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 21세기를 사는 지혜 인터뷰 특강 시리즈 5
김용철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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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딜레마에 빠진 우리 

2008년 김용철은 '삼성'을 우리 사회에 고발했다. 자신이 8년 동안 지냈던 조직 문화를 '배신'했다. 누구는 한 인간으로서 그럴 수 없는 거라고 비난했고 누구는 진정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고 추켜세웠다. 그리고 그 시기에 <한겨레21> 인터뷰 특강의 주제가 "배신"으로 잡혀 김용철, 정혜신, 진중권, 정재승, 정태인, 조국이라는 6명의 연사가 매 주 특강을 진행했다. '21세기를 사는 지혜'라는 대전제 아래에서.  

2011년이 되어 2008년 한국 사회를 읽어 보았다. 그때는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인수위원회에서 한 달 동안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한미FTA, 미국산 쇠고기, 한반도 대운하 등에 대해서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촛불 시위를 하던 격정적인 시간들을 지난 참이었다. 지금 보면 어찌 그리도 씁쓸한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열심히 촛불 시위를 했어도 하나도 바뀐 게 없고 도리어 진보적인 여러 세력들이 정부의 검찰로부터 공격을 당했으니 말이다. 그때 연사들의 예상이 하나도 빗나가지 않고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정권 말기를 앞에 두고 4대강 속도전을 내는 우리 한국 사회는 대체 어디로 휩쓸리고 있는지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그 길이 밝지만은 않을 거라는 것만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최근에 나온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은 참이라 2008년 인터뷰 특강 내용은 더 새로울 게 없었다. 판결 내용이 김용철이 예상한 것과 같았고 '검찰'과 관련해서 얼마나 '삼성'의 편의를 봐주고 불법을 저지른 내용을 합법적인 걸로 만들어 주었는지 더 자세하게 나와 있기 때문이다. 단지 '법과 질서'를 강조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그 후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알고 있다면 우리가 무엇을 '배신'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김용철의 '배신'이 자신의 이익과 안위만을 위한 얍삽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과 정의를 위한 올바른 행동이었다는 것을 여러 연사들의 발언을 통해 옹호하고 있었다. 그것이 단기간에 경제에 어떤 피해를 줄지도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것이 우리 국민에게 정당하게 돌아와야 할 혜택을 돌려받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혜신은 심리상담의 측면에서 배신의 정신분석을 해 주었다. 우리가 배신을 당한 사람은 있어도 스스로 배신을 했다고 한 사람은 없다는 걸 설명해 준 점이 흥미로웠다. 실제로 배신당하는 건 극소수이고 대부분의 배신은 상대방은 결과로, 나는 동기적인 부분에서 사건을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바라본 사건과 남이 바라본 사건이 다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남의 연예사에는 함부로 끼어들지 않는 게 좋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내부고발자들의 이중적인 심리 상태를 분석해 놓았는데, 그 부분을 보니 내부고발자들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조직을 배신했다고 다수가 손가락질을 하고 본인도 점차 자신이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자책하며 고민한다는 것이다. 사회의 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는데, 왜 그들의 행동이 박수를 받지 못 하는 걸까? 잘못된 것을 잘못 되었다고 말하는 것조차 이렇게 비난을 받는 일이라면 대체 이 사회에서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권력과 돈'일 것이다.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도덕성이 낮아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이유로 한 나라의 대통령이 당선된 걸 보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 5년 후를 생각해 보자. 

지금도 열심히 사회를 비판하는 진중권은 앞으로도 대중을 배신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자리였다. 아무리 사회가 잘 돌아가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꿔야 할 것은 많다. 하물며 사회적 약자가 한 사회에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자살 등으로 죽어나가는 상황이라면 누군가는 당당하게 무엇이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다수의 대중들과 다른 생각이라고 하더라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라면 그러한 소수의 의견도 존중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 소수의 주장이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 반박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토론 문화가 아닐까 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옛날의 전근대적인 '빨갱이, 좌빨, 지역감정'으로 몰아붙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갈 길이 멀다는 뜻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 마디 말로 사회를 들끓게 하는 진중권의 존재 이유는 분명해진다. 

정재승은 인간의 두뇌 실험과 관련된 다양한 예시들을 들어 준 점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조국은 대학 교수의 정치 참여 문제를 제기하면서 자기 할 일을 먼저 해놓고 정치든 다른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교수의 정치 참여로 공석으로 남아 대학 수업에 끼치는 불이익은 분명 바뀌어야 할 문제이다. 높은 등록금 때문에 휴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업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학생의 피해는 대체 무엇으로 보상되는지 알고 싶었다.  

정태인은 한미FTA의 실상을 알려주고 있었다. 정부가 얼마나 교묘하게 말을 꾸미고 있는지, 그리고 미국산 쇠고기가 얼마나 무섭고 식습관으로 인해 인간 광우병에 한국인이 얼마 취약한지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어이없는 조건으로 미국과 FTA를 체결하려고 하는지 뉴스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았던 실상을 알리고 있었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장하준도 보호 무역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역설하고 있는데, 대체 무엇을 바라고 이렇게 우리 자신을 낮추고 무엇이든 퍼주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것은 몇몇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서이겠지만 그것으로 우리가 받는 피해는 너무나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무엇을 하든 장기적인 안목으로 정책을 세워 나갔으면 좋겠다. 한국사 선택이었다가 1년 만에 필수로 바뀐 것처럼 이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리고 한국의 실상을 알리는 이런 책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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