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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지음, 한성례 옮김 / 부엔리브로 / 2007년 9월
평점 :
시오노 나나미의 재미있는 로마 역사책은 상당히 많은 사람이 있은 책이다. 나는 10권까지 읽고 더 이상 읽지 않았었다. 사실 6권까지 재미있고 그 후는 재미없다. 이 책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는 그런 시리즈의 내용을 요약하고 정리한 느낌이었다. 특히 서론 챕터와 함께 내가 언급한 6권까지의 내용의 요약과 마무리 의견 챕터까지 모두 3개 부분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왜 아우구스투스 이후의 이야기가 재미없을까 잘 몰랐었다. 이번에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으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로마의 이야기는 참으로 매력적인 부분이 많다. 역경과 이의 극복은 매우 매력있는 주제이다. 스키피오와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수는 정말로 읽을 수록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주는 사람들이다. 그런 매력적 스토리를 배경으로 시오노 사사미의 연작들은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몇권 읽다보면 나중에는 의무감으로 읽게 될 정도로 무언가 크게 얻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런 면에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았을 때 아무런 망설임 없이 집어들 수 있었다. 전체 구성은 기존에 읽었던 시리즈의 내용에 앞뒤로 서론과 결론이 있어서 읽기에 좋았다. 다만 이 책을 통해 시오노 나나미를 처음으로 읽는 독자에게는 좀 붕 뜨는 느낌 혹은 뭔가 격리된 느낌이 있을지 모르겠다. 즉 "로마인 이야기" 연작을 읽고 이 책을 읽으면 더 좋으리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반대로 기존 독자에게는 크게 새로울 내용이 없다. 새로운 재미는 별로 없다는 의미이다. 또한 이야기가 풍성한 원작을 요약한 것이라 밋밋한 면이 많다. 이러한 장단점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책을 다시 되집어 보았기에 만족한다. 그만큼 저자의 원작 시리즈의 6권까지는 매우 흥미진진했다. 그러면 왜 아우구스투스 이후의 이야기는 재미가 없을까. 10권에서 도로와 인프라에 대한 내용을 읽은 후에는 아예 그만 읽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7~9권은 재미 없었다. 9권 '현제의 세기'가 조금 나았을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 역사관을 이해 못하겠다. 아니 동감 못하겠다. 연작 시리즈를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의견이 표출된 책을 읽으니 아주 명확하게 그녀의 주장을 알 수 있었다. 그게 별로 특이하거나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근본적으로 로마를 찬양하는 생각과 제정으로 이관된 이후의 역사를 평가하는 부분에 문제가 있다. 로마 역사에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골라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근본적으로 로마는 좋은 면만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훌륭한 역사다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어 보였다. 물론 이는 내가 좀 극단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있지만 저자의 문장 사이사이에서 아주 존경을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과연 로마인들은 그렇게 훌륭한가?
사람 사는 것은 다 같다. 언제나 훌륭한 제도와 사람은 악한 제도와 사람과 충돌하며 반복된다. 그동안 얼마나 좋은 의지를 끝까지 유지하느냐가 좋은 결말로 이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역사책을 읽으며 느낀 것이었다. 시오노 사사미의 의견처럼 로마인들이 가진 근본적 장점 때문에 계속 좋은 길로만 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고 나쁘고의 구분이 힘든 상황에서 언제나 사람들은 좋은 것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런 시도가 실패로 끝나기 하고 성공하기도 한다. 마치 로마 건국 초기의 정신이 조금씩 바뀌며 계속 좋은 길로 갔다는 저자의 의견은 그냥 찬양과 경배 수준이다.
이는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전환에 대한 의견차이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저자는 서구의 다른 역사학자들이 제정 이후에 로마가 쇠퇴의 길로 갔다는 의견과 달리 제정으로 전환이 시대의 흐름에 필수적인 것이라 주장한다. 어쩌면 카이사르 앞 시기를 '승자의 혼미'라고 정의한 부분부터 의문이 든다. 제정으로 전환은 방대해진 국가의 헛점을 파고들어 카이사르가 새로운 체제를 도입한 것이지 그것이 정답이라고 볼 수 만은 없다. 어떤 체제 전환적 사고를 바탕으로 제정으로 바꾸었다는 저자의 주장은 과도하다.
사람은 살기위해 노력하다가 뜻밖의 결과를 얻게 된다. 카이사르는 그의 인생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 뿐이다. 아우구스투스도 황제가 되기 위해 오랜시간 교묘하게 공화정을 연출한 것일까. 어쩌면 그들이 생각한 체제는 우리가 굳이 공화정과 제정으로 구분할만큼 명확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제정으로의 전환'이라는 사고개념 자체가 현대의 판단방식일 것이라 확신한다. 더구나 개혁을 위한 의도적인 체재전환이라고 보기 힘들지 않을까. 로마인은 좋은 길로 가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을 뿐이다.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가기도 하지만 나쁜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그렇기에 제정으로 바뀐 후에 과도하게 커진 제국을 과도한 권력이 지배함으로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아닐까. 의도하지는 않았어도 나쁜 결과로 빠진 것이다. 아무리 인프라를 갖추었다 해도 현대와 같은 통신체계나 이동속도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문제는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공화정이라고 별반 다른 수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결국 제정도 통치의 어려움 등으로 동서로 나누게 되는 것이 아닐까. 너무 커진 나라를 당시 체계만으로 다스리긴 힘들고, 이는 현대도 시대 흐름이 조금만 바뀌어도 소련이 러시아와 수많은 나라로 분할되는 예에서 보듯이 쉽게 발생한다. 중국도 조금만 흔들리면 외곽부는 다 떨어져 나가고 내부 한족끼리도 분열할 수 있다.
정리하면 저자의 주장인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전환이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놀라운 작품이다라는 관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꼭 제정이 아니더라도 아우구스투스나 5현제와 같이 훌륭한 지도자가 황제이든 공화정의 집정관으로든 나타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만큼 로마의 영토와 재정과 군비가 커졌다. 공화정이 끝나고 아우구스투스가 죽은 후, 최대한 5현제가 사라진 후에 "로마의 타락이 시작되었다"라는 서양 역사가들의 생각에 나는 동의한다. 그렇기에 쇠락기 역사에 대해서 로마인의 훌륭한 기질을 근본 가정으로 깔고 분석하여 서술하는 글을 통하여는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쇠망사에서 교훈과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