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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시선 -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 에세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지음, 권오룡 옮김 / 열화당 / 2006년 9월
평점 :
사람의 심연에 깊이 박힌 시선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은 '결정적 순간'으로 유명하다. 그의 사진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책을 보자마자 바로 사고 싶었다. 이 책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여러 단편적인 글들을 모아서 엮은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진에 대한 철학과 사진을 찍었던 때의 추억, 사진과 함께 했던 동료들과의 추억을 얘기한 것들을 모으고 모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전체적으로 어떤 맥락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저 사진 자체에 대한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개인적 입장과 사상, 사진을 찍었던 중국과 러시아와 쿠바에 대한 추억,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동료로 지냈던 사람들에 대한 개인사적인 친분에 대한 글들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도 얼마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상과 감정과 추억들을 아는 것은 그의 사진들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바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은 그 사진 한 장만으로도 많은 얘기를 전해주는 시적인 감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개인사적인 감상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보다 보편적인, 사진작가가 가지고 있는 사상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은 그 짧은 단편들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프랑스어로 자필로 쓴 글을 보면 프랑스에 직접 가서 그의 사진 에세이를 사오고 싶었다. 몇 장의 사진과 사진작가 본인이 직접 쓴 글, 그리고 짧은 글들, 그 사이에 흐르는 여백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자꾸 읽어보고 책 사이 사이에 존재하는 여백에 내 짧은 생각도 담아보고 싶었다. 자주 갖고 다녀서 겉표지에 때가 탄다면 이 책에 더 애정이 생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래두고 묵히면 묵힐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는 와인처럼. 그 그윽한 향기가 퍼지는 것 같았다.
덧붙여서, <영혼의 시선>에 쿠바와 관련된 짧은 일화가 나오는데, 거기에서 체 게바라를 찍은 사진과 그와 관련된 얘기가 있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개인 감상처럼 사진 속의 체 게바라는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어서 그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왜 그의 죽음 이후에 쿠바와 미국 등에서 컵이나 티셔츠를 이용한 상업적인 이미지 메이킹 소재가 되었는지 말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사진작가 중에서 좋아하고 존경하는 최민식의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사진 에세이와 함께 놓고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최민식의 사진은 인물 사진이 많고 특히 클로즈업한 사진들에 그 특색이 있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와인의 향기라면 최민식은 시장 바닥에서 떠도는 바다의 짠 내음이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