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법칙 - 권력 경영기술 48
로버트 그린 지음, 정영목 옮김 / 까치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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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권력을 "타인의 동의 없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해서, 권력을 가진 이가 '이거 해'라고 하면 다른 사람은 '이거'를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한다.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많은 이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이의 뜻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내 뜻을 밀고 나갈 수 있다. 세상에 내가 왕인데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권력을 매우 탐낸다. 문제라면 탐내는 사람이 모두 권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거지만.

  "나는 권력에 관심없는 소시민이야."라고 말하며 이 책을 외면하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막스 베버의 정의에 따르면 나라를 휘두르는 자만이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니다. 하다못해 친구 셋이 모였을 때 누가 저녁 메뉴를 정하는가도 권력이 개입되어 있고, 연인의 관계에서 누가 주도적으로 이끄는가도 권력에 따라 결정된다.

  <권력의 법칙>은, 권력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따고 그것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역사의 사례를 들어 보여주고 정리한다. 퍽 상세하게 분류하고 이야기한 덕분에 책이 육중하다. 책상에 앉아 정독하기보다는 들고 다니면서 때때로 읽는 게 더 좋을 책인데 그 점이 좀 아쉽다. 그리고 시선이 이쪽저쪽으로 옮겨가게 책이 편집되어 있어서 가끔 어디부터 읽어야 하나 헛갈린다.

  하지만 책이란 알맹이가 중요한 법. 부담스러운 외관과 다르게 알맹이는 꽤 근사하다.

  <권력의 법칙>은 권력에 대한 역사사례집이라고도 할 수 있고 권력을 쟁취하는 핵심 포인트 정리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인문-교양서가 될 수도 있고 자기개발서가 될 수도 있고 역사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권력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적절하게 묶여서, 분류따위야 아무래도 좋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읽다 보면 재미나고, 이래서 이 사람이 망했구나 생각되고, 어쨌건 신난다 재미난다 하면서 역사 속 권력가들과 만날 수 있다. 과거의 권력가부터 비교적 최근의 권력가들까지, 잘 알고 있던 권력가들부터 알지 못하고 있던 숨겨진 권력가들까지, 서양의 권력가부터 동양의 권력가까지 넘나든다. 옆에는 권력과 관련된 짧고 교훈적인 이야기까지 적혀 있어 금상첨화다.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법칙의 핵심을 정리하는 포인트가 있는데, 이 법칙을 쓸 때 주의할 점도 알려주고 어떤 때 쓰면 좋은가도 알려준다.

  하지만 48가지나 되는 법칙을 읽고, 내가 이걸 쓴다고 생각하면 "참 세상에 쉬운 일이 없구나, 밑에 있는 사람도 힘들지만 권력자도 전전긍긍 지키느라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기왕 둘 다 힘들다면, 권력을 쥐는 쪽이 좋기야 하지만 말이다.

  자신의 주가를 높이기 위해 실생활에 쓰려고 읽어도 좋고 재미있는 유희거리로 읽어도 좋은 책이다. 48항목이나 기억하려면 뇌의 용량을 늘려야 하겠지만.

 
덧붙임. 

48항목이나 되는 권력의 법칙을 읽고나면 앞의 항목을 잊어버린다. 또, 48가지를 다 지키는 것은 아무리 초인이라 해도 불가능하다(이 모든 항목을 지킨 사람은 역사 속 권력가들 중에도 없다). 따라서, 자신에게 잘 맞을 것 같은 몇 가지 법칙을 가슴에 두고 나머지는 부가적으로 생각하는 편이 좋다.
 

2008.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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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역사의 진실을 말했는가
크리스티안 마이어 외 지음, 이온화 / 푸른역사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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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움이 나면 사람들은 으레 "법 대로 하자."고 한다. 이 말에는 법이 공정한 판단을 내릴 거라고 하는 믿음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에게 되묻는다. 법은 정의로운가? 아니, 법을 사용하는 우리는 정의로운가? 우리 사회는 법으로 인해 오히려 무법지대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

  권력자가 법을 만든다. 따라서 법은 권력을 쥐고 있는 자에게 관대하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배척하고 기존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 법은 진실로부터 눈을 돌린 적이 많다는 것을 <누가 역사의 진실을 말했는가>는 각 사례들을 통해 보여준다.

  사례 중에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것도 있고(소크라테스처럼), 잘 모르는 사례도 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섞여있어 흥미롭고, 기본적으로 사례를 모아놓은 책이기 때문에 읽어 나가는데 부담이 없다. 그리고도 읽고 나면 법과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2008.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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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사 논리 퍼즐 - IQ 148을 위한 IQ 148을 위한 멘사 퍼즐
필립 카터.켄 러셀 지음, 강미경 옮김 / 보누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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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멘사 논리 퍼즐>은 퍼즐집이다. 앞쪽에는 문제가 있고 뒤쪽에는 해답이 있다. 차근차근 풀어도 되고 마음에 드는 것만 풀어도 된다. 풀다보면 문제 유형이 몇 가지씩 겹치는 게 보이지만, 그렇다고 재미가 없지는 않다. 심심할 때 한 문제씩 풀고 나면 굉장히 똑똑해 진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진다. 

  사이즈가 작고 페이지 수도 많지 않아서 들고다니면서 부담없이 볼 수 있다. 이건 굉장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저기로 이동 시간에, 괜히 친구가 늦어서 기다릴 때, 틈틈히 풀면서 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 해답지에는 그닥 신경을 안 쓴 것 같다. 해답지의 해답이 종종 틀린다. 내가 발견한 것만 두어 개 된다(심지어 나는 이 책을 끝까지 본 것도 아니다). 따라서 틀린 부분이 더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래서 별은 세 개.
 

2008.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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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향연 - 최후의 금기어를 논하다
크리스티아네 취른트 지음, 오승우 옮김 / 들녘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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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의 향연>은 실패에 대해 추적한 인문서이다.

  비록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는 했지만 다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실패라는 개념이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후부터 생긴 개념이며 성공의 신화와 실패의 공포가 타고난 것이 아님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위대한 패배자>에서 느꼈던 의문, 왜 우리는 패배를 그렇게 괄시하고 두려워하는가, 에 대한 흥미로운 관찰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더 많은 이해를 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시간을 들여 천천히, 완독해야겠다. 

  개인적으로 '한계체험' 챕터까지는 쫓아가는데 무리가 없었는데... 으음... 여러모로 아쉽다. 

 

2011.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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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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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와 B의 영혼이 바뀐다.’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소설을 통해서 우리에게 익숙한 설정이다. 이 밑에는 ‘인간의 영혼은 육체와 별개의 존재이다.’라는 믿음이 깔려있다. 그러나 현대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은 뇌에 있다. 즉, 영혼과 육체는 하나로 존재한다. 수천 년을 이어왔던 영혼-육체의 관계가 뒤집어진 것이다.

  영혼과 육체의 관계처럼 우리가 아무렇잖게 받아들였던 사실이 있다. ‘생물과 무생물은 구분할 수 있다.’  나는 생물이다. 책상은 무생물이다. 이것이 뒤집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발달해가는 과학은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흐려놓고 있다. <위험한 생각들(존 브록만 엮음, 겔리온)>에서도 '생물과 무생물을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문장이 나온다. 읽어보면 또 나름 납득이 가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나와 책상을 생물이라는 카테고리와 무생물이라는 카테고리로 각각 편입시킬 수 없다는 건가? 

  <생물과 무생물 사이>라는 책의 제목을 보고 난 뒤, 나는 이 책이 <위험한 생각들>에서 본 특이한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내용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꺼이 책을 집었다.

  '생명이란 자기복제를 하는 시스템이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는 이 명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생물이라고도 무생물이라고도 하기 모호한 존재, '바이러스'가 있다. 바이러스는 자기복제가 가능하지만 개인차가 없는 기계적 오브제 모양을 하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위의 명제에 따르면 바이러스는 의심할 여지없는 생물이다. 그러나 저자는 바이러스를 무생물로 본다. 즉, 위의 명제에 덧붙는 제 2의 명제가 있다는 것이다.

  제2의 명제를 찾기 위해서 저자는 DNA에 대한 서술에서 원자의 역동성 그리고 동적 평형의 개념까지 다가간다. ‘생명이란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다.’라고 생명을 재정의한 뒤, ‘끊임없이 파괴되는 질서는 어떻게 그 질서를 유지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단백질의 구조와 녹아웃 마우스 실험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있다. 
  저자는 왜 ‘생명이란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다.’라는 명제를 세균-바이러스의 차이점에 빗대어 다시 설명하지 않았는가? 어떤 예를 설명하기에 A 명제가 불충분하다고 여겨서, B라는 명제를 끌어냈다. 그러면 어떤 예를 설명하기 위해서 B명제를 적용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두 번째 의문은, 재정의된 명제에서 끌어낸 ‘끊임없이 파괴되는 질서는 어떻게 그 질서를 유지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생물은 무생물과 틀리다. 따라서 A라는 부분이 사라져도 여전히 작동한다. 다른 부분이 A의 구멍을 보완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상에 대한 기술이다. 존재하는 상황에 대해 표면적인 것을 나열했을 뿐이다. 그 의미를 ‘설명’해야 진정한 답이 될 수 있는데, <생물과 무생물 사이>는 그것을 포기했다. 대신 생명의 신비로움에 대한 납득할 수 없는 묘사를 슬그머니 내밀었을 뿐이다.  


  “결국 우리가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을 기계적으로 조작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라는 맨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는 화가 났다. 저자는 독자에게 불성실하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된다. 생물과 무생물의 사이에 놓여있는 간극을 설명하기 위해 또 다른 천재가 등장해야 한다고,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면 납득할 수 있다. 나는 과학적으로 풀어낸 파격적인 제안을 보고 싶었지, 정확한 근거도 없이 내민 고전적인 주장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물론 후자가 훨씬 대중에게 잘 먹힐 거라는 생각은 한다. 그건 ‘안전한’ 생각이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와, 지나간 과학자들의 에피소드와, 과학자들의 승진(?) 시스템, 연구하는 과정, 연구 장비, 그리고 생물학 정보가 뒤섞여 있다. 


  솔직히 말해서 과학책은 까다롭다. 지식이 없으면 읽기가 힘들다. 나는 과학에 대해 아주~아주 기본적인 지식만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분자생물학에 관한 책을 넙죽 읽는다고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더구나 분자생물학 같은 아주 최근에 알게 된 분야에 대해 서술할 경우에는 소화하기가 더 힘들다. 이건 저자가 쉽게 써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생물과 무생물 사이>는 일반인을 충분히 배려했다. 이야기의 두서없음은, 뻑뻑한 과학 얘기로 피곤한 머리에 기름칠을 해 주고, 너무 풀어지는 것 같다 싶을 때 과학 얘기가 쑥 튀어 나와서 지식의 세계로 인도한다. 셰헤라자데의 이야기를 듣는 술탄처럼 푹 빠지고 만다. 

 

  이 훌륭한 완급조절은 독자가 쥐가 난 머리를 붙잡고 흔들다가 급기야 책장을 덮어버리는 일을 방지했다. 그러면서 주고 싶은 과학정보는 충분하다. 군데군데 곁들여진 그림은 글자만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것을 훌륭히 커버한다.

  개개의 이야기는 아주 훌륭하다. 재밌고 신기하고 흥미롭고 신난다. 저자는 이 얘기에서 저 얘기로 뛰어다니며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독자는 마냥 신나서 새로운 것을 흡수하며 저자 꽁무니를 쫓아다닐 수 있다.

  그러나 책에는 주제라는 것이 있는 법. 이것저것 나열하다가 중간에서 주제가 흐려진다면 독자는 혼란스럽고, 결과적으로 책을 덮은 뒤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세부 내용이 아무리 훌륭해도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저자는 멋진 이야기를 하나의 꼬치에 꿰는 것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것이 매우 아쉽다. 아주 훌륭한 책을 하나 만날 뻔 했는데 한 발 삐끗해서 완전히 틀어져버린 기분이다. 그래서 <생물과 무생물 사이>는 별이 네 개다. 마지막 하나가 논점이 흐려진 값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비싸려나. 
  

 

2008.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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