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업 - 그들은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가
한스 바이스.클라우스 베르너 지음, 손주희 옮김, 이상호 감수 / 프로메테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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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불가능,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아디다스 사의 광고 카피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국적 기업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많은 방법이 있고, 그 방법이 비판받을 시 둘러댈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고, 처벌을 최소한도로 이루어지게 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다. 그래서 다국적 기업에게 불가능이란 아무 것도 아니다.

  <나쁜 기업>은 법과 정의와 도덕이 세상에서 얼마나 개무시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내전과 전쟁에 허덕이는 지역이 대부분 풍푸한 지하자원을 가진 '보물창고'다. 왜 보물창고가 전쟁터로 전락했을까? 독재정부 때문에? 반군 때문에? 그들이 '못살고 의식수준도 낮아서'? 사실은 다국적 기업이 헐값으로 지하자원을 사들이면서, 독재정부와 반군 등과 거래하고 때때로 그들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석유는 검은 황금이라 불린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산유국들은 지지리도 못산다. 왜? 첫째, 전쟁 때문에(전쟁에 관한 다국적기업의 책임은 위와 같다). 둘째, 낡아빠진 송유관을 갈지 않아서 새어나간 원유가 환경을 파괴시켜서. (원유의 무서움은 태안기름유출사건으로 충분히 알 것이라 생각한다)

  21C에 노예가 있다. 식료품을 다루는 다국적기업이 가격을 압박해서. 농장에는 유해한 (공식적으로 유해하다는 판명이 나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들이 살포된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온갖 질환에 시달린다.

  우리가 구입한 브랜드티셔츠 가격의 0.25%만을 노동자들이 임금으로 받는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당을 받고 초과근무를 하며 일한다. 세계의 거대은행과 신자유주의를 수호하는 국제협약과 단체들이 배후에서 이들의 불행한 생황(생계비에 못미치는 최저임금이라던가)를 조장한다.

  실험용 쥐가 있는 것처럼, 의약품을 연구하기 위한 실험용 인간도 있다. 일부는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신약을 처방받고, 신약의 효능을 알기 위해서 일련의 환자들은 아무런 처방도 받지 못한다. 그러면 '일부 지역'의 못사는 나라 사람들만 피해를 입는가? 유럽연합의 대다수 사람들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다국적기업은 각종 로비와 압력을 통해 유전자조작식품을 자유롭게 유통시키려 한다.

  <나쁜 기업>의 마지막 장 '민주주의의 대가로 생긴 이익'을 보면, 다국적 기업으로 인한 피해는 사실상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것 같다.
 

  'Nike, We made you, We will break you!'
  불가능한 것이 없는 다국적 기업에게, 불가능을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소비자다. 소비자의 힘. 나쁜 기업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소비자 뿐. 소비자인 내가 가만히 있으면 세상은 달라지는 게 아무것도 없다. <나쁜 기업>은 그렇게 끝을 맺는다.

  '인간은 선하고 세상은 아름답다.'라는 명제에 홀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사실을 <나쁜 기업>은 친절하게 알려준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과,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알려준다. 한 번 쯤 읽어봐도 좋을 책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책이 더이상 나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나오지 '못하는'이 아니라, 나오지 '않아도 되는'!!)

2008.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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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들의 제국주의 -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3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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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놈들의 제국주의 :
  식민지 경영의 경험도 없고 식민지를 만들어낸 능력도 없으면서, 식민지가 요구되는 제국주의화에서 생존의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는 한국 자본주의를 비유한 말.

  한국 경제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뉴스를 보면 일이 심상찮게 돌아간다는 생각은 들지만, 정확히 어디로 흘러흘러 가는지는 모르겠다. 막연한 불안감만이 있을 뿐이다. 내 생각에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저기가 목적지다!"라고 하면서 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인 우석훈 씨는 우리가 향하고 있는 곳을 <촌놈들의 제국주의>라고 명명한다. 제국주의. 18~19세기에나 있었을 법한 단어가 21세기가 도래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적용되다니. 더구나 파시즘이라던가 쇼비니즘, 혹은 전쟁같은 단어들, 나와 함께 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저 멀리에 있는 단어들이 곁에 있다니. 읽는 내내 머리를 두들겨 때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가고 있는 흐름이 어디를 향하는지- 다시 말해서 촌놈들의 제국주의의 결과가 어떨지, 우석훈씨의 예측대로 일이 모두 흘러가라는 법이 없긴 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석훈 씨의 예측이 근거 없지 않다는 점이다. 
 어디선가 다음과 같은 문구를 읽었다.

  "자본주의는 잉여자본의 위에 세워져 있다. 그래서 제국은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잉여자본을 생산할 식민지를 찾았고, 대공황 후의 미국은 금융이라는 허구적 시장을 통하여 잉여자본을 축적했다. 지금 다시 잉여자본 축적의 위기가 오고 있다."

  <촌놈들의 제국주의>를 읽으며 위의 문구가 계속 떠올랐다. 한국이 '잉여자본의 축적의 위기'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 어떤 대안으로 잉여자본을 계속 쌓으려 할 것인가?

  한국 사회의 기형적 경제 구조와, 얄팍한 사회-문화적인 기반(빈말로라도 우리 사회가 철학적 풍부함 위에 세워져 있다고는 못할 것이다), 강력한 민족주의 등 일련의 흐름을 봤을 때 우리는 제국주의로, 식민지로, 나아가서 동북아 3국의 전쟁으로 향하고 있다.

  기분 좋은 예측은 아니다. 읽으면서 몇 번이고 눈을 돌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 이 책의 논리를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슬프다. 촌놈들의 제국주의. 그것이 유일한 대안인가?

  이 책은 우리가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제시하지 않는다. 하나의 분석과 그에 따른 하나의 담론을 던져줄 뿐이다. 촌놈들의 제국주의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알아라, 네 머리로 생각해라, 움직여라.' 이 세 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내가 발 디디고 있는 것이 어디인지를 아는 것이 시작이다. 그런 점에서 <촌놈들의 제국주의>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한 번 쯤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덧) <촌놈들의 제국주의>의 단점 : 행간이 너무 넓어서 읽기 힘들다.

 

2008.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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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첨론 - 당신이 사랑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 모두에게 써먹고 싶을 128가지 아첨의 아포리즘
윌리스 고스 리기어 외 지음 / 이마고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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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첨은 부정적인 말이다.

* 아첨 : 남의 환심을 사거나 잘 보이려고 알랑거리는 것.

  <아첨론>은 아첨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아첨 : 즉석으로든 준비해서든, 노력한 사람에게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든, 대가를 기대하는 칭찬.

  <아첨론>은 아첨의 긍정적인 면을 주목하는 책이다.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저자는 역사, 인물, 책을 수없이 많이 인용한다. 아첨의 성질, 아첨의 긍정적인 힘, 아첨의 방법 등을 읽어가다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아첨'은 극히 일부분임을 알 수 있다. 금전, 권력만이 아니라 상대의 호감이나 우정을 바라면서 하는 칭찬도 아첨이라고 보면, 아첨은 칭찬과 거의 동급이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아첨을 할 대상은 널려 있다. 나를 뺀 모든 사람에게 아첨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아첨론>에서 말하는 아첨은 하나의 사교술이다. 그래서인지 아첨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정치, 사회, 예술, 연애, 종교.......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다고, 아첨을 받기를 원하니 아첨을 해 줄 수밖에. 수준 높은 아첨은 나의 수준을 높여주고 동시에 삶을 부드럽게 해 준다. (수준 낮은 아첨과 아첨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뒷부분에 적나라하게 나온다).

  <아첨론>의 내용 중에서 특히 2장이 마음에 쏙 들었다.
  '나에게 아첨하라.'
  '나에게 아첨한다'를 세 글자로 줄이면 '자신감'이 된다. 자신감은 모든 일에 동력원이 되는 법, 나에게 아첨해서 나쁠 것이 없지 않은가. 누구에게 돈을 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에게 아첨하는 것에는 보너스도 붙는다. '무슨 말을 들으면 내가 기뻐하는가'를 보면서, 남에게 어떻게 아첨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또한 '누가 나에게 아첨하고 있는가'를 알아챌 수도 있다. 나는 아첨의 실험장이다.

  무척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용이 약간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 있고, 신선한 맛이 부족하다. 아첨을 우리가 생각하는 아첨의 정의에 놓지 않고, 무척 포괄적인 의미로 정의했기 때문에 제목이 '아첨론'이라고 하기엔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엔 '사교론' 정도가 적당하겠다.
 


  덧붙임.

  책이 참 예쁘다. 그런데 여백이 넓고 행간이 너무 떨어져 있어 가독성이 떨어진다. 굳이 순서를 지키면서 읽지 않아도 되는 것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멋대로 뒤적거리며 마음에 드는 부분을 읽어도 되는 게 편해서 좋았다.
 


 2008.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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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 철학.정치 편 - 인간이 남긴 모든 생각
박민영 지음 / 청년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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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를 통과하는 햇빛은 여러가지 색깔로 빛난다. 그 색깔에는 뚜렷한 경계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지개의 색깔이 "빨강-주황-노랑-초록-파랑-남색-보라"라고 한다. 경계가 없는 세계에 경계를 부여하는 것, 그것이 ISM이다.

  나는 나라는 개체로서 세계를 해석하기 때문에 세계는 필연적으로 주관적인 물건으로 대체 된다. ISM은 불완전한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재구축하는 데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ISM은 중요하다. 하지만 ISM- 신자유주의, 매카시즘, 파시즘, 민족주의 등-에 대해 물으면 그 익숙한 용어가 무엇인지 설명할 말을 찾을 사람이 많지 않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볼테르의 말을 인용한다. "만약 나와 논의하고 싶거든 먼저 당신의 용어에 대해 정의를 내려 주시오." - ISM 5p에서

  무언가를 연구하거나 논의하고 싶을 때 제일 처음 필요한 것은 용어의 정의이다. 김춘수 시인의 유명한 시 <꽃>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세상은 수많은 ISM(~주의)이 존재하는데, 대부분은 그 용어를 사용할 뿐 내용이나 역사 그리고 정의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이 책은 ISM의 정의를 시도하는 책이다. 사전 형식으로 ㄱ~ㅎ 순서로 각 ISM이 나열되어 있다. 거기엔 ISM의 단순한 정의 뿐 아니라 사조, 주요 사상가, 시대적 분위기, 사상의 역사, 장점과 단점 등이 들어 있다. 그로 인해 ISM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시선에 충실해서 각 ISM을 바라본다. 서문에서 이미 그렇게 밝히고 있고, 내용에서도 자신의 생각에 충실하다. 객관적인 척하려는 책은 지나치게 딱딱하고 조심스럽다. 따라서 재미가 없다. 게다가 사실은 객관적이지도 않다. 이 글의 처음에 내가 밝혔듯이, 우리는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해석하니까. 단순한 사실의 나열조차도 다분히 주관적이 된다. 이즘은 저자의 ISM에 관한 생각을 드러내는 동시에 나는 이 ISM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단, 이 책은 '인간이 남긴 모든 생각'이라는 부제처럼 난잡하게 모든 ISM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다만 자주 듣는 ISM, 세계의 흐름에 크게 영향을 미친 ISM는  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알아야 할 주요 ISM을 보기 좋게 정리해 놓은 책에 가깝다.

  ISM은 마치 톱니바퀴 같아서 한 ISM의 약점을 다른 ISM이 보완하거나 반격하여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따라서 한 ISM을 설명할 때 필연적으로 다른 ISM들이 거론된다. 모든 ISM을 뒤섞어놓으면 우리가 사는 세계가 되는 것 같다.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있음을, 그러나 모든 인간이 세계를 보는 시선을 합치면 가장 객관적인 세계가 형성됨을 보는 것 같아서 재미있다.

  이 책은 세 번 읽어야 할 것 같다. 저자의 입장을 따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한 번. 저자의 입장에 딴지를 걸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한 번. 각 ISM과 연계되는 ISM 항목들을 따라 왔다갔다거리면서 한 번. 그리고 흥미가 생긴 ISM에 관한 심도있는 책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이즘 : 사회-문화-예술>편이 기대된다.

 
 2008.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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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책 (100쇄 기념판) 웅진 세계그림책 1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허은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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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아이 책은 어른이 보면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이십 년 가까이 어린 애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글이니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명작이란, 세월과 나라를 건너뛰고 나이마저도 사뿐히 무시하는 건가 보다.

  우연히 서점에서 만나게 된 <돼지책>. 어린 조카도 없고 어린 동생도 없고, 이십년의 나이를 뛰어넘어 우정을 키우는 어린 친구는 더더욱 없는 나에게 그림책이란 멀기만 한 존재다. 하지만 <돼지책>은 오히려 다른 수많은 어른용 책들과 섞여있어도 돋보인다.

  '아주 중요한 회사'에 다니는 피곳 씨, '아주 중요한 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 그리고 집에 있는 피곳 부인. 수식어부터 피곳부인의 위치가 어떤지 짐작이 간다. 그녀는 하찮다. 집에 딸린 부속물 취급을 받는다. 피곳 부인이 없어졌을 때에도 세 부자는 "왜 엄마/부인이 없을까?"보다 밥을 줘라고 하면 밥을 주는 사람이 없다는 걸 걱정한다.

  짧은 문장이기에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마지막 장을 덮고, 자동차 수리할 시간도 없었던 피곳 부인을 생각했다. 내 어머니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돼지가 아닐까?" 어머니의 희생이 당연한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의례적인 감사만 표한 건 아닐까.

  가족이라는 테두리로 묶여있다고 마음이 풀어지려 할 때 읽으면 정말 좋은 책이다. 


2011.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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