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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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병드는 과정에서는 적어도 두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는 삶에 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다. 이는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는 용기다. 그런 용기를 갖는 것만도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 진실을 직면하기를 꺼린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용기가 있다. 바로 우리가 찾아낸 진실을 토대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용기다. 문제는 어떤 것이 현명한 길인지 알기 어려운 때가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알라딘 eBook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중에서

뇌는 고통과 같은 경험을 두 가지 방식─경험하는 순간에 내리는 평가와 나중에 내리는 평가─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이 둘은 굉장히 모순된다. 노벨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역작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에서 일련의 실험을 통해 관찰한 사례를 밝히고 있다. 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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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자아를 가진 듯하다. 하나는 매 순간을 동일한 비중으로 견뎌 내는 ‘경험하는 자아experiencing self’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이 흐른 후 최악의 시점과 종료 시점 단 두 군데에만 거의 모든 비중을 실어서 평가하는 ‘기억하는 자아remembering self’다. 기억하는 자아는 심지어 마지막 순간이 완전히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할 때조차도 ‘정점과 종점’에 고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알라딘 eBook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중에서

결국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조망할 때는 단순히 매 순간을 평균 내서 평가하지 않는다. 어차피 삶은 대부분 잠자는 시간을 포함해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간다. 인간에게 삶이 의미 있는 까닭은 그것이 한 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그 자체로 온전한 하나의 단위라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전체적인 구도는 의미 있는 순간들, 즉 무슨 일인가 일어났던 순간들이 모여서 결정된다. 사람들이 매 순간 느끼는 즐거움과 고통을 측정한다는 건 인간의 근본적인 면을 간과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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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통찰이란 바로 노화나 질병으로 인해 심신의 능력이 쇠약해져 가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려면 종종 순수한 의학적 충동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너무 깊이 개입해서 손보고, 고치고, 제어하려는 욕구를 참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개념이 날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 환자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어려운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고치려 애써야 할 때는 언제이고, 그러지 말아야 할 때는 언제일까?

-알라딘 eBook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중에서

그러나 선택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삶 자체가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을 하나 하고 돌아서자마자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중에서

뭔가를 더 많이 하는 쪽으로 말이다. 왜냐하면 의사들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을 다하지 않는 실수를 범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다른 방향에서 똑같이 끔찍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노력을 너무 적게 하는 것만큼이나 너무 많이 하는 것도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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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노쇠한 사람들을 위해 보스턴에서 싹트기 시작한 다양한 선택 가능성을 애선스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다. 애선스는 애팔래치아 기슭에 자리한 작은 도시였다. 이 지역의 주 수입원이라고는 오하이오 주립대학뿐이었다. 주민들 가운데3분의1이 빈곤층으로 분류될 만큼 오하이오주에서 가장 가난한 곳에 속했다. 그러나 이리저리 수소문해 본 결과 이곳에서도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들면 의학과 수용소 같은 시설에 자율권을 넘겨야 하는 현실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알라딘 eBook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중에서

용기란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을 직면할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지혜란 분별력 있고 신중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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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하버드 대학의 철학자 조시아 로이스Josiah Royce는 『충성심의 철학The Philosophy of Loyalty』이라는 책을 펴냈다. 로이스 교수는 나이 들면서 겪는 어려움에 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삶의 유한성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느끼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왜 우리가 단순히 존재하기만 하는 것─안전한 환경에서 단순히 의식주만 제공받는 것─은 공허하고 의미 없다고 느끼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삶이 가치 있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더 필요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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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스는 개인주의적 관점에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기적인 사람들은 항상 우리 곁에 존재했다. 그러나 이기적일 권리를 하늘이 내렸다는 주장을 이렇게 기발하게 방어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사실 인간에게는 충성심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주장했다. 충성심이 필연적으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는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삶을 견뎌 내기 위해 자신을 넘어선 무언가에 헌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그러지 않을 경우 우리는 덧없고, 변덕스럽고, 만족을 모르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고통만 안겨 줄 뿐이다. "본래 나는 수없이 많은 조상들의 기질이 합류한 만남의 장소 같은 존재다. 시시각각… 나는 충동의 집합체다." 로이스는 계속 말한다. "우리는 내적인 빛을 볼 수가 없다. 그러니 외적인 빛을 보기 위해 노력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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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할머니가 바라는 것은 소박했다. 그녀는 규칙적인 일상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느긋한 아침식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로비에서 친구들과 나누는 수다, 딸과 하는 전화 통화, 오후에 즐기는 낮잠 같은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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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철학자 로널드 드워킨Ronald Dworkin은 이와는 다른, 그러나 더 중요한 자율성 개념이 있다고 설파했다. 우리가 직면하는 한계와 역경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는 삶의 주인으로서 자율성─자유─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핵심적 가치다. 드워킨은1986년에 발표한 놀라운 논문에서 이 문제를 이렇게 쓰고 있다. "자율성의 가치는 그것이 만들어 내는 책임감 체계에 달려 있다. 자율성은 우리가 일관성 있고 분명한 각자의 개성, 확신, 관심 등에 따라 자신의 삶을 구체화할 책임을 지도록 만든다. 자율성은 우리가 남에게 이끌려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이끌며 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각자는 그러한 권리 체계가 허용하는 한 자기 스스로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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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요." 루 할아버지가 말했다. "동양에 ‘카르마’라는 말이 있어요. 일어나도록 되어 있는 일은 결국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지요. 내 삶에 끝이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어쩌겠소? 지금까지 잘 살았으니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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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살기 위해서는 조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들 왜 오늘날 각 세대가 따로 사는 걸 더 선호하는지 알게 됐다. 루 할아버지는 부모와 자녀의 역할이 바뀌었는데도 자신이 가장이 아니라는 걸 마땅치 않아했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외로워졌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교외의 막다른 골목에 있는 집에 살게 되면서 루 할아버지는 하루 중 대부분을 홀로 지내야 했고, 근처에는 도서관, 비디오 가게, 슈퍼마켓 등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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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에게는 ‘사람’ 친구도 생겼다. 날마다 오는 우체부에게 인사를 하다가 서로 친구가 된 것이다. 우체부는 매주 월요일 점심시간에 찾아와서 할아버지와 함께 크리비지 게임을 했다. 셸리는 또 데이브라는 젊은이를 고용해서 할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했다. 실패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인위적인 놀이 친구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가 됐다. 루 할아버지는 데이브와도 크리비지 게임을 했고, 데이브는 일주일에 두 번씩 와서 할아버지와 오후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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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관심사를 좁히는 까닭은 신체적, 인지적 쇠락에서 오는 위축으로 이전처럼 어떤 목표를 추구하기 어려워졌거나, 단지 늙었다는 이유로 세상이 그들을 막기 때문이다. 이때 노인들은 그것에 맞서 싸우기보다 적응을 하게 된다. 아니, 더 슬프게 말하자면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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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1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이제 케런 윌슨도 중년에 이르렀다. 얼마 전 만난 그녀의 모습은 들쑥날쑥한 치아를 드러내며 짓는 미소, 처진 어깨, 돋보기, 그리고 흰머리 때문인지 세계적인 산업의 기틀을 만든 혁명적 기업가라기보다 책을 좋아하는 할머니에 가까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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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어시스티드 리빙’이라는 개념, 즉 일상적인 삶을 돕는 일의 성공 여부를 잴 수 있는 척도가 없다는 점이다. 반면 위생과 안전에 대해서는 굉장히 엄밀한 평가 기준이 있다. 이쯤 되면 노인들을 위한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 주의와 관심을 기울일지 짐작할 수 있다. 시설에 들어가 있는 우리 아버지가 외롭지는 않은지 하는 것보다 체중이 감소했는지, 약을 빼먹지 않았는지, 넘어지지 않았는지 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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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원한 건 자기만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유쾌하고 친절한 국경수비대원들이 할머니의 열쇠와 여권을 가져가 버린 것이다. 할머니는 집과 함께 자기 삶에 대한 주도권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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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녀가 원하는 삶이 단순히 안전하다는 것 이상이라는 데 있었다. "전과 같이 살 수 없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집이 아니라 병원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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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느 요양원에서든 노인들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 고사하고, 그들 옆에 앉아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 묻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이것은 바로 삶의 마지막 단계에 관해 생각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일관하는 사회가 낳은 결과다. 우리가 만들어 낸 시설과 제도들은 여러 가지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병원 입원실을 비우고, 가족의 부담을 덜어 주고, 노년층의 빈곤을 극복하려는 목적 말이다. 그러나 그 시설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듯하다. 우리가 병들고 약해져서 더 이상 스스로를 돌볼 수 없게 됐을 때도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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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그들은 삶에서 할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와 기쁨을 어떻게 하면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태도는 잔인함보다는 몰이해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톨스토이가 말했듯, 그 둘이 결국 뭐가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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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의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남아 있는 것은 가족이다. 이 경우 요양원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자녀의 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그다지 많은 연구가 진행된 것은 아니지만 딸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도움을 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수명이 늘어남과 동시에 맞벌이 수입에 기댄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그 결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고통과 불행을 경험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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