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미의 수학 콘서트
박경미 지음 / 동아시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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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국내에서도 과학교양서가 관심을 끌었었다. 박경미의 '수학콘서트'는 수학에 재미를 주는 교양서로 출간되었었다. 이번에 읽으며 외국계 비슷한 책과 비교해보니, 좀 더 일반교양서에 가까워 보였다.


수학도 범위가 넓어 책 하나에서 다루기에는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정도를 타겟으로 잡았다는데, 몇몇 세부적인 것은 나름 어렵게 들어갔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수학책이라기 보다는 재미난 여행기 느낌이 났다. 숫자가 적고 말이 많았다. 나는 그것이 수학책으로는 별로라고 생각되었다.

수학도 하나의 언어이기에 숫자 언어를 설명해주어야 하는데, 그냥 수학 에피소드의 변두리를 돌아다닌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어떤 곳은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다루어서 적응이 안되었다. 불필요해 보였다.


이 책은 수학 전반을 다룬 것이 아니어서 수학에 대해 배웠다는 느낌이 안들었다.
적어도 어떤 분야를 다루는지는 알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또한 그냥 테마별로 그때그때 마다 글의 성격이 달랐다. 책이 하나의 이야기 안에 있었으면 좋았을것 같다. 책이 출간될 때는 블로그가 활성화 안되었을텐데, 마치 블로그에 올린 유사한 글들을 모아서 편집된 책 같았다.


이러한 지적질에도 불구하고 중고등학생이 수학의 흥미를 위해 재미삼아 읽기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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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즐거움 - 21세기 인문학의 재창조를 위하여
커트 스펠마이어 지음, 정연희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열면서, 내용도 어렵고 재미도 없다고 느껴졌다. 이 두가지는 이 책 "인문학의 즐거움"에서 주장하는 바와 연결지을때, 저자 자신의 의견에 묘한 이질감을 준다. 목표하는 바와 달리 이 책의 내용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저자는 자신과 같은 인문학자와 전문가를 대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총 2부이며 각 부마다 5장씩 구성되어있다. 책의 내용은 저자가 각 부의 앞에 요약해 놓았다.

1부는 '현대로 오면서 지식이 계층을 만들고 전문가가 생기고 있다. 인문학도 의학, 법학, 과학과 같이 전문화가 되었다.'가 요점이다.

2부에서는 '인문학은 인간 경험보다 텍스트에 몰두하며, 인문학은 특권을 얻는 대신 고립화되었다. 인문학은 삶의 예술, 경험의 예술이 되야한다. 세상과 연관된 인문학이 되어야한다. 인문학자들은 스스로 닫은 문을 열고 나와야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알라딘의 유명한 리뷰어는 '읽을만하고 번역도 양호하다'라고 했는데, 내 수준에서는 바로 이 두가지 의심이 계속 들었었다. 처음에 번역이 엉망인가 의심했지만 계속 읽어가다보니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원문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영어 원서 제목이 "Art of Living"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인문학적 내용이 삶에 실제적 영향을 주어야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제목에 'Art'라는 단어가 들어간 전형적 미국대중서의 형태와 달리 내용은 동료 전문가를 향해 반성을 촉구하는 형태였다. 따라서 내용이 어렵다.

전문가와 일반인의 분리가 문학, 역사,철학 등의 인문학을 전문가 집단 만이 할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책의 전개는 스스로 전문가를 자처하며 이러한 철학적 사고는 인문학자만이 할수 있다는 투의 아우라를 강하게 내뿜었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과 동일하게 나도 그러한 철학적 사고를 일반인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점점 분리가 되고 어려워진다. 어쩌면 지금 쓰는 이 리뷰 자체도 사고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인문학의 즐거움"을 쉽게 읽을 수 있을까? 논리 전개의 근간 자체가 커다란 오류에 빠져 있는것 같아 아쉽다. 그걸 이해하고 읽어야한다.


***

근래 인문학이 대중의 인기를 끄는 이유가 뭘까?

지식이 힘인 시대에 학교 교육의 승리자가 또다른 단계의 승리의 발판을 가지기 위함이 아닐까. 심지어 어린 학생 때부터 학교 교육 이상으로 지식의 힘 혹은 권력을 가지려는 것이 아닐까.


***

비록 어렵고 읽기 힘들지만 여러가지 생각할만한 것을 주기에 읽기에 도전할만 하다. 더구나 내 개인적 생각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내용이 많았다. 읽으며 표시한 부분도 매우 많았다. 그중 아주 조금만 아래에 발췌해본다.

"[과학] 한동안 인문학은 과학의 방법론을 모방함으로써 과학의 경쟁자가 되려고 했으나 내 생각에 이 전략은 실패한 것 같다. ···· 미래의 인문학 교육은 실제 과학의 지식을 상당 부분 포함시켜야 할 것이며,
[예술] 동시에 인문학은 오래 유기되어 있던 그 뿌리를 예술에서 재발견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예술은 비평적 연구나 문화 소비의 대상으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실질적인 예술 창작을 말한다."

"인문학의 민주화와 그것을 모두에게 접근 가능한 삶의 예술로 변형시키는 일은 우리 스스로 비평과 비판이 우리가 바라는 변화에 이르는 최고의 길이라는 망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때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포스트모던 사회는 결국 신념보다는 즐거움을, 믿음보다는 미사여구를, 깊이보다는 표면을, 경험보다는 텍스트를, 개인적 양심보다는 대중의견을, 시민연대의식보다는 전문적 유대관계를 더 우위에 두는 사회인 것이다. 인문학에 종사하는 학자들은 스스로를 변화의 주체라고 생각하지만 변화 그 자체가 이미 강자의 도구이자 무기가 되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인문학이 비평의 관행에서 돌아선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다행히 그 대안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해석 interpretation'이다. 해석하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그림을 이용하여 보거나 시를 이용하여 우리 자신의 예술창작에 참여하는 것은 그 행위들을 통하여 선택적 친화의 가능성, 우리와 세상 혹은 우리와 타인과의 비강제적 관계들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는 것인데, 이것은 실제로 사랑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이 책은 문학, 역사, 철학을 매운 사고력으로 버무린 비빔밥 같은 책이다.
책을 닫으면서, 충분히 읽을만하고 생각의 재미를 주는 책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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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133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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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저자는 역사를 사실의 나열로만 보는 역사가들을 강력히 비판한다. 역사가가 개입해야 역사에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무슨 말도 안되는 논리인가 생각했었다. 다만 첫번째 강연(1장)의 끝부분에 가면 이와 반대 경우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과 상관없이 자신의 주관만으로 역사를 쓰는 역사가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역사가는 '사실의 해석'과 '사실의 선택 및 정돈'의 사이의 상호작용을 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 없는 대화"라고 마무리 하고 있다.

***

1장의 앞부분에서 사실의 정리를 강조하는 역사가를 비판하는 부분을 읽으며 나는 다음과 같은 메모를 했었다. 그중 일부를 가져와 본다.

[메모의 일부]
   '사실은 역사가가 이야기할 때만 이야기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 못한다. (저자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은 역사가가 의미를 부여해야만 역사가 된다'라는 의미.) 이 주장이 성립하는 경우는 사건/역사에 관한 모든 사실들이 드러나고 정리되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모든 것을 알아야만 역사가가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반대로 역사 조작의 경우를 살펴보자. 모든 사실이 있는데 어떻게 조작하나? 그들은 사실을 숨겨서 조작하지 사실에서 골라내어 주장할 수는 없다, 즉 역사를 만들 수는 없다. 사실을 숨겨서 문제가 되는 임의적 조작의 경우를 제외하고, 역사에 있어서는 사실이 부족해서 문제이지 많은 사실에서 고른다는 말은 타당성이 없다.

   사건에 대한 사실들이 쌓일수록 중요한 사실이 역사로 떠오를 것이다. 역사가가 사실 중에서 주요한 것을 고른다면 역사는 부정확해 질 것이다. 즉 역사가의 역할을 강조하게 되면 정확하고 정밀한 측정의 중요성을 간과하게되고 역사가의 철학적 배경이 중요해진다. 결국 인간은 다양하고 믿지 못하므로 역사도 불확실해질 것이다.
[메모 끝]


아직 1장을 읽던 중 적은 것이니, 책의 내용을 오해했음에 분명하다. 저자는 위에서 내가 비판한 역사가(자신의 주관으로 역사를 조작한 사람)들을 사실만 나열하는 역사가 만큼이나 나쁘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가의 주관을 더 강조하는 입장이 아닐까?

역사적 사실이 드러나 있으면 그 사실의 경중을 보는 것은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결말은 하나이다. 측정상 불확실성은 사실을 흔들기는 하지만 사실이 거기 없도록 만들지는 못한다. 측정을 하는 순간 데이터도 영향을 받기에 완전한 진실은 측정이 없을때만 존재한다. 결국 측정의 한계가 문제이다.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모으고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렇기에 역사가가 일반화라든가 선택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잘 모를 뿐,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저자는 과학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완전하고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데이터의 분석은 결국 측정자(역사가)의 몫임을 이해한다. 이는 다른 학문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모든 사실들을 다 측정하여 자동 분류하는 시스템이 있어야만 역사가의 판단 없이 사실에서 역사를 추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 하다. 그렇기에 역사학자가 사실들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삭제해야만 하는 것도 이해한다.

다만 과거와 현재의 대화 중에서 과거가 스스로 말하도록 하는 것이 더 우선이 아닐까 생각된다. 역사가의 판단은 쉽게 자신의 정치, 사회적 주장을 늘어놓는 근거로서 역사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

근대사에서 특정 역사학자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실들을 빼는 현상도 왜 발생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역사의 데이터를 조작하고 순서를 뒤집어 편집하는 자들이야말로 가장 반사회 범죄자이리라.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그런 판단의 순간에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역사를 조작하여 사고를 조정하려는 시도를 막아내는 능력을 키우는데 있다고 생각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뒤흔들기 위한 시도를 막는 능력은 사실에 기반한 올바른 역사인식에 바탕을 두어야 있다.

역사는 측정상 한계와 분석상 조건설정(선택)의 문제가 동시에 존재하는 매력적인 학문이다. 심지어는 분석할 때 고의적 조작/삭제까지 가능하다.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이지만.) 인간이 분석을 하기 위해선 사실의 삭제가 필수적이므로 이를 빌미로 악의적 정치적 투쟁과 선동의 수단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학자라면 일정 높이 이하의 데이터만 지워야한다(smoothing & leveling). 피크에 위치한 데이터도 그것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못한다고 지운다면 역사학자가 아니라 도둑이자 강도이다.


***

저자는 역사를 당시 세워지던 현대 철학에 기대어 재설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인식이 맞다고 누가 보장하나. 내일이라도 현재 인식체계와 전혀 다른 주장이 나온다면? 이 책의 내용은 상당 부분 역사 일반에 대한 것이라 이부분에 대해서는 맞다고 봐야 하겠지만, 저자의 주장이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대개가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며 바램일 뿐이다. 생각 외로 낡은 책이었다.


***

객관적인 역사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이러한 어쩌면 기본이 되어야 하는 일이 역사기술에서 안되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역사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일관된 연관성을 확립할 때에야만 의미와 객관성을 가지게 된다"라고 과거와 현재 사이만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까지 연결해서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객관적인 역사가는 첫째로 사회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제한된 시야를 넘어서야 하며, 둘째로 자신의 시야를 미래에 투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그래야 과거에 대해서도 더 깊은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주장에 깊이 공감하지만, 이는 내가 앞에서 언급한 자동화된 컴퓨터 같다는 느낌을 준다. 아니 그 컴퓨터가 사실의 완벽한 수집만이 아니라 적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인간이 그런 식으로 모든 데이터를 처리하긴 힘들고, 따라서 역사가가 단순화/상징화를 통해 역사를 기술해야 하게되어 오류와 한계가 남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역사가의 판단을 강조하는 저자의 주장은 사실의 판단에 주관적 입장이 개입할 여지를 더 크게 남겨주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 대표적 사례의 결과는 악의적 정치선동이다.

이러한 질문을 예상한 저자는 두 가지로 답변하고 있다.
첫째로,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있기에 긍정적 측면으로 치료하면 된다고 한다.
"치료방법은 비합리주의를 숭배하거나 근대사회에서의 이성의 확대된 역할을 부인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점점 더 철두철미하게 의식해야 한다는 데에 있다."라는 저자의 주장은 "기술과학 혁명이 사회 모든 수준에서 이성의 활용을 증대시키라고 강요되고 있는 시대"에도 여전히 "유토피아적인 꿈"이라고 생각된다.

둘째로, 세계의 모습이 변하고 있는데 이는 '이성의 확대'라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6장의 제목인 '지평선의 확대'를 의미할 것이다. 이에 대한 예로서 저자는 겨우 200년 전부터 서구 선진국가에서 일반 인민에게 사회/정치/역사의식이 들어갔으며, 서구 이외의 나라에게도 이제야 퍼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주장에 동양적 사고를 절대로 가지지 않은 나에게도 이상하게 보인다. 아마도 현대 대부분의 사람에겐 세월 지난 인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로 뒤에선 서구 이외를 대수롭지 않고 보는 당시 영국 교육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앞 논리의 허구성을 스스로 알고 보완하기 위함인가?)

서구에서 다른 세계로 퍼진 것은 인류 역사의 한가지 혹은 두세가지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일 것이다. 인간 세계를 구성하는 인자들은 너무나 많다. 주요한 인자를 선택하는 것도 작의적 선택의 몫일 뿐이다. 여러 변수 중에서 몇몇이 세계를 크게 바꾼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서구에서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내가 현재 처한 시대상황에서의 주관적 판단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역사에서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저자가 마지막에 인용한 "그래도 --- 그것은 움직인다"라는 갈릴레이의 대답이다. 과거의 역사를 공부함으로서, 우리는 현재 사회에서 역사가 선동적 정치의 수단이 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사의 수호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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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시간 속으로 루브르 만화 컬렉션 3
에릭 리베르주 지음, 정연복 옮김 / 열화당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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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 시선을 따르는 미지의 시간에 대한 책이다.

'루브르 만화 컬렉션' 중에서 에릭 리베르주의 '미지의 시간 속으로'는

관객의 시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만화는 '루브르 만화 컬렉션'의 앞의 두 만화에 비해 충격적이었다.

 

주인공 바스티앵은 청각장애인인 학생이다.

그는 박물관의 비밀스러운 직책을 물려 받으려 하는데,

바로 박물관에서 예술품들을 돌보는 업무이다.

 예술품을 돌보는 업무 중에 발생하는 시간의 왜곡은

예술품을 바라보는 순간에 발생하는 시간의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예술품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품을 진정으로 감상하고 있었다.

예술품이 내는 리듬과 공명하고 있었다.

머리의 평론이 아닌 몸의 감각으로.


 "예술작품이란 아이와 같은 존재야.

자네가 작품 앞에 서서 진심으로 찬미하면

자네와 작품 사이에는 특별한 교류가 형성된다네"

 

아, 미술품 보러 박물관에 가고 싶다.

커다란 캔버스 아래에 서서 바라보는 그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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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 부동산 경매 따라잡기 - 불황기 짭짤한 재테크
이재범(핑크팬더) 지음 / 물병자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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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부동산 경매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경제 관련 서적들을 읽던 중에 한권 읽었을 뿐이다. 지금도 부동산 경매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이 책을 읽은 것은 부동산 경매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일반인 관점에서 부동산 경매를 알 수 있을 듯 해서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를 일반인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블로거로 활동하는 저자가 일반적 독자의 관점에서 경매를 이해하도록 글을 쓰리라 생각되었다. 이는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으며 이후 내용에서도 증명되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매우 재미나게 마치 소설을 읽듯이 경매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그러한 이야기 사이사이에 전문적, 법률적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각 장의 끝에서는 경제 관련 칼럼으로 투자에 대한 인식과 방향까지 제공하고 있다.


부동산 경매에 관심이 없다고 해서 그런 분야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경매를 하기 위해서 다녀야 하는 발품과 돈에 관련된 복잡한 처리와 나중에 생기는 여러 법적인 문제들이 있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단순히 책으로 알기가 힘들다. 실제로 법원에 다녀보며 겪어봐야 알 수 있는 실무적 일이다. 그런 면에서 책을 읽으면서 부동산 경매에 대해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소설적 이야기 전개가 읽는데 재미를 주면서 지식을 쌓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얼핏 알던 부분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거시적 경제와 역사를 좋아했지 실제적 살림 경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싶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생각 외로 신경 쓸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런 복잡한 경제적, 법적인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이 책을 읽은 것이 도움이 되었다.

 

더구나 밤 늦게 소설처럼 계속 읽은 것은 정말로 조금 황당한 일이었다. 짧은 시간 집중해서 독서를 하는 편인데, 이 책은 처음 선입견과 달리 아주 재미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큰 장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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