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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꿈
원종국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12월
평점 :
오늘날까지도 전통을 바로잡고 이어나가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기둥」) 하지만 그것도 무너져가는 것을 세우기에는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마저도 큰 태풍이 한번 몰아치고 나면 흔적마저 찾기 힘들어진다. 그 자리에 과거는 무너지고 현대의 이상이 다시 세워진다.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에는 또다시 과거가 묻히고 미래가 들어찰 것이다. 그것은 단절이 아니라 명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의 모습이 180도 다르게 인식되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만물에 ‘이중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중성은 반대적인 성질을 갖는다. 그것이 이질성이다. 이질성은 전혀 상반된 것을 합쳐놓는 것이다.(「믹스언매치」) 유전자 복제 기술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키메라가 탄생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기술 발달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인간의 도구인 과학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사회의 과도한 욕심이 문제이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고 하듯이. 육체가 키메라화 될수록 우리의 의식도 복잡하게 얽혀 신경계통의 이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기억의 착각으로 혼선을 빚고 과거와 미래가 현재에 공존한다.(「소멸의 흔적」) 사람들의 기억들이 얽혀지는 것을 표현한 것이 「K 지하상가 사람들」이다. 그들은 전생에 무언가로 이어진 사람들일 것이다.(「인연」) 시계의 톱니바퀴가 맞물려야 돌아가는 것처럼 무언가 달라야지만 이질적인 세상은 순환하여 새로운 ‘현재의 역사’가 시작된다.
무덤달구소리가 봄바람에 울려 퍼진다. 땅을 다진다. 울림의 파동이 세계의 공간을 흔들고 인식의 존재를 알린다. 같지만 다르다. 항상 같은 봄, 같은 시간, 같은 하루일지라도. 평범한 ‘나’가 아니다. 나를 지지하고 지탱해주던 가치와 기억, 믿음 등이 무너져 내린다.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변화’는 송두리째 모든 것을 바꿔버린다. 아무리 세우려고 노력해도 결국 쓰러지고 마는 것이 ‘무소유’의 진리다. 지키기보다는 무너뜨리라는 논리가 표출된 작품이 그의 등단작인 「기둥」이다.
99년 진주신문 가을 문예에 당선된 「기둥」은 오대조께서 명당자리에 지은 사백년 된 집의 기둥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이다. 기둥을 똑바로 해놓지 않으면 그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지붕마저 내려앉을 기세다. 현대 사회의 우리는 아직도 경직된 사고로 과거의 썩은 나무를 세우기 위해 헛되이 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기둥, 그런 기둥이 무너진다고 우리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일까? 폭풍이 일어서 그렇게 세우려던 기둥이 결국 지붕과 함께 주저앉아버렸다. 하지만 그 다음에 새로 복원하게 되었다. 새 것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세월의 흔적을 이겨내고 아픔과 고통을 겪어온 우리 삶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굳는 것처럼 땅을 단단하게 밟는 달구소리로 우리는 더 강하고 단단하게 단련된다. 이것은 앞으로 우리가 삶을 살아나갈 때 큰 힘이 될 수 있다. 또한, 미래 사회에서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해도 그 세상을 긍정적이게 바라보는 정신적 발판이 되는 길이다.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섞어도 나의 특성은 지워지거나 흩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를 만나 인연을 맺기도 하고 그 줄이 끊어져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게 되어도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누군가의 복제품이었어도 내 어머니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을 평생 짊어지고 나의 근원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럴 때면 ‘아!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하고 몇 번이나 외쳐 부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의 초월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자기의식을 갖는 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건네는 궁극적인 외침일 것이다.
원종국의 단편 소설들은 하나로 이어져 커다란 몸체를 구성한다. 그 하나하나를 읽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의 몸통을 부분적으로 만지고 느끼는 것과 같다. 그의 소설은 하나의 환원구조로 순환하고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온다. 거기다가 각 등장인물들과 상황들이 상호연관 관계를 맺고 있고 그 단편 소설에는 복선의 단편들이 곳곳에 넘쳐난다.
원종국의 소설을 읽는 것은 보물 지도를 들고 소설 속에 숨겨진 상징이라는 보물을 찾아 떠나는 신나는 모험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