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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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와 해학이 뛰노는 인생의 축소판 

생각해 보면 중국 문학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에 비해 일본 문학은 미스터리나 추리물을 많이 읽으며 모으기도 했다. 중국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삼국지나 논어, 맹자류는 빼고 말이다. 가까운 지역에 있는 나라인데도 중국의 현대 문학을 읽어보지 못한 것은 번역의 문제보다는 심리적 거리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위화의 책을 읽어보면서 중국 문학도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 일본, 중국의 삼국에서 유명 작가의 단편소설을 모아 동시에 발간한 <젊은 오래된 도시, 성>이란 책에 대한 기대감도 더욱 높아졌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는 우리나라의 채만식의 풍자와 해학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대화체와 설명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닮아 있었다. 그래서 심각하거나 슬픈 상황에서도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웃음 속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허삼관은 남자다운 것을 보여주기 위한 흥미로, 결혼을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피를 뽑아 판다. 그 이후로 집에 무슨 일이 있거나 아들들을 위해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피를 팔게 된다. 첫 아들인 일락이가 간염에 걸렸을 때는 상하이로 가면서 며칠 만에 몇 번이나 피를 뽑느라 쇼크로 쓰러지기도 한다.  

허삼관은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이다. 아내가 결혼하기 전에 다른 남자를 만나 일락이를 낳은 것을 9년이 지나 알게 되자 허옥란을 구박하고 일락이를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내쳐 버린다. 일락이는 자신을 키워준 허삼관을 따르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자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하소용을 찾아가지만 거기에서도 확실하지 않다면서 내쳐지고 만다. 극심한 가뭄에서 제대로 먹지 못하자 일락이는 울고야 마는데, 허삼관이 찾아와 자신을 업고 국수를 먹으러 간다. 나중에 하소용이 죽을 위기에 놓였을 때 일락이가 아버지라고 불러야 했는데 부르지 않으려고 했다. 그때 허삼관은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며 일락이를 설득하고 사람들에게 일락이는 자신의 친아들이라며 뭐라고 하는 사람을 혼내주겠다고 공언한다.  

이렇게 허삼관은 이기적이면서도 남의 자식인 일락이를 끝까지 보듬으며 키워내며 가슴 뜨거운 부정을 보여준다. 일락이가 간염에 걸렸을 때는 병원을 찾아가면서도 몇 번이나 피를 뽑는다. 그리고 아내인 허옥란이 문화대혁명 때 기생이라는 대자보가 붙어 머리가 밀리고 팻말을 들고 거리에서 서 있어야 하는 벌을 받았어도 밥을 가져다주며 따스한 마음을 전한다. 집안에서 아내를 비판해야 할 때도 일락이와 이락이가 허옥란을 비난하자 허삼관은 자신도 임분방과 바람을 피웠다며 아내를 감싸 안는다. 

이러한 허삼관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부장적인 모습과 많이 닮아 보인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인 김첨지를 생각나게 만든다. 김첨지는 아픈 아내를 두고 밖으로 나오는데, 평소와 다르게 돈을 많이 벌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아내를 위해 산 설렁탕을 들고 집으로 오지만 아무리 소리쳐도 아내는 일어나지 못한다. 옆에서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와 일어나라고 외치는 김첨지의 목소리만이 공허한 방안을 씁쓸하게 메울 뿐이다. 비극적으로 슬픈 모습의 <운수 좋은 날>에 비해서 슬픈 상황에서도 유머를 잊지 않는 위화의 소설은 아마도 시대적인 차이에서 비롯한 환경의 무게감 때문일 것이다. 

위화의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었다. 특히, 장이머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어 199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인생>이란 책을 말이다. <허삼관 매혈기>는 펄 벅의 <대지>와 비교해 보아도 꽤 흥미로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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