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에 이르는 길 1 - 우주의 법칙으로 인도하는 완벽한 안내서
로저 펜로즈 지음, 박병철 옮김 / 승산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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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 특히 현대 물리에 대해 일반인들에게 이해될 수 있도록 들려줄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책으로 알았다. 처음에 철학적인 내용으로 시작된 책은 결국 수학으로 침몰하였다. 1권의 2/3 까지가 수학, 이루는 물리에 대한 것이었는데, 쉽게 수학을 설명하지 못하고 점점 이해하기 어려운 지경에 빠졌다.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있는 부분을 이 책으로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이는 책의 목적과 완전히 배치될텐데, 책은 물리, 수학 전공자만 이해할 수준이고 전혀 추천할만 하지 못하다. 어쩌면 이는 처음부터 무리한 기대일 것이다. 과학을 일반적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과학의 근본에서 무리가 있다. 수학이라는 순수한 언어로 수학과 과학의 설명이 가능하다.

 

 이 책은 제목부터 도입 장까지 은유적이다. '실체'와 '길' 이라니, 이들은 대표적인 시적 언어, 혹은 시 그 자체이다. 즉 은유로 시작된 책은 곧 과학을 설명하는 부분에 이르러 시의 반대에 있는 다른 순수한 언어인 수학으로 변한다. 아마도 저자의 역량의 한계에 기인한 것이리라. 처음부터 그런 수준의 책을 기대한 것이 잘못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과연 실체를 이루는 것이 수학인가? 그 작동원리를 설명하기에는 수학이 편하겠지만 실체를 만들어 낸 것은 은유이다. 세상은 말로 창조되었는데 그 말은 단지 '있으라'라는 것으로 은유에 가까운 성질의 말이다. 하지만 그 구성원리와 동작은 수학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의 존재 이유일텐데, 이 책의 내용을 아는 사람에게만 도움되는, 수학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도움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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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20-10-29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나가다 서평을 보고 댓글을 남깁니다. 한국어의 ‘실체‘란 영어의 ‘substance‘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해당 개념은 철학에서 발전되었으며 시와는 별로 상관이 없으며, 은유적인 말 또한 아닙니다. 예컨대 원자설을 지지한 철학자들은 실체를 원자와 동일시했으며, 원자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가장 작은 구성 단위로 정의됩니다. 이런 세계 이해는 그다지 시적이지도 은유적이지도 않습니다. ‘실체에 이른다‘는 말은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에 이른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학의 언어로 존재자를 탐구하는 이론물리학은 실체에 관해 탐구하는 탁월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이론물리학의 주장들이 참이라, 세계가 수학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어서, 이론물리학이 탁월한 방법인 것이 아니라 탐구의 도구로서 이론물리학이 가장 잘 정립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다양한 주장들의 상대적 타당성을 비교하고, 틀린 주장일 경우 왜 틀렸는지를 밝혀낼 수 있는 여러 증명도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댓글의 요지는 실체라는 개념에 대한 글쓴 분의 이해에 오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지적이 불쾌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생산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이 좋아요를 받는 것보다 블로그하는 보람이 더 클 것 같아 굳이 남기고 갑니다.

만약 실체 개념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시다면, 아래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의 항목을 보시면 좋습니다. https://plato.stanford.edu/entries/substance/

두산 백과 사전의 ‘실체‘ 행목은 내용이 너무 빈약하지만 해당 개념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일별할 수 있습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19560&cid=40942&categoryId=31500

veritas 2022-11-09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명쾌하고 좋은 글이네요. 은유니 뭐니 이상한 말씀하시길래 찜찜했는데 가려운 데를 시원하게 긁어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