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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세계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곤충들의 비밀스러운 삶
조지 맥개빈 지음, 이한음 옮김 / 알레 / 2024년 12월
평점 :
어릴적 우리집 뒷산에는 늦여름쯤 되면 잠자리들이 수없이 날아다녔다. 집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그 풍경은 꽤나 장관이었고, 방학때는 직접 잠자리채를 들고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왜 잡으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포켓몬스터를 잡으러 틀어박히기 전에는 진짜 잠자리를 잡고 놀았었다. 종류도 한 가지가 아니었고, 날개 끝과 꼬리에 적갈색 빛이 도는 고추잠자리가 예뻤던 기억이 난다. 잠자리채로 내려쳤다가 머리가 없는 몸통만 잡힌다거나 날개가 짖이겨진다거나 하는 일도 잦았지만 사실 작은 미안함 외에 별 생각은 없었다. 몇마리 사라져도 아무런 티가 안날 정도로 잠자리는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집 뒷산은 여전히 건재하고 그때보다 오히려 더 울창해졌다. 시에서 산을 매입하여 일부는 숲이 있는 공원으로 조성하여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릴때는 매년 뒷산을 가득 채웠던 잠자리가 이제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가 크는 동안 점점 줄어들더니만 언제부턴가는 우리동네에서 그 자취를 완전히 감춰버렸다. 이제는 여름이 되어도 더 이상 잠자리가 날아다니지 않는 동네가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동네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잠자리를 본 게 꽤나 오래된 것 같다. 그리고 더 생각해보니 잠자리뿐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심지어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고 한다.
곤충학자이자 BBC다큐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유명해진 조지 맥개빈의 <숨겨진 세계>는 작가가 사랑하는 곤충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그것이 현재 우리가 상상하는 속도 이상으로 파괴되고 사라져가고 있음을 외친다. BBC에서 다큐를 만들면서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아는 곤충들의 놀라움을 이야기하는 이 책을 읽다보면 머리속에 저절로 다큐멘터리 영상이 떠오르고 귀에 그를 해설하는 재치있는 성우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곤충들이 비행하는 메커니즘만 해도 아직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며, 소형 비행체 개발에 응용하기 위해 꾸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을 정도로 곤충은 여전히 인간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세계 속에 사는 놀라운 존재들이다.
조지 맥개빈이 이 책을 쓴 이유, 그리고 TV의 진행자가 된 이유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곤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함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곤충이 너무도 빠르게 멸종되어 가고 있음을 알리는데 있다. 전체 곤충의 40% 이상이 현재 이미 멸종위기라고 할 정도로 현실이 심각하다. 전세계 곤충은 생태계 서클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이들이 빠지면 작은 효과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지구환경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한다. 환경 파괴 문제는 우리가 하루이틀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곤충들의 다양성 감소 문제는 다른 환경문제가 이슈되어온 것에 비해서 훨씬 덜 알려졌고, 동시에 훨씬 더 심각하다고 한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다른 곤충들이 다 멸종하고 모기와 바퀴벌레 처럼 도시에 적응한 일부 해충만 남는다고 생각해보자. 정말 끔찍하다. 생물다양성의 파괴는 돌고돌아 극단적인 결과로 다가올 것이다.
열대우림은 본래 지구 육지의 12% 정도였으나, 지난 100년 사이에, 그것도 최근 몇십년동안 급격히 파괴되어 6%미만이 남았다. 그리고 갈수록 더 빠르게 파괴되는 중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이를 가리켜 요리를 하겠다고 르네상스 그림을 불에 태우는 격이라고 말했다고 하지만, 복제라도 가능한 그림에 비해 생태계와 멸종종은 대체품으로도 복원이 안된다. 그런데 자연이 파괴되는 것은 결국 그것을 자재 삼아 돈을 버는 인간의 행태에서 비롯된다. 애초에 성경에 '자손을 낳고 이 땅을 정복하라'는 식의 구절을 적어두고 환경을 그저 이용대상으로 선점하는데 열을 올렸으며, 자연에 어울려 살고 있는 이들은 야만인 취급하며 유린해 온 서구사회가 이제와서 자신들의 자원으로 먹고 살겠다는 열대지방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다. 생각할수록 환경파괴문제는 뚜렷한 대안이 없이 무너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바라만 보아야 하는 문제로 느껴지지만, 그래도 문제의식이라도 바로 갖고있는지의 차이가 언젠가 조금이나마 나은 미래를 만드는데 공헌할 것만은 분명하다.
*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