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사고와 학문적 통찰은 오직개념의 노동 속에서만 획득될 수 있다. 오직 개념만이 지의 보편성을 산출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지의 보편성은 범속한 상식이 지닌 범속한 애매모호함과 빈약함이 아니라 오히려 도야되고 완성된 인식이며, 또한 천재의나태함과 자만심이 그 소질을 타락시킨 이성이 내세우는 비범한 보편성이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토착적인 형식으로 번성한 진리, 모든 자기의식적이성의 소유물이 될 수 있는 진리이다. - P67
학문이 출현하면 곧바로 사라져버릴 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문이현한다는 바로 그 점에서 학문은 그 자체가 하나의 현상이다. 학문의 출현은(이제 막 출현한 학문은) 아직 자신의 진리 속에서 상술되고 펼쳐진 학문이아니다. 여기서 학문이 다른 지 곁에서 또 하나의 지로 출현하기 때문에 현상이라고 여기 아니면 그런 참되지 못한 다른 지를 학문의 가현(假現)이라고 부르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렇지만 학문은 자신을 이러한 가상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그리고 학문은 오직 이런 가상에 대항함으로써만 그렇게 할 수 있다. - P77
https://m.blog.naver.com/syeong21/223714715027나는 팀원을 물 ‘멕이는’ 팀장이 되고 싶지 않다. 이미 그런 팀장을 겪어 본 적이 있고, 그 경험은 최악이었다. 결국 그런 태도는 본인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대신, 팀원들에게 밥 잘 ‘먹이는’ 팀장이 되고 싶다. 최소한 내 직원들을 보호할 수 있는 팀장.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팀장이 되는 것이 내 목표다.최상욱 교수는 『하이데거 vs. 레비나스』에서 ˝어떠한 것을 진정으로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무엇이 가장 사랑할 만한 것인지 묻게 된다.˝고 말했다. 팀장이라는 지위에 연연하기보다, 진정한 팀장의 품격을 찾아가는 과정은 충분히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학문 연구에서 관건이 되는 문제는 개념의 긴장된 노력을 떠맡아 감당하는 일이다. 이러한 노력은 개념 자체에 주목할 것을, 예를 들면즉자 존재, 대자 존재, 자기동일성 등과 같은 단순한 규정들에 주목할 것을요구한다. 왜냐하면 이런 규정들은 그 개념을 더 고귀하게 표현할 길이 없다면 영혼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순수한 자기 운동이기 때문이다. - P55
지금까지 말한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신은 존재이다.‘라는 명제에서술어는 ‘존재‘이다. 그런데 이 명제에서 어인 ‘존재‘는 주어가 녹아 없어지게 되는 실체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존재‘는 단지 술어가 아니라 본질이라고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신‘은 문장에서의 위치에 의해 그러한 바의 것, 즉 고정된 주어이기를 멈추게 된다. - P59
수학의 목적 또는 개념은 크기(Größe)이다. 그런데 크기야말로 비본질적이고 몰개념적인 관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의 운동은 표면에서만 진행될 뿐이지 사태 자체인 본질이나 개념은 건드리지 못하며, 따라서 그것은 개념적 파악(Begreifen)이 아니다. 수학이 진리의 탐스러운 보고(寶庫)를 제공해준다고보장하는 소재는 공간과 일(단일자, Eins)이다. - P41
사실 시간은 현존하는 개념 자체이다. 몰개념적인 구분인 크기의 원리와 추상적이고 생명 없는 통일인 동등성(동일성)의 원리는 그와 같은 생명의 순수한 불안정과 절대적 구별을 다루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부정성은 오직마비된 상태로서만, 다시 말해 일(1)로서만 이런 (수학적) 인식의 두 번째 소재가 되는데, 이와 같은 인식은 자기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소재로 격하시키고 그렇게 소재가 된 것에서 이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외적이고 생기 없는 내용을 얻어내려고 하는 외적 행동이다. - P43
철학은 비본질적인 규정은 고찰하지 않고 그것이 본질적인규정인 한에서만 고찰한다. 철학의 요소이자 내용은 추상적인 것이나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것, 자기 자신을 정립하고 자신 안에서 살아 있는 것, 그 개념 속에서의 현존재이다. 그것은 자신의 계기들을 스스로 산출하면서 관통하는 과정이며, 이런 운동 전체가 긍정적인 것이자 그것의 진리를 이룬다. - P43
이렇게 학문적 인식은 자신의 대상에 침잠하면서 (형식적 오성이 하는) 조망하는일을 잊는데, 이러한 조망은 실상 지가 내용과 동떨어져서 자기 자신 안으로 반성하는 것일 따름이다. 물론 학문적 인식 역시 질료 속으로 몰입하고질료의 운동 속에서 전진하면서도 자기 자신 안으로 되돌아온다. - P51
그런데 그럼으로써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사고(思考)이다. 존재는 사유라는 점이 여기에 함축되어 있다. 사유와 존재의 동일성에 관한 통속적이고 몰개념적인언급에는 결여되어 있기 십상인 통찰이 바로 여기에서 성립한다. 현존재의존립은 자기 동일성 또는 순수한 추상이라는 점에 의해 이제 현존재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신의 추상이 된다. 또는 현존재는 그 자체가 자기 자신과의 비동일성이고 자신의 해체, 자신의 고유한 내면성이자 자기 안으로의환수, 자신의 생성이다. 이러한 존재자의 본성에 의해서 그리고 존재자가지에 대해 이런 본성을 지니고 있는 한에서 존재자는 내용을 낯선 것으로 다루는 활동이 아니며, 내용과 동떨어져서 자신 안으로 반성하는 것이아니다. 학문은 주장하는 독단론을 대신해서 단언하는 독단론이나 자기 확신의 독단론으로 등장하는 그런 관념론이 아니다. 지는 내용이 자신의 고유한 내면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기 때문에 지의 활동은 오히려 [지의활동이 내용의 내재적 자기(己)이므로] 내용 속으로 침잠하는 동시에 또한[지의 활동이 타자 존재 속에서의 순수한 자기 동일성이므로] 자신 안으로귀환한다. 그러므로 지의 활동은 활동을 자제하는 듯이 하면서도 어떻게규정성과 그것의 구체적인 삶이 바로 그것의 자기 보존과 특수한 이해 관심을 추진한다고 착각하는 가운데 오히려 전도된 일을 하게 되는지를, 즉자기 자신을 해체하고 전체의 계기로 만드는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지켜보는 교지(巧智, List)이다. - P52
앞서의 논의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하나의 명증성은 "동일한 대상에 대해 명증성의 무한성"(96)을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다시 살펴봐야 할 것이 세계의 명증성이다. 우리에게 외적 세계는 사실상 오직 외적 경험을 통해서만 주어진다-알라딘 eBook <후설의 『데카르트적 성찰』 읽기> (박인철 지음) 중에서 - P128
이로써 세계에 대한 초월론적 현상학적 해명은 실제적, 잠재적, 개별적, 총체적 명증성을 모두 포괄하는 광범위한 것으로서 단편적이 아니라 복합적, 총체적으로 세계의 존재성을 고려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알라딘 eBook <후설의 『데카르트적 성찰』 읽기> (박인철 지음) 중에서 - P132
후설은, 이 책에서는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지만 다른 저서에서는, 임의의 자유변경을 통해서 얻어진 다양한 변체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겹치고 합치하는 것을 ‘직관적으로 포착 내지 통찰’할 때, 본질직관의 마지막 단계가 이루어진다고 서술하고 있다-알라딘 eBook <후설의 『데카르트적 성찰』 읽기> (박인철 지음) 중에서 - P142
바로 여기서 직관된 것이 본질 또는 형상(Eidos)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본질직관’이라는 표현이 쓰이기도 한다.-알라딘 eBook <후설의 『데카르트적 성찰』 읽기> (박인철 지음) 중에서 - P142
그런데 직관은 이것의 본래적 성격에 따를 때, ‘원본적으로 부여하는 직관(originar gebende Anschauung)’으로서 사태를 그 자체로서 있는 그대로를 파악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 때, 본질파악의 명증적 성격을 보다 강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알라딘 eBook <후설의 『데카르트적 성찰』 읽기> (박인철 지음) 중에서 - P143
시간성과 역사성의 측면에서 자아와 그 상관자인 세계를 그 궁극적 발생으로 되돌아가 이해하고자 하는 현상학의 유형을 가리켜 후설은 1920년대 이후로 "발생적 현상학(genetische Phanomenologie)"(103)이라고 하였다.-알라딘 eBook <후설의 『데카르트적 성찰』 읽기> (박인철 지음) 중에서 - P151
이 발생적 현상학의 체계가 후설 후기 현상학의 특징이다. 발생적 현상학과 대비된 그 이전의 현상학을 가리켜 후설은 ‘정적 현상학(statische Phanomenologie)’이라고 불렀다.-알라딘 eBook <후설의 『데카르트적 성찰』 읽기> (박인철 지음) 중에서 - P151
신체는 하나의 자연적, 물질적 사물로서 대표적인 지각대상이다. 그러므로 이 고유영역에서 신체가 두드러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알라딘 eBook <후설의 『데카르트적 성찰』 읽기> (박인철 지음) 중에서 - P181
따라서 후설은 감정이입작용과 연상작용을 근거로 타자경험의 확실성을 정당화하고자 하였다.-알라딘 eBook <후설의 『데카르트적 성찰』 읽기> (박인철 지음) 중에서 - P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