약용의 실학, 영화로 읽는 불교, 공부의 즐거움, 일하는 기쁨, 소박한 생태계 등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이나미의 인터뷰가 눈에 들어왔다. 이나미는 카를 구스타프 융 계열의 심리학 전공자로서 그녀의 학맥은 국내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소수 그룹에 속한다. 융의 분석심리학에는 고고학, 연금술, 점성술, 신화, 동서양, 철학, 천문학, 종교에 대한 관심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인간에게 내재된 무의식의 원형들이다. 그 무으식의 원형들이 자못 흥미로워졌다.

 

그녀는 인간의 불행이나 아픔, 슬픔 등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태어나서 세상에 나오면 당연히 행복한 존재가 돼야 할까요? 헛소리죠! 사르트르식으로 얘기하면 인간은 그냥 세상에 던져진 존재고, 불교식으로는 연기에 의해 이 땅에 온 인연일 뿐이에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낮이 있으면 밤도 있어요. 불행 없이 행복이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아요. 오히려 '자기 안의 행복과 불행을 잘 볼 수 있느냐'를 물어봐야 하는 것이죠."

그녀의 말에 따른다면 인간의 불행은 그냥 세상의 순리일 뿐이다. 불행이 있어야 행복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불행을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얘기한 '조이(Joy)'에 대한 개념 정의는 무척 재미 있었다.

행복을 나타내는 영어 표현에서 '플레저(Pleasure)'는 '감각적인 쾌락이다'이다. '해피니스(Happiness)'는 '기분 좋고 마음이 즐거운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나미 박사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조이(Joy)'는 '깊은 깨달음에서 오는 즐거움'으로서 온전한 나를 찾은 이들만이 지어 보일 수 있는 반가사유상의 미소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 단식을 하죠.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 광야에서 시험을 받아요. 조이는 그런 고통 뒤에 얻어지는 겁니다. 해피하려면 코미디를 보면 돼요. 쾌락을 원하나요? 술, 마약, 섹스,,, 그런 것들에 의지하면 되죠. 그런데 그건 달콤한 케이크를 먹는 것과 같아요. 케이크 열 개를 먹을 수 있나요? 다들 죽겠다고 할 겁니다. 금방 질리니까요. 깊은 고통으로 다져진 조이는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기쁨이 주변의 쾌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오기 때문이에요. 제가 하는 일은 피상담자들이 조이를 느낄 수 있게 도와 주는 겁니다. 고통을 받다가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은 차라리 조이에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진 거죠. 자신의 문제를 외면하고 계속 쾌락에 탐닉하는 이들이 훨씬 심각한 병자입니다. 자신의 고통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요."

 

단순한 영어 표현이 '조이(Joy)'에 저런 깊은 뜻이 있을 줄은 몰랐다. 플레저나 해피니스보다 조이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 내가 느끼는 아픔과 고통, 슬픔 등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그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것을 이겨 낸다면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세상을 통찰할 수 있는 힘을 갖출 수 있고 더 높은 이상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신의 고통을 이겨 내고 얻은 즐거움인 조이는 타인의 고통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사람의 연대, 세상의 연대를 갖출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그래서 고통이란 '더불어 사는 삶'을 만드는 원천이라고 했다. 나를 아프게 하는 고통이 모든 세상을 연대시킬 수 있는,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주는 경험이라니, 뜻밖이었다.

 

고통이란 나를, 남을, 세상을 이해하여 모두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항상 행복하기만 하다면 다른 사람을 살펴볼 생각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신은 우리에게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슬픔이나 아픔, 고통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겨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 서평 주제는 '삶의 아픔 속에서 행복 찾기'가 아니라 '삶의 아픔으로 행복하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알라딘 판미동의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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