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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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걱정스러웠다. 처음 몇몇 시편들은 참으로 어두웠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줄타기 하는 전형적 모습같았다. 어디 이런 모습을 한 두번 보는 것도 아니라 여러 시인에게서 이미 보아왔던 슬픔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읽으면서 왠지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보통 시인들은 시를 쓰면서 자신을 치유하곤 하는데 그런 치유의 능력이 독자를 마찬가지로 치유하곤 한다. 이번에도 그랬겠지.



소설가로 잘 알려진 시인 한강의 첫번때 시집이 드디어 나왔다. 인터넷 서점에 뜬 것을 보고는 바로 충동구매 해버렸다. 예전 어느 문예지에서 한강 시인의 시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소설보다 오히려 시로 먼저 등단한 작가는 그간 꾸준히 자신의 마음을 노래로 담아왔다. 그가 내놓는 리듬을 느껴보고 싶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의 전체 시 중에서 '피 흐르는 눈 4'와 '회복기의 노래'가 가장 좋았다. '이 어스름한 저녁을 열고 / 세상의 뒤편으로 들어가 보면 / 모든 것이 / 등을 돌리고 있다'와 같은 단정적 상상력의 구절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이 시는 뒤로 갈수록 다른 시에서와 같이 짧은 행과 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맨 처음 두 개 연은 이렇게 하나의 문장으로 되어 있다.

 

 

산문으로 풀어 쓴 몇몇 시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가 아주 느린 속도로 전개된다. 또한 '회복기의 노래'는 3개 연이 3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주 오래된 서정시 형식이다. 나는 이런 리듬이 좋다.



그러고 보면 시집 전체는 아주 오래된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부터 서랍과 저녁이란 단어를 쓰고 있다. 그리고 거울, 겨울, 빛, 어둠 등과 같은 친숙한 단어로만 구성되어 있다. 아주 힘을 뺀 오래된 이미지가 얼마나 독자를 어루만질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소설가 한강은 이 시의 이미지를 통해 소설에서 다 채우지 못한 마음을 두 손으로 만지고 있음을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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