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탄생 - 세계의 신화와 설화로 풀어본 죽음의 비밀
실비아 쇼프 지음, 임영은 옮김, 요셉 프란츠 틸 감수 / 말글빛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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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에 관한 신화와 설화를 모아놓은 책이다. 아프리카나 이누잇족, 마오리 족, 오세아니아, 브라질 등의 설화 등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이야기인데도 죽음에 관한 생각이나 내용이 비슷해서 재미가 있다. "죽음에 대한 표징"이라고 저자가 죽음에 대해서 설명한 부분도 있는데, 신화도 신화지만 이 부분도 꽤나 재미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덜 정리가 된 듯한' 느낌을 준다. <죽음의 탄생>은 7개 정도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야기들을 나눈 구분도 보호하고 각 장의 이름도 맞지 않는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첫째 장에서는 죽음을 피하고자 하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놓았다. 그런데도 제목이 '인간에게 찾아온 죽음'이다. 각 장의 제목을 보고 안에 실린 설화를 보면 어리둥절해진다. 전체적으로 관련이 없는 듯한 설화(다른 장에 들어가는 게 더 좋을 듯한 이야기)가 섞여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죽음의 탄생>은 정리중인 책장 같다. 책장에 책이 엉망진창으로 섞여서 꽂혔다고 해서, 책들의 가치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책장을 보면서 어리둥절해질 뿐이다. '이게 왜 여기 있지? 조금 난잡한 느낌이 드는데.'

  짧고 쉬운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놓여 있어서 그런 걸까.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죽음의 상징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이런 이야기가 있구나'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꽤나 기대를 하고 본 책이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 더 크게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2008.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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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즐거움 - 삶에 지친 이 시대의 지적 노동자에게 들려주는 앤솔러지
필립 길버트 해머튼 지음, 김욱현 외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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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책을 펴들고, <건강에 대하여> 부분을 읽었다. 잠시 책을 덮고 생각을 하다가, 책 날개에 있는 저자 약력을 보았다. 저자는 1834년에 태어났다. 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글을 읽으면서 왠지 콧수염을 기르고 외알 안경을 쓰고 모자와 지팡이를 꼭 챙겨 다니는 18~19세기 신사가 떠올랐던 게 근거없는 발상이 아니었구나.

  저자가 19세기의 사람이다보니,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로서는 살짝 웃음이 나는 부분이 없잖아 있다. 저자의 진지한 어조가 더 웃음을 짙게 만든다. 자신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신분과 직업, 성별에 대한 편견도 언뜻 드러나 보이고. 딱 19세기에 지적인 삶을 즐길 수 있었던 사람들(아마도 상류층이겠지)은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생활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G.H.해머튼 씨보다 더한 사람도 있고 덜한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를 살아간 저자가 쓴 <지적 즐거움>이 말하고 있는 것은, 21세기에는 지루할 정도로 몸이 배배 꼬이는 점잖은 표현들로 둘러싸여 있다고 할지라도, 21세기에 와 닿는 부분이 있다.

  건강이 없으면 지적인 생활도 즐기지 못한다.
  지적인 삶을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은 공평무사한 태도다.
  지적인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노력이다.
  여러 가지를 배우면 좋지만 여러 가지를 다 잘할 수는 없다. 한 두 가지의 잘하는 것에 전념하라.
  기타 등등.

  저자는 유명한 지적인 인물들을 들어가면서, 지적인 삶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말해준다. 보통 생각하고 있던 '지적인 삶'과 동떨어진 조언도 있다. 만물박사가 될 필요는 없다(잘하는 걸 해라). 술도 때로 필요하다. 지적인 삶만 산다고 책상에 붙어있지 말고 적절한 운동을 해라. 금전은 지적 생활에 중요하다. 여러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설정하고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을 띄고 있는 <지적 즐거움>은, 지적인 삶을 위한 상당히 귀담아 들을 만한 지침을 말하고 있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19세기 영국인의 감성을 적절히 빼고 읽는다면. 나는 그 19세기적 감성이라는 것은 과거에 통용되던 '지적 즐거움'의 영역에 빠뜨릴 수 없다는 느낌이라 꽤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래도 가끔은 감정이 불쑥 치솟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었다. 여성에 대한 부분이라던가 여성에 대한 부분이라던가 여성에 대한 부분과 같은. 과연 19세기엔 여성이 아직 저 정도 위치였지 되새겨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지적 즐거움>은 과거에도 지금에도 통용되는 '지적인 삶을 위한 목록'을 말해준다. 그러면서 과거에 통했던 지적인 삶과 우리가 생각하는 지적인 삶에 적잖이 괴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19세기의 지적인 삶을 위한 권고에서 걸러내고 읽어야 할 부분이 있듯이, 21세기의 <지적 즐거움>을 위해서는 어떤 요소를 더 덧붙여야 하는가 생각하게 한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변치 않는 부분도 많지만, 변하는 부분도 그만큼 많은 것 같다. 그걸 실감할 수 있어서일까, <지적 즐거움>은 꽤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만약 21세기의 사람이 썼다면 이렇게 유쾌하게 읽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히 저 잘났다 말하는 잔소리로 들렸을 테니까. 나와 저자가 생각이 맞지 않는 부분까지도 "당신은 옛날 사람이군요."라거나 "이런 생각은 고리타분해요."라고 농담 지껄이듯이 생각하며 술술 읽어나가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이 책은 마치, 점잖은 할아버지가 난롯가에서 손에 불을 쬐면서 손자 혹은 손녀에게 "이렇게 살면 좋아.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충고하는 느낌이다. 지적인 삶에 대한 조언을 들으면서 19세기의 생활을 함께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2008.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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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중국 고전
양비 엮음, 노은정 옮김 / 천지인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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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전'하면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그리고 두보와 이백, 공자와 맹자- 이 정도밖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나마 두보와 이백의 시는 제대로 본 적도 없고 <논어>와 <맹자>도 귀띔으로 들었을 뿐 제대로 알지 못한다. 참 얄팍하다.

  관심 없는 쪽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편이라 그러려니 다른 책만 뒤적이고 있던 내가 <그림으로 읽는 중국 고전>을 집어든 이유는 간단하다. 문득 들춰본 페이지 속 시 한 수가 너무 마음에 들었던 탓이다.
 

  이몸은 북극성이라,

  천년이라도 움직이지 않는데.

  그대는 태양과 같아,

  아침엔 동쪽 저물녘엔 서쪽에 있구려.

                                                         - 남조 민가 <자야가>

  북극성과 태양에 사랑을 비유한 이 시가 너무 예뻐서, 한동안 잊히지가 않았다. 단지 저 시 한 수 때문에 굳이굳이 <그림으로 읽는 중국 고전>을 빼어든 것이다. 저 시를 다시 한 번 읽고 수첩 한 구석에 베낄 수만 있다면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데 애초에 품은 가벼운 마음이 미안하게도, 이 책이 너무나도 좋았다. 인문 책은 오랜만에 읽는데, 모처럼 좋은 게 걸려서 신이 났다.

  고전이라는 것은 한 때의 재미로 끝나지 않고 오래도록 읽혀서 고전이다. 몰라서 재미없는 것이지 잘 들어보면 지금도 진득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에만 고전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이 것이 왜 고전이 되었는가? <그림으로 읽는 중국 고전>은 짧은 페이지 안에 설득력 있게 고전이 왜 고전인지 전달한다. 그래서, 수많은 중국 고전을 설명하고 때로 인용하고 저자에 관한 뒷이야기도 들려주는 <그림으로 읽는 중국 고전>을 읽다 보면, 절로 중국 고전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시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불쑥불쑥 '이거 원문 보고 싶다'라는 욕망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워낙 많은 걸 다루다보니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지는 못하지만, 슬쩍 맛을 보고 넘어가는 것이 오히려 '고전 읽고 싶다'라는 생각을 부채질한다. 


  쉬엄쉬엄 내키는 페이지 펴 가며 읽다 보니 시간이 훌쩍훌쩍 지나간다. 곁들여져 있는 그림들은 눈을 쉬어가기 좋고, 인용된 시와 문구들은 보석처럼 빛나고, 하여튼 정신없이 읽었다. 다 읽고 난 지금은 무척이나 배가 부른 느낌이다. 더 자세히 설명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 더 설명해도 외려 거치적거릴 뿐 나를 만족시켜줄 것 같진 않다. 애초에 '고전이란~'이라고 맛뵈기로 써 놓은 책이니 궁금하면 원문을 구해 보는 게 가장 좋을 테니까.

2008.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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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를 읽는 기술 - 비즈니스맨과 트렌드세터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트렌드 입문서
헨릭 베일가드 지음, 이진원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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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게 앞으로 유행할 것인가? 경마에서 어느 말이 1등으로 들어올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만큼, 야구게임에서 A팀이 B팀을 몇 점 차로 이길지 예측하는 것만큼  알기 힘들다. 신문과 잡지가 부단히 내 놓은 기사들에서도, 그것이 Fad로 끝날지 Trend가 될지 짐작하긴 쉽지 않다. 

  <트렌드를 읽는 기술>은 "무엇이 어떻게 트렌드가 되는가?"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트렌드가 어떻게 생기고, 받아들여지고, 확산되고, 소멸되는지. 새로운 트렌드가 떠오를 때마다 특정 패턴을 따른다는 것에 착안, 그 '특정 패턴'을 설명한다. "거미가 활발히 집을 지으면 날이 갤 신호다"와 같은 류랄까. 여러 사례들을 훑어보며 일반적 트렌드 모델을 설명하는 식이다.

  다분히 학술적인 내용임에도 딱딱한 느낌이 없는 것은, 사례가 내용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례를 읽는 것만으로 꽤 재미있다.

  유행은 다방면에 걸쳐서 일어나는 만큼 사례도 다방면에 걸쳐있으면 좋겠지만, 다루는 사례는 대체로 '패션'이다. 다른 여러 분야는 트렌드가 생기고 소멸하는 기간이 긴 데다가 변화가 확 눈에 들어오지 않으므로, 유행이라고 하면 즉각 생각나는 '옷'을 주 예로 들어 설명하지 않았나 싶다.

  유행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콱콱 찔러준다는 느낌이 없는 것은 좀 아쉽다. 이 책은 통찰학습이라기보다 관찰학습이다. 하지만, 관찰을 기본으로 한 만큼 탄탄하다. 트렌드에 관한 것을 한데에 묶어 잘 정리해 놓았다. 트렌드를 이해하는 틀을 제공한다는 점이 좋다. 특히 각 장의 마지막에 요약-정리 부분이 따로 있는데, 핵심 내용을 다시 한 번 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책은 트렌드를 읽는 '기술'에 대해 귀띔해 주는 것 뿐이다. 실제로 유행을 알기 위해서는 자료를 모으고 대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그래도 실마리는 주어졌으니 상황은 나아진 걸까?

2008.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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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클레이 셔키 지음, 송연석 옮김 / 갤리온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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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에는 약속장소에 나갔을 때 "나 10분 정도 늦을 거 같아 ㅜㅜ"라는 문자를 심심찮게 받는다. 혹은 그런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약속장소는 Xx역이라고 두루뭉실해졌다. 도착하면 상대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면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일상생활이 되었지만, 1990년대 후반까지도 잘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핸드폰이 없었던 그 때는,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있지 않고는 상대를 만날 수 없었다. 한 사람이 늦거나 장소를 잘못 알고 있으면 서로 답답함에 가슴을 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엔 없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모호한 약속장소와 모호한 약속시간이 통하기 시작했다. 뭔가가 변한 것이다.

  십 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본다면, 십 년 전에는 혀를 내둘렀을 일들이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이런 변화는 '여기 넘어가면 저기~'라는 식으로 명확한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언제부터 무엇이 바뀌었는지 알아채기 쉽지 않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는 웹 2.0 시대에 벌어진 변화를 찬찬히 살펴보고 설명한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왔을 때 무엇이 변했을까?

  저자는 이바나의 핸드폰 찾기에서부터 벨로루시의 정치적 플래시 몹, 위키티피아와 리눅스의 성공까지 다방면의 예를 들어보이고, 전혀 달라보이는 것들 사이에 어떠한 공통점이 있는가, 그리고 사회의 시스템이 어떤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가를 알려준다.

  '조직의 규모가 커지는 것보다 빠르게 조직의 관리비용이 증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힘들었고, 단체 행동에는 여러가지 장애물이 있었다. 따라서, 한 뉴요커의 핸드폰을 되찾기 위해서 수많은 대중이 집단적으로 협력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났다'.

  예전에 소통의 방식엔 두 종류가 있었다. 1대 1 방식(전화기)과 1대 다수 방식(라디오나 TV)가 그것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새로운 도구들(블로그 등)이 등장하면서 다수 대 다수의 소통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사자생(손으로 글씨를 베껴 책을 만드는 사람)의 역할을 인쇄기가 대신하면서 일어났던 변화만큼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회 구조는 같은 선상에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차원으로 올라섰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는 현대 사회를 분석하고, 깊이있는 통찰을 제공하면서도 어렵지가 않다.

  다양한 사례-그중 대다수는 내가 보고 겪은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반적인 것이다-를 들면서 우리에게 변화를 알려주고 그 변화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변화를 일으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책을 만드는 일이 사자생에게서 인쇄기로 넘어갔을 때 일어났던 혼란스런 사회와 엄청난 변화처럼, 우리 사회가 새롭게 포맷되는 과정임을 알려주고 이것이 '일시적인'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의 구조를 슬쩍 들여다보면서, 내가 있는 위치와 가능성을 가늠해 보게 한다. 내가 쥐고 있는 것이, 너무 익숙해서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실은 굉장히 특별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2008.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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