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양장)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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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신념을 위한 멋

이 책은 조선의 문장가인 이옥과 김려의 이야기이다. 이옥과 김려는 정조 시대의 인물이다. 조선 역사에서 정조 시대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분이 많다. 정조는 세종대왕만큼 똑똑한 왕이었지만 시대를 제대로 만나지 못 해 자신의 꿈과 이상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독살 당한 비운의 왕이다. 아버지는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이고 세도가들의 세력이 커져 자신의 세자 자리도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경제적으로 성장한 조선 후기의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나름대로 이상왕국을 건설하려 했던 정조의 시대는 많은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최근에 드라마화 되어 인기를 끈 <성균관 스캔들>이 정조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사도세자의 초상화가 소재로 등장한 <바람의 화원>, 정조의 죽음을 다룬 <정조암살미스테리 8일>, 정조의 비밀스런 편지를 보여주는 <정조의 비밀편지> 등이 있었고 드라마도 정조를 주인공으로 한 <이산>이 있었다. 이 외에도 정조를 소재로 삼은 것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다.

사회가 급변하는 시기에 중국으로부터 새로운 사상이나 소설이라는 허구의 문학도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실학 사상가들도 문학의 재미에 눈을 뜨고 박지원은 한문으로 된 소설을 직접 짓는 등 많은 학자들이 그 분위기에 휩쓸러 갔다. 하지만 정조는 소설 등 성리학 이외의 학문을 배척하려는 '문체반정'을 일으킨다. 어찌 보면 문체반정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만큼 사회의 변화를 뒤처지게 만든 규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기에도 그러한 압제에 몸부림을 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이옥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정조의 문체반정에 이옥보다는 많은 한문 소설을 써서 양반을 비판한 박지원이 더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박지원은 소설 속에서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소설적 장치를 썼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이옥과 비교해 보면 이유가 궁금해질 정도다. 그것이 바로 집안의 세력 때문이었다. 함께 문학에 탐닉했더라도 세도가의 집안이라면 별다른 벌을 내리지 못했다. 이옥은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본보기였을 뿐이다. 그래서 이옥은 결국 과거를 보지 못하고 가난한 삶을 겨우 살아낼 수밖에 없었다. 이옥은 문체를 바꾸지 못한 걸까, 아니면 바꾸지 않은 걸까?  

이 소설은 현감이 된 김려를 이옥의 아들인 우태가 찾아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김려는 풍요로운 생활에 젖어 옛날에 유배를 떠나며 겪었던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 우태로 인해 이옥과의 관계와 힘든 유배 생활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서 고초를 겪으며 의식적으로 멀어졌던 이옥의 글을 다시 읽게 되고 '진정한 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글을 읽으며 이옥과의 추억을 되새기다 그와의 우정을 깨우치며 친구를 외면했던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김려는 아버지인 이옥의 글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다고 우태를 나무라지만 우태는 이옥보다 현실의 삶을 더욱 높은 차원에서 그려내고 있어서 김려는 놀라고 만다. 김려는 우태를 오해했음을 미안해한다. 그리고 유배의 길 위에서 탄생한 자신의 글을 되찾는 여정을 떠나려 한다.  

이 책은 이옥과 김려의 글들을 많이 싣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았다. 하지만 소설적인 재미는 그만큼 반감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처음에 이옥의 아들이 찾아온 장면이 흥미로워서 그 다음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대감이 생겼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옥과 김려의 글과 김려의 귀양길이 한참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것도 짧은 만남과 대화가 있을 뿐이어서 아쉬웠다. 이옥과 김려의 글도 재미있었지만 다른 소설적인 요소도 더 있었다면 읽는 재미가 많아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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