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이성주 작가님의 '조선의 역사를 바꾼 왕들의 부부싸움'을 매우 재밌게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조선시대 주요 왕들과 왕비들의 교과서 밖 이면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이성주 작가님의 탁월한 역사 해석력을 통해서 조선시대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느낌을 받은 책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출간된 '사극으로 읽는 한국사' 책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사극...
TV에서 사극을 보다보면 팩션이라는 장르에 매료되고, 알고 있던 역사와 알지 못했던 역사가 스토리로 전개되면서 역사를 알아가고 배우고 또 웃고 감동받고 그런다.
최근에 재밌게 본 TV 사극은 '구르미 그린 달빛'이었고, 기억에 남는 감동적인 사극은 '징비록'이었다.
이 책은 TV와 영화로 만들어진 여러 사극을 중심으로 그 사극 속의 역사 이야기를 엑기스만을 골라서 보여주는 책이다.
제도 속 인물, 관습과 제도, 왕실 이야기, 생활문화사로 챕터를 나누어서 각 챕터마다 6∼7편의 사극과 그 사극과 관련한 역사 이야기를 저자의 탁월한 관점과 해석력으로 표현한 책이다.
사극에서 다루어진 역사 전반을 다루지 않고, 그 사극과 관련된 흥미로운 하나의 역사를 분석하고 세밀하게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259페이지에 무려 25편의 사극이 다루어지고 있으니, 범위는 방대하지만 내용은 핵심 내용만을 때로는 얇고 넓게 때로는 깊게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사극 중에서 내가 본 사극은 기황후, 구르미 그린 달빛, 조선명탐정:사라진 놉의 딸, 정도전, 징비록, 덕혜옹주, 관상, 영원한 제국 정도이다.
보고 싶었는데 못 본 드라마와 영화도 많다.
내가 본 드라마와 영화가 그래도 상당히 많이 있어서 이 책이 주는 흥미는 매우 높았고, 내가 본 드라마와 영화를 역사 전문가의 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상기하고 해석해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이 주는 독특한 재미이다.
그 동안 읽었던 역사책과는 매우 색다른 흥미를 주는 책이고, 책과 영상이 융합되어 있는 콜라보 역사책이다.
내가 본 드라마나 영화에 관한 이야기에 아무래도 관심이 더 많이 가지만, 보지 않은 드라마와 영화의 내용을 읽다보면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게 하는 책이다.
기황후 편에서는 공녀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고려시대에 몽고로 끌려간 공녀들은 미색, 손재주, 강단, 지조가 있어서 몽고인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고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병자호란 후 끌려간 공녀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풍습 중에 나그네를 환대하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자신의 아내, 첩, 딸을 바치는 객첩과 헌첩이 있었다고 한다.
객첩과 헌첩의 풍습 속에 공녀 제도에 대한 저항감이 어쩌면 낮았을 지도 모르는 슬픈 역사의 모습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밤을 걷는 선비 편에서는 과거제도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양반이 되어서 과거시험을 포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평균적으로 20여 년을 공부해야 과거에 급제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기 급제를 한 수재들도 있었으니 김종서의 경우 열여섯에 과거에 급제했다고 한다.
나이 팔십에 과거에 급제한 양반도 있다 하니 조선시대에 시험에 목숨을 거는 모습이나 지금 수능에 모든 것을 바치는 모습이나 비슷한 것 같다.
어쩌면 문화라는 것은 한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역사를 돌고 돌아서 전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는 내시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내시는 동양뿐 만 아니라 서양에도 존재했다고 한다.
내시가 되는 시술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주는데 사망률이 60%에 달하는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시술이었고, 시술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대립군 편에서는 선조와 광해군, 병역제도, 임진왜란에 대한 이야기가 다루어졌다.
수도를 버리고 도망간 선조, 선조를 대신해 분조를 이끌며 백성의 지지를 받은 광해군, 선조는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며 고생한 광해군을 높이 평가하기 보다는 악감정을 품고서 괴롭히고 압박했다고 한다.
안밖으로 매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을 광해군의 모습이 상상이 되고,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하는 광해군이 안스럽게 느껴졌다.
임진왜란 당시 총 105회의 전투가 이루어졌는데 이 중 조선군이 65회 승리, 40회 패배를 했다고 한다.
승리한 전투가 더 많았다.
조선이 절대적으로 열세에 몰린 전쟁이 아니었고, 개전초에만 열세였을 뿐 일본과 대등하거나 일본을 압박하는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교과서에서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 책에서 접해볼 수 있는 새로운 역사이다.
덕혜옹주 편에서는 덕혜옹주의 출생과 성장, 고난에 대한 인생사 이야기가 짧은 전기문처럼 전개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 속 덕혜옹주의 모습이 생각났다.
조선이 몰락한 후 황실의 재산은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서 국유화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국유화 과정에서 국고로 제대로 환수되지 않고 여기저기로 새나갔다고 한다.
조선의 몰락 과정과 대한민국 탄생의 역사 속에서 분명 우리나라에 많은 좋은 기회가 있었겠지만, 나쁜 사람들의 사리사욕에 나라가 멍들어 간 것 같다.
지금도 나쁜 사람들의 사리사욕에 일반인이 모르는 이상한 역사가 그때처럼 전개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외 여러 사극과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저자가 쉽게쉽게 풀어서 해석해주면서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준다.
재미있게 읽으면서 사극과 드라마를 떠올리면서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새로운 역사들을 흥미롭게 배우고 알게해주는 책이다.
홍길동은 실존 인물이었는데, 의적은 아니었고, 악독한 도적이었다고 한다.
조선의 3대 도적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중 장길산 만이 체포되지 않았다고 한다.
성리학 이념 때문에 고려시대에 비해서 덜 중시된 목욕 문화, 중전을 뽑기 위해 적용된 여성에 대한 관상 평가 기준도 교과서에서 접할 수 없는 색다른 내용들이었다.
류성룡은 이순신 장군만을 추천한 것이 아니라 권율 장군도 추천하여 천거했다고 한다.
저자는 류성룡을 시대가 낳은 천재로 표현하였다.
똑똑하고 결단력이 있고,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에 추진력까지 갖춘 인물이라고 한다.
훈련도감을 창설한 것도 류성룡의 공적이라고 한다.
징비록은 미리 징계하여 후한을 경계한다라는 것에 따온 임진왜란에 대한 반성의 기록이라고 한다.
이방원은 조선의 왕들 중 유일하게 과거에 합격하고 관직 경험을 한 왕이다.
무인 출신인 이성계의 신분적 콤플렉스를 해소시켜 준 아들이 과거에 급제한 이방원이라고 한다.
소현세자와 그의 부인 강빈이 살아서 왕이 되고 왕비가 되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 말한다.
청나라에 유배되어 서양문물을 접하고 국제 외교 감각을 익힌 소현세자와 심양관의 경영 상태를 개선하고, 심양에 있던 조선 노예를 구제해주는데 출중한 실력을 보여준 강빈이 왕과 왕비가 되었다면 조선시대 신르네상스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금슬도 좋아 8남매를 낳았고, 각자 정치적 리더와 경영적 리더 역할을 한 소현세자와 강빈이 인조에 의해서 제거되지 않았다면 조선의 역사와 대한민국의 역사는 분명 달라졌을 것 같다.
16세기에 자기를 구워낼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조선뿐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의 발발 원인 중의 하나는 일본의 도자기에 대한 욕심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이 자기를 쓸 때 일본은 목기를 사용했고, 일본은 조선의 자기 기술을 탐냈다고 한다.
임진왜란 후 일본은 도자기 생산 기술을 확보했고, 도자기를 만들어 유럽에 수출하여 큰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안경이 사용된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진정 이 책에서만 접할 수 있는 역시이야기일 것이다.
영원한 제국 영화에서 정조가 안경을 썼는데, 정조 이전인 임진왜란 때에도 안경을 사용한 역사 기록이 있다고 한다.
비싼 안경값 그리고 남들 앞에서 안경을 쓰는 것이 결례라는 예법때문에 안경이 널리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고산 김정호가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며 실측해서 지도를 만든 것은 아니라고 한다.
최소한의 실측을 하긴 했겠지만, 결국은 기존의 지도들을 수집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대동여지도의 가치는 정밀성에 있는데, 그때까지 나온 조선의 지도 중 가장 정밀했다고 한다.
250여 페이지의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접하고, 이렇게 많은 교과서 밖 역사 이야기를 전해주는 책이 또있을까?
정통 역사서는 아니지만 재미와 흥미를 느끼면 읽기에는 이 만한 역사책이 또 없는 것 같다.
얇지만 넓은 역사를 배우게 해주는 책이고, 역사를 시험 과목으로 공부한 이들에게 역사 공부의 진짜 재미를 알게 해주는 책이라 평가하고 싶다.
한 편 한 편 짧게 이루어진 내용이 책을 읽는데 힘들거나 지루함을 전혀 주지 않는다.
가볍게 책을 보고 싶을 때, 역사책을 편하게 읽고 싶을 때, 내가 본 사극을 다시 돌아보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을 책으로 생각된다.
※ 사극으로 읽는 한국사는 책과콩나무카페 그리고 애플북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