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적 즐거움 - 삶에 지친 이 시대의 지적 노동자에게 들려주는 앤솔러지
필립 길버트 해머튼 지음, 김욱현 외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처음에 책을 펴들고, <건강에 대하여> 부분을 읽었다. 잠시 책을 덮고 생각을 하다가, 책 날개에 있는 저자 약력을 보았다. 저자는 1834년에 태어났다. 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글을 읽으면서 왠지 콧수염을 기르고 외알 안경을 쓰고 모자와 지팡이를 꼭 챙겨 다니는 18~19세기 신사가 떠올랐던 게 근거없는 발상이 아니었구나.
저자가 19세기의 사람이다보니,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로서는 살짝 웃음이 나는 부분이 없잖아 있다. 저자의 진지한 어조가 더 웃음을 짙게 만든다. 자신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신분과 직업, 성별에 대한 편견도 언뜻 드러나 보이고. 딱 19세기에 지적인 삶을 즐길 수 있었던 사람들(아마도 상류층이겠지)은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생활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G.H.해머튼 씨보다 더한 사람도 있고 덜한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를 살아간 저자가 쓴 <지적 즐거움>이 말하고 있는 것은, 21세기에는 지루할 정도로 몸이 배배 꼬이는 점잖은 표현들로 둘러싸여 있다고 할지라도, 21세기에 와 닿는 부분이 있다.
건강이 없으면 지적인 생활도 즐기지 못한다.
지적인 삶을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은 공평무사한 태도다.
지적인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노력이다.
여러 가지를 배우면 좋지만 여러 가지를 다 잘할 수는 없다. 한 두 가지의 잘하는 것에 전념하라.
기타 등등.
저자는 유명한 지적인 인물들을 들어가면서, 지적인 삶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말해준다. 보통 생각하고 있던 '지적인 삶'과 동떨어진 조언도 있다. 만물박사가 될 필요는 없다(잘하는 걸 해라). 술도 때로 필요하다. 지적인 삶만 산다고 책상에 붙어있지 말고 적절한 운동을 해라. 금전은 지적 생활에 중요하다. 여러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설정하고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을 띄고 있는 <지적 즐거움>은, 지적인 삶을 위한 상당히 귀담아 들을 만한 지침을 말하고 있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19세기 영국인의 감성을 적절히 빼고 읽는다면. 나는 그 19세기적 감성이라는 것은 과거에 통용되던 '지적 즐거움'의 영역에 빠뜨릴 수 없다는 느낌이라 꽤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래도 가끔은 감정이 불쑥 치솟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었다. 여성에 대한 부분이라던가 여성에 대한 부분이라던가 여성에 대한 부분과 같은. 과연 19세기엔 여성이 아직 저 정도 위치였지 되새겨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지적 즐거움>은 과거에도 지금에도 통용되는 '지적인 삶을 위한 목록'을 말해준다. 그러면서 과거에 통했던 지적인 삶과 우리가 생각하는 지적인 삶에 적잖이 괴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19세기의 지적인 삶을 위한 권고에서 걸러내고 읽어야 할 부분이 있듯이, 21세기의 <지적 즐거움>을 위해서는 어떤 요소를 더 덧붙여야 하는가 생각하게 한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변치 않는 부분도 많지만, 변하는 부분도 그만큼 많은 것 같다. 그걸 실감할 수 있어서일까, <지적 즐거움>은 꽤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만약 21세기의 사람이 썼다면 이렇게 유쾌하게 읽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히 저 잘났다 말하는 잔소리로 들렸을 테니까. 나와 저자가 생각이 맞지 않는 부분까지도 "당신은 옛날 사람이군요."라거나 "이런 생각은 고리타분해요."라고 농담 지껄이듯이 생각하며 술술 읽어나가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이 책은 마치, 점잖은 할아버지가 난롯가에서 손에 불을 쬐면서 손자 혹은 손녀에게 "이렇게 살면 좋아.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충고하는 느낌이다. 지적인 삶에 대한 조언을 들으면서 19세기의 생활을 함께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2008.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